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남편 본부인 알고 보니 “뒤늦게 밝혀진 충격 정체” 어떤 사연인지 지금 확인해 보세요

현미 선생님은 살아 생전 전 남편 이봉주에게 바람둥이라 의심을 받으며 사셨고 구속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해야만 했고 집 밖을 나가려면 몇 시에 어디 갔는지 기사에게 다 말하여 기록해야만 했으며 팬이 선물을 보내면 의심부터 했던 안타까운 이야기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세상에 알려지자 큰 충격을 전했는데요.

하지만 살아 생전 이런 사실을 몰랐던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불륜녀였다며 손가락질을 하기 바빴고 그녀의 속사정을 알고 싶지 않았죠. 물론 전 남편인 이봉주에게는 부인이 있었고 가장 큰 피해자는 본처가 아닐까 싶은데요. 하지만 그녀와 이봉주의 결혼 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 부인의 정체가 뒤늦게 알려지자 오히려 “현미 선생님이 많이 힘드셨겠죠.” 의견이 대부분이었는데요. 과연 그녀의 결혼 생활은 어땠고 이봉주의 원래 부인인지 지금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현미
👉”23살 나이 차이 전남편과 이혼했지만, 20년째 생활비를 주는 트로트 가수”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현미 이봉조 불륜사연

현미 선생님에게는 연애한 지 8년이 넘은 연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전 남편이 떠난 후 혼자서 생활하다 보니 울적하고 적적한 일들이 많았다고 하죠. 하지만 연하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 에너지도 생기고 활기가 생겼다고 하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했던 결혼 생활과는 천지 차이였기 때문입니다. 현미 선생님은 결혼 전에 남편 이봉조에게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계속 좋아한다고 따라다니니 만났던 것이 임신 후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혼 약속한 이후에 본처가 찾아와 현미 선생님 보고 불륜녀라고 소리쳐 진실을 알게 된 것인데요. 젊었던 전성기 대스타 때부터 천성이 부드러운 측면이 많고 정이 많아서 본인이 잘 나갈 때도 후배들에게 따뜻한 선배이자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도움도 잘 되어 주는 선배였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순간에 불륜녀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죠.

그래서 현미 선생님은 그와의 관계를 모두 정리하려고 했지만 이봉조는 “본처와 이혼하겠다.”며 이혼 서류를 내밀며 동거를 원했고 현미 선생님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당시 그가 유부남이라도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 준 스승에 대한 마음이었을까요. 하지만 이봉조는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줍니다.


바로 그 이혼 서류는 가짜였던 것이죠. 이 정도면 보통 사람 같으면 이미 떠나고도 남았을 상황인데 현미 선생님은 놀랍게도 그 모든 것을 품어주었고 이봉주와는 이십 년간 같이 살아 그렇게 둘 사이에는 아들이 두 명이 생깁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미 선생님과 첫째 아들과 본 부인의 셋째 아들이 동갑이라는 사실인데요.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미 선생님은 고인이 된 남편 이봉조를 살아 생전 엄청 그리워했고 인터뷰에서 이봉조 씨 덕분에 스타가 돼서 잘 살고 있어서 그를 사랑하고 고맙다고 전했는데요.

뒤늦게 알려진 충격 결혼 생활

은인이고 스승이고 애인인 이봉조 씨 그는 천재 작곡가 영화 음악 감독으로도 명성을 떨쳤던 인물로 눈이 새카맣고 잘생겨서 현미 선생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하는데요. 추운 겨울의 트럭에서 양말을 벗어서 신겨주었던 것이 사랑의 러브스토리 시작이었고 당시 12시간 통행금지였던 때 이봉조 씨와 현미 선생님이 처음 갔던 여관이 아직도 있어 남산에 올라갈 때면 추억에 잠기곤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만 들려주었기에 그녀의 결혼 생활은 행복한 줄 알았고 그럴수록 많은 이들은 현미 선생님을 향해 불륜녀라고 손가락질 하기 바빴죠.

하지만 살아 생전 본인이 바람을 폈던 과거가 있어서 그러셨는지 전 남편 이봉조는 현미 선생님을 항상 바람둥이라 의심을 했고 그녀는 구속 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해야만 했고 집 밖을 나가려면 몇 시에 어디 갔는지 기사에게 다 말하여 기록해야만 했으며 팬이 선물을 보내면 의심부터 해 절친이었던 엄앵란 집에 보내고 그곳에서 팬의 선물을 확인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세상에 알려지자 큰 충격을 전했는데요. 왜냐하면 살아 생전 이런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가 인터뷰나 방송에 나오면 전 남편인 이봉주와의 결혼 생활을 아주 좋게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이별 이후 오래도록 현미를 그리워했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를 생각하며 틀리로 색소폰을 불렀던 이야기로 로맨티스트의 모습만을 소개했기 때문이죠.

이봉조 본부인과 자녀들의 정체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이봉조의 원래 부인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봉조는 현미 선생님과 이별 후에도 본가로 들어가지 않고 쭉 혼자 살다가 돌아가실 때도 본부인 노전숙과의 합장을 하고 싶지 않다며 합장을 반대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본부인의 자녀들이 요구했고 현미 선생님의 배려로 별세 후에는 본 부인과 함께 합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봉조는 현미 선생님과 살면서 구속하며 힘들게 했지만 본부인은 너무 잘 살고 있다고 하여 더욱 안타까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본부인 사이에서 낳은 사남매는 명문대를 졸업하였고 외모 또한 훌륭하다고 하는데요.

아들은 서울대학교 법학과 수석 졸업으로 재학 중 22세 때 제26회 사법고시에 차석으로 합격했고 서울고등법원 판사와 하버드대 로스쿨 유학,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도 취득 이후 서초동 소재 법무법인 수호에 대표 변호사로 활동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CF 광고 등도 찍을 정도로 미남이라고 합니다.


이화여대 출신 딸들도 명문 이화여대, 숙명여대를 졸업해 의사, 교수, 대기업 임원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요. 현미 선생님 입장에서는 불륜녀로 낙인 찍힌 것도 모자라 본 부인은 너무나 잘 사는 모습에 정말 슬플 것 같습니다. 본 부인 곁에는 남편이 함께 합장되고 현미 선생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봉조는 본부인과 합장해서 현미는 그곳에 가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60, 70년대 그 시절에는 이런 일이 흔했고 이 세대들 중에 그런 일을 겪은 분들이 적지 않았긴 합니다. 그녀의 삶을 잠시 생각해 보면 글쎄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고지순한 러브스토리라고 해야 할지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빈소가 7일부터 서울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고 고인의 장례식은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다고 합니다. 이제 장례 일정이 나왔는데 7일 오전 10시부터 가능 발인은 오는 11일으로 생전 고인을 흠모했던 많은 가요계 인사들이 찾을 것 같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현미는 지난 4일 오전 9시 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고 갑작스런 부고를 접한 아들 영준 씨는 미국 LA에서 6일 급거 귀국했고 큰 아들 영곤 씨는 7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끝으로 현미 선생님은 지난해 10월 방송된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이봉주에 대해 “그분 덕분에 내가 스타가 됐다. 나의 은인이자 스승이요. 애인이요.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라며 애틋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녀에게 전 남편 이봉조가 어떤 사람이었던 것인지 이 문장을 보면 알 수 있었는데요. 선생님 제발 그곳에서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셔 꽃길만 걸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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