Dont Cry`이라는 노래로 큰 사랑을 받았었던 더 크로스의 메인 보컬 김혁건이 전신마비로 사는 근황을 전해왔습니다. 김혁건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전신마비 판정을 받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하여 사고 당시의 아픔과 현재의 근황에 관해 알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김혁건의 사고와 최근에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데뷔와 활동
Dont Cry로 큰 인기를 끌었던 남성 2인조 그룹더 크로스의 메인 보컬 김혁건이 최근 전신마비로 사는 근황을 전했습니다. 1999년 멤버 이시하와 김혁건은 그룹더 크로스를 결성하고 인디밴드로 시작했습니다. 2001년에 MNET에서 열린 뮤직 페스티벌 락부문 대상 수상을 계기로 한 소속사와 계약하고 2003년에 1집을 내면서 프로에 데뷔했습니다.
히트곡Dont Cry에서 김혁건의 완벽한 고음 처리로 유명해졌습니다.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해오던 더 크로스는 멤버 김혁건의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활동이 중지되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로 김혁건은 인생의 절망을 느껴야만 했다고 합니다.

충격적인 사고
김혁건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하여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던 그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김혁건은 2012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전역 후 더 크로스 컴백 준비차, 앨범 녹음 작업을 마치고 밤길에 오토바이로 귀가하던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불법 유턴으로 예측 출발하던 차량이 직진하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면충돌을 하면서 차의 얼굴을 박고 땅에 떨어지는 순간 목이 부러지면서 마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혁건은 사고 직후 경추 손상으로 마비가 온 것을 직감하고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을 때, 혹시 호흡으로 구급차가 오기를 그리고 부모님께서 달려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길거리에 누워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느끼며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런데 정작 차로 김혁건을 친 운전자는 가족에게 전화해서 변명하기 바빴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사고의 피의자 보험사와의 법적 분쟁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의식을 잃으면서 발생한 욕창으로 1년 동안 일주일에 3번씩 썩은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았고, 의식을 회복해도 머리나 어깨, 팔까지는 움직일 수 있지만, 그 이하로는 아예 근육조차도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경추 손상에 의한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결국…
또 육체적 정신적 재활 그리고 음악을 다시 시작하기까지 우울증으로 인해 본인 스스로도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을 정도로 의식을 회복하고서도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한 달 동안 혼수상태다 보니 연락을 할 수 없어 더 크로스의 이시하 역시도 그가 사고를 당한 지 두 달 만에 간신히 비보를 듣고 수소문에서 찾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깨어난 이후에는 오죽하면 죽고 싶었고, 1년여 동안 의식은 있었지만, 비몽사몽이었다고 합니다. 몸이 안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는 암흑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이시하에게는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된다면 강에 밀어 달라라고 말할 정도로 절망에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자기 몸이 그렇게 되었으니 깊은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김혁건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아무것도 안 움직여지니까 이렇게 식물인간이 된 건가 싶었죠. 정신은 있는데 눈만 흐리멍덩하게 뜬 채로 살아가야 하나 하염없이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줄기세포도 여섯 번 해봤고 모든 걸 다 해본 다음에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노력 끝에…
그렇게 힘겨워하는 아들을 바라만 보고 있기 힘드셨던 김혁건의 아버지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김혁건이 노래를 부르는데 복식 호흡이 아예 되지 않아서 노래를 부를 때 힘든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그의 배를 누르니 그 과정에서 소리가 점점 커졌다고 합니다.
그것에 착안해낸 것이 바로 복식 호흡 보조 장치의 시초인데, 폐활량이 비장애인보다 훨씬 더 못 미치는 양이어서 배를 눌러줘야만 큰 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이걸 활용해서 애국가를 부르는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장치는 배를 눌러주면 횡격막이 올라가는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것인데 처음에는 보조자가 옆에서 수동으로 눌러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이 수동 장치를 쓰는 상황을 알았는지 서울대학교 로봇융합연구센터에서 복식 호흡 보조 장치를 개발해줬다고 합니다.
드디어 자동 장치를 발명하여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 김혁건, 본인은 물론 아버지 역시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올렸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계기로 그가 쓴 수기가 2013년의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 주관으로 열렸던 2013 it 체험 수기 및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정보통신 보조기기 부문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김혁건은 그 보조 장치를 달고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열심히 노래 연습했다고 합니다.

현재 김혁건은 활동 보조사의 도움과 ai를 통한 음성 제어 장치로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대장암 4기인 김혁건의 아버지는 직접 그의 외출이나 식사를 도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혁건이가 약 30가지의 약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라며 그의 몸 상태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또 김혁건 어머니는 여자 친구랑 결혼을 시켰다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요? 사귀고 있는 여자가 있었는데 아직 결혼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안 해서 안 시켰어요.
그해 10월에 한다고 하길래 기다렸죠. 부모들이 미리 시켰더라면 하는 자책감이 있어요.”라고 아픈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김혁건 아버지 역시 “집으로 간다고 하길래 오늘 오토바이 세워놓고 내 차 타고 가자고 했어요. 안 간다고 하길래 이유를 몰랐는데 김밥을 사서 따뜻하게 여자 친구를 먹이려고 좀 일찍 갔던 것 같네요.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 마음은 강제로 타라고 끌고 갔어야 했는데 그게 후회가 돼 죽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식이 이렇게 마비가 된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부모님의 잘못은 아니지만, 자식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없어 큰 고통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가수로 복귀하며….
그러던 김혁건은 2013년 12월 드디어 가수로서의 재기를 선언했고 2014년 첫 방송 복귀를 했는데 그 첫 무대가 놀라운 대회 스타킹이었습니다. 이날 더 크로스 완전체로 모습을 보였는데 무대에 오르면서 성악 버전으로 편곡한 Dont Cry와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열창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더 크로스는 콘서트도 열었고 신곡 발매도 꾸준히 했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이어오다가슈가맨에 희열팀 ‘슈가맨’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교통사고 이후 전신마비 판정을 받아 한 번도 원키로 부르지 못했던Dont Cry를 원키로 그 유명한 초고음 샤우팅인 영원히 부분을 말끔히 소화해내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배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노력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혁건은 그렇게 사고를 당한 후 10년이 흐른 지금은 대학교의 교수로 출강도 하고 노래 연습도 꾸준히 하며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삶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참 대단해 보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뻔했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김혁건은 아직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절망의 늪 속에서 수없이 자신에 놓고 싶었을 텐데도 그 힘든 시간을 견뎌온 것에 대해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비록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왔지만, 이제는 김혁건을 보며 희망을 가질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힘내서 왕성한 활동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