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형사 “손발이 점점 굳다가 결국…”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1968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7기로 데뷔한 그는 탄탄한 연기 실력을 뽐내며 단숨에 정상 자리에 서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깜짝 놀랄 충격적인 사실을 공표합니다. 바로 파킨슨병과 유사한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이란 진단받아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팬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병은 많은 사람이 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을 정도로 아주 드문 희귀병이었고 결국 4년간의 힘든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배우 남성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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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남성훈은?

배우 남성훈 본명은 실제 이름이 권성준이며 태어난 지역인 고향은 경기도 오산시 성호면 부근에서 1945년 2월 13일 태어났습니다. 학력 사항은 서라벌 예술대학, 현재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출신이며 종교는 천주교, 세례명 요셉입니다.

남성훈 가족 관계로는 부인과 1남 1녀 자녀가 있으며 딸은 직업이 화가이며 아들은 과거 아버지가 출연했던 사랑과 야망 리메이크 드라마에 출연하여 배우 활동을 하였습니다. 첫 데뷔 시기는 1968년 TBC 공채 탤런트 7기로 입사하여 본격 데뷔를 하였습니다.

연기 활동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극단 활동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방송 진출의 문턱을 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탤런트 시험에 하도 많이 떨어져 면접관들이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자네 또 왔나?”하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그는 기죽지 않고 “붙을 때까지 오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연기에 대한 그의 집념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후 1968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7기로 데뷔하며 1971년 TBC 드라마 ‘그림자’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동양방송에서 주로 활동하다 MBC로 옮겨가, 1978년 MBC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남 형사역을 맡았고, ‘사랑과 야망’의 박태준으로 MBC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받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그가 문화방송으로 옮겨간 건 전두환 때 언론통폐합과는 상관없이 KBS에도 진출해 ‘목욕탕집 남자들’, ‘찬란한 여명’ 등에도 출연했습니다.

제과 창업자

그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신명제과 창업자입니다. 1977년 역삼동 도성초등학교 사거리에 여명제과라는 빵집을 개업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국내 최초로 일본 생크림 케이크를 도입해 한국 제빵 업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여명제과라는 상호로 빵집을 시작했지만, 여러 번 상호명이 변경됩니다.

법적으로 여명제과 상호를 사용할 수 없어 신명제과로 상호를 변경하고 처가 쪽 친척이 대치동에서 운영하던 여명제과도 결국 신명제과로 상호를 변경하게 됩니다. 이후 신명제과은 무한리필 케이크샵으로 컨셉을 변경했다가 원활한 운영이 되지 않아, 2016년 두 곳 모두 문을 닫게 됩니다.

그의 아들 역시…

아들 남승민 또한 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는 늘 연기자로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젠 제가 아버지 몫까지 연기에 열정을 불태우겠습니다. 아버지 이름에 절대 누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성장하는 연기자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잇겠습니다.”라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희귀병 투병

그가 파킨슨병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다발성신경위축증’이란 진단을 받은 건 6년 전으로 언제부턴가 신경에 이상이 생겨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자, 결국 98년 KBS 아침드라마 너와 나의 노래를 끝으로 30년 동안 몸담아온 연기 인생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마지막 작품이 돼버린 너와 나의 노래에 출연 중일 때도 몸이 많이 아픈 상태였어요. 기억력이 감퇴하여 대본 외우는 것을 힘겨워했지만, 몹시 즐거워했어요. 연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가족 못지않게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았거든요. 남편은 완쾌하면 다시 드라마에 출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어요.”라고 했습니다.

안타까운 비보

그러다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지내오다가 2002년 향년 58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 배문자 씨는 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병과 싸우느라 너무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엔 편안히 눈을 감으셨어요. 이젠 고통 없는 세상에서 편히 계시길….”이라며 말을 끝맺지 못하고 눈물로 고인을 어렵사리 떠나보냈다고 합니다.

또한 “남편은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소식을 듣고 찾아오겠다는 선후배들에게 늘 ‘이다음에 다 낳으면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라고 했어요. 참 다정다감한 남편이었고 아이들에게는 둘도 없이 자상한 아빠였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해마다 새 책을 받아오면 비닐로 곱게 겉표지를 싸주었어요. 그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딸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는 일도 즐겨 하셨어요.”라고 전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시종일관 배 씨의 곁을 지키고 있던 딸도 “아버지께서는 1년 4개월 전쯤부터는 아예 말을 못 했어요. 투병 생활 중에 의식은 있어서 사람들을 알아보시기는 했지만, 따로 유언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으셨겠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라면서 저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셨거든요. 제 옷을 사 와서 옷이 좀 크다 싶으면 손수 바짓단을 줄여서 다림질까지 해주신 분이셨어요.”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동료들의 애도

영안실을 찾은 탤런트 박상원과 이계인, 강석우 등 후배 연기자들은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습니다. 또한 그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최불암 씨는 수사반장에 함께 출연하던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며 “연기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남다른 성실한 배우였다”면서 “후배들에게도 본보기가 될 만한 연기자”라며 애도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에 너무 놀랐고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늘 멋있었던 배우인데….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정말 안타깝습니다라며 팬들도 안타까워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최불암은 인터뷰에서 “먼저 보내야하는 심정이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수사반장 네 명을 앞서 보냈다. 내가 죄가 있어 이런가 싶다“라며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최불암은 “이승에서 못한 걸 저승에서 하자고 말하고 싶다. 네 명 모두를 지켜주지 못한 것 같고, 관리해 주지 못한 것 같은 책임감과 부담감이 크다”며 동료의 죽음을 비통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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