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운 대장암 투병 중 결국 “손녀 후원자 약속을 지킨 배우의 정체”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아마 이분을 모르시진 않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딸부잣집, 여명의 눈동자, 한지붕 세가족 등에 출연하였으며 넉넉한 웃음과 편안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섰던 배우 전우님을 아시나요?

고인은 대장암으로 투병하다가 향년 68세로 별세하였습니다. 오늘은 배우 전운 님의 인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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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1938년 경상남도 부산 영도에서 아버지 전인식과 어머니 이순녀의 4대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서당 훈장을 하던 부친이 부산에서 큰 음식점을 운영한 덕에 가족 모두가 여유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사춘기를 보내며 활달한 성격으로 친구들의 리더 노릇을 해왔습니다. 당시 가족들은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라고 했지만, 본인은 선장을 꿈꾸었다고 한다고 합니다.

고교 진학 후 학업보다 톨스토이의 예술론을 읽는 데 열중했고, 낭만을 지닌 친구들끼리 모여 김내성의 소설 청춘극장을 얘기하면서 장래에 연극과 영화를 만들게 되면 이렇게 하면 좋겠다.라고 하며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졸업 후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여 2학년 때 결혼하게 됩니다.

연기자 데뷔와 활동

이후 1959년 부산문화방송 개국 당시 1기 성우로 뽑혀서 연기에 입문했고, 1961년 상경 후 최불암, 이철향 등과 함께 극단 ‘신무대실험극회’의 창단에 참여하면서 연극배우로 변신한 뒤, 1963년 극단 ‘산하’의 창단 멤버로도 참여하며 연기 활동을 지속합니다.

1960년대 중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탤런트로 변신하여 ‘대원군’, ‘113 수사본부’, ‘남자의 계절’, ‘딸부잣집’ 등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게 됩니다. 그는 주로 재벌 총수 역을 많이 맡으면서도 할아버지 역할도 꽤 했고, 중후하면서도 자상한 사람 연기를 도맡아 왔습니다.

1985년 극단 ‘성좌’를 창설한 후 1987년 한국방송문화원이 창설되자, 초대 원장을 맡아서 후학 양성에 매진했습니다. 1989년에는 ‘동숭동 소극장’을 세우는 데 주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

2003년 7월 고혈압에 따른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한 차례 위기를 넘겼으며 연기 활동을 멈추게 됩니다. 전운 님은 조용히 투병 생활을 해 왔고, 2004년에는 대장암까지 발견되어 통원 치료를 하던 도중 2005년 3월 26일 아침 8시 30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에서 향년 66세 별세하였습니다.

전운과의 약속을 지킨 배우는?

배우 변희봉이 탤런트 고 전운과의 약속을 지켜 눈길을 끌었습니다. 변희봉은 이범수 조안 주연의 ‘킹콩을 들다’에 교육감 역에 카메오 출연했는데요. 고 전운은 작고하기 전 변희봉에게 연기자를 꿈꾸는 손녀 전보미의 후원자 역할을 부탁했습니다.

‘킹콩을 들다’ 관계자는 “변희봉이 ‘킹콩을 들다’에서 고 전운의 손녀 전보미와 함께 출연하게 됐다. 후원자 역할을 해주기로 했는데 함께 출연하면서 연기지도를 해줄 수 있어 좋은 기회가 됐다”고 전했습니다.


고 전운의 손녀인 전보미는 극중 역도부 주장인 현정 역을 맡았습니다. 극중 테니스부 대신에 역도부를 선택해 묵묵하게 역도부를 이끌어가며 영화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변희봉과 고 전운은 1970년대 탤런트로 데뷔해 방송계를 함께 이끌었습니다.

변희봉은 극단 산하의 ‘진흙 속의 고양이’ 작품에서는 전운의 비서 역할을 맡아 익살맞은 연기를 펼치기도 했고 드라마 ‘113수사본부’에 함께 출연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장남 현철 씨는 “아버지는 평소 가족적인 분위기를 좋아해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등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라며 “골프 같은 운동을 멀리하고 항상 검소한 생활을 실천해 왔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어 고인의 손녀가 1987년생으로 올해 37살이며 2009년 영화 킹콩을 들다의 조연을 통하여 영화배우 데뷔를 하여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또한 60년대부터 함께 연기 생활을 해온 후배 연극배우 박웅 씨는 선배님은 원칙과 소신이 강해 항상 후배들의 모범이 되신 분이라며 늘 다정다감하면서도 잘못하면 엄하게 꾸짖기도 하시며 가르침을 주셨고 현장에서 연기에 중심을 잡아주곤 하셨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고인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 영화 20편 등에 출연하여 자상한 아버지이자, 따뜻한 선생님 역할로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리던 배우이자, 성우셨던 모습이 선합니다. 벌써 세상을 떠났다니 세월이 야속하게도 빠른 것 같습니다. 삼가 고인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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