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5세 현미 홀로 숨진 채 발견 “어제 저녁도 지인과 식사했는데…”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확인해 보세요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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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가수 현미 씨가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가수 현미 씨가 오늘 오전 9시 반쯤 이촌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팬클럽 회장이 쓰러져 있던 현미 씨를 가장 먼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곧바로 가까운 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을 거둔 것으로 판정받았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이나 극단적 선택을 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최초 신고자와 유족을 조사하고 지병 관련 기록을 확인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몇 달 전에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대중 가요계 원조 디바 가수 현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조명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현미는 사랑하는 남자 이봉조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1937년 평안도 출신인 현미는 본명은 김명선, 한국 나이로는 87세입니다. 재즈풍 목소리로 한국형 팝을 선도했던 인물로 1962년 ‘밤안개’로 데뷔해 인기를 얻었습니다. 90년대 이후로는 예능 위주로 활동을 이어가다 보니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과거 그녀는 훌륭한 가수였습니다.

가수 데뷔와 활동

현미가 가수로 데뷔하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1957년 21살의 현미는 미8군 위문 공연 무대에 서는 칼춤 무용수였는데 펑크낸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당시는 드물었던 여대생 가수라는 장점을 살려 현시스터즈라는 그룹이 결성됐고 센터를 담당했습니다. 이런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으로 음반을 만들어줬고 현미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합니다.

당시 녹음하던 현미의 성량이 너무 커, 다른 가수들과는 다르게 마이크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서 곡을 녹음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합니다. 1962년 이봉조와 1집을 작업하며 미국 재즈 가수 넷킹콜의 곡에 현미가 직접 작사한 가사를 입혀 밤안개를 발표했고 그 노래로 활동하며 1962년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1964년에는 보고 싶은 얼굴이란 곡을 발표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표현한 자신의 대표곡 중 하나를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이봉조가 만든 노래를 주로 불렀던 현미는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한국 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특히 1973년 그리스 국제가요제에 이봉조와 현미는 함께 출전해 ‘별’로 주요 부문에 수상하며 국내외로부터 중저음의 허스키한 음색의 풍부한 성량을 가진 가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에 힘입어 1981년 현미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 취임 파티에 초청받아 한국 대표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음악계에서도 현미의 음악적 재능과 업적만큼은 패티킴, 이미자 같은 대 가수급으로 여깁니다.

작곡가 이봉조와의 인연

한편 현미는 계속되는 음악 작업을 통해 작곡가 이봉조와의 연인 그리고 부부로 알려졌습니다. 현미보다 6살이 많던 이봉조는 한양대 건축학과를 나와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했는데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미8군 부대에서 재즈 색소폰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현미를 만난 것은 1957년 현미가 21살, 이봉조는 27살 때였습니다. 현미에게 ‘아 목동아’의 번안곡을 만들어준 이봉조는 결국 공무원을 그만두고 재즈 연주가이자 작곡, 작사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로 음악적으로 파트너였던 현미와 이봉조는 훗날 파경을 맞으면서 충격적인 사실이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현미와 이봉조는 사실혼일 뿐, 이봉조에게 본처와 자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현미는 이봉조의 아들 둘을 낳아 기르고 있었습니다.

사실혼 관계?

일각에서는 현미가 설마 유부남인 걸 몰랐을까? 하는 의혹이 있는데 양측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이봉조는 51년에 만난 n씨와 열애 끝에 1956년 결혼합니다. n씨는 이화여고를 졸업 이화여대에 진학하지만, 전쟁으로 졸업은 못 했고 결혼은 57년, 58년 연년생으로 두 딸을 낳았습니다. 여기서부터 현미와 n 씨의 입장이 달라집니다.

n씨는 둘째 딸을 낳은 후 남편이 젊은 여가수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현미를 찾아갑니다. 처자가 있으니 헤어져 달라라고 사정하자, 현미는 딸만 둘 있으시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라고 말하며 나가버렸고 이후로도 남편과 헤어질 것을 몇 번이나 부탁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미의 기억은 다릅니다. 21세에 이봉조를 만났고 3년을 지나게 연애했습니다. 당연히 총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임신 8개월일 때 본처가 찾아와 이봉조는 유부남에 아이가 둘이나 있고 자신의 배 속에 셋째가 있다고 알렸습니다.

즉, n씨는 1958년에 현미에게 이봉조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렸다고 하고, 반면에 현미는 1962년 큰아들 임신 당시에 이 사실을 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1962년 현미는 큰아들을 낳고, 그해 밤안개로 유명 가수가 됩니다. n씨도 같은 해 아들을 낳는데 이봉조는 두 아들의 이름을 자 돌림으로 짓습니다.


한편, 현미의 주장에 따르자면 임신 당시 본부인이 찾아와 유부남이라는 것을 듣고 뱃속에 아이를 지울 생각을 하지만, 이봉조가 아내와 헤어지겠다라는 약속해서 믿었다고 합니다. 이후 1967년 현미는 둘째 아들을 낳았는데, 이봉조는 이혼 서류를 보여주며 현미를 안심시켰고 이후로 7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갑니다. 이후로 이봉조는 본처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막내딸을 낳습니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현미와 이봉조를 가수와 작곡가 부부로 인식했습니다. 두 사람은 1973년 그리스 국제가요제를 나가 수상합니다. 그러다가 1974년 현미는 이봉조와 결별을 선언하게 됩니다. 헤어진 두 사람은 13년간 왕래가 없다가 1987년 이봉조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현미가 그를 찾아갔는데 본부인과 합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이봉조의 변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재결합을 약속했는데 이봉조는 일주일 후 돌연사합니다.

이후 현미는 “나를 속였던 남편을 원망하지만. 그래도 후회한다.”라며 “살면서 이봉조의 아내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나는 영원히 운명적인 부부였다고 실감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다음 생애에도 이봉조를 만나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현미의 재능을 꽃 피워준 음악 파트너이자, 김추자의 무인도, 정훈희의 안개,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을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
보고 싶은 얼굴로 유명한 작곡가, 그러나 두 가정을 힘들게 했던 이봉조의 잘못된 선택으로 현미를 비롯해 남은 가족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후로 현미는 이봉조의 유작인 왜 사느냐고 묻거든과 2001년 아내를 발표하여 히트시켰습니다. 인간적인 배신은 있었지만, 작곡가로서 그의 곡에 대해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불렀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시련의 연속

한편 가수 현미가 오랜 세월 가수로 활동했음에도 경제 사정이 어려워 월세살이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한 방송에서 월세를 내고 있다라며 “믿었던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월세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1,500만 원에 달하는 건강보험료를 연체하기도 했었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현미는 실제로 지난 2014년 건강보험료 장기 체납자 이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지난 2009년 7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건강보험료 1,509만 원을 장기 체납했습니다. 현미는 당시 사기를 당한 것은 물론 보유한 아파트가 경매에 부쳐졌으며 큰 빛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2015년엔 빚이 7억 정도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집에 도둑이 드는 등 악재가 겹쳐 경제 상황이 힘들어지자, 난생처음 고속버스를 타고 행사를 뛰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갑작스런 비보

그렇게 정정하던 현미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4일 오전 9시 37분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가수 현미가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고 경찰이 발표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현미는 팬클럽 회장 김 모 씨에 의해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향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히 현미는 3개월 전인 지난 1월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왔기에 더욱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 회장이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의 별세 소식에 슬픈 심경을 전했습니다. “현미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향년 85세. ‘왕언니’ 현미의 별세 소식에 가요계 역시 슬픔에 빠졌다. 이 회장은 이날 오후 뉴스1과 통화에서 “오늘 오전에 가장 먼저 연락을 받았다”라며 “목소리도 크시고 건강하셔서 100세 이상까지도 끄떡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갑작스러운 소식에 다들 당황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회장은 “지병이 있으신 건 아니었다, 어제 저녁에도 지인과 식사를 하셨다더라”라며 “왜 사망하셨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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