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투병에도 연기 혼 불태운 여배우 “십이지장, 담도, 췌장 잘랐지만… 결국”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대왕 데뷔를 연기하던 故 김영애는 어느 날 갑자기 황달 증세가 일어나면서 열이 막 오르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황달 증상이 심해 처음에는 췌장염인 줄 알고 검진받았는데 암이 발견됐고, 수술 전날 담당 의사가 와서 하는 말이 췌장암은 이미 다 번져서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영애 씨는 초기에 발견돼서 천운이라고 말하며 9시간에 걸친 대수술도 성공적으로 마치며 그 어렵다는 췌장암 완치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췌장암이 재발한 그녀는 몸무게가 13kg이나 줄면서 앙상하게 남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했고 당시 주위에서는 모든 걸 다 접고 공기 좋은 데서 살려고 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배우가 배우답게 마지막까지 연기를 하다가 무대에서 쓰러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악화한 췌장암을 끝내 극복하지 못해 자신의 66번째 생일을 정확히 12일 앞두고 향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꽃처럼 아름다웠던 배우 故 김영애의 꽃잎이 떨어지는 봄날 돌아오지 못한 길을 떠나버린 그녀의 인생을 추억함과 더불어 탄탄대로 그녀의 인생에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어둠의 그림자 하나에 완전히 망해버린 이후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 때문에 그녀가 췌장암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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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영애는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가 잦아 그 때문에 초등학교 때는 결석하는 날이 많았고 중학교 때 악성 빈혈로 쓰러지기 일쑤였습니다. 당시 동네 의사들이 그녀에게 신경 굵기가 다른 사람의 반밖에 안 돼서 몸이 약하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 당돌하고 간이 컸던 그녀는 어머니가 어린 김영애에게 조선 팔도에 어쩌다 저렇게 앙칼진 게 나왔느냐?라고 했습니다. 또한 아버지는 굉장히 엄하신 분으로 그녀가 길거리에서 과자도 못 먹게 했고 연필과 공책을 다 쓰면 검사를 하고 새것을 주셨는데, 만약 낙서 같은 게 있으면 종아리를 치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대로 간이 컸던 그녀는 당시 공부가 하기 싫어서 부산 여상의 원서를 내놓고 아버지에게는 부산 여고에 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일로 아버지에게 쫓겨나 한 달간 이모 집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연기자 데뷔와 활동

그렇게 부산 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어느 날, 서울 친척 집에 왔는데 친척 언니가 너도 예쁘장하게 생겼으니 ‘배우 한 번 해보라’라며 뜬금없이 mbc 탤런트 시험 원서를 사가지고 왔고 이후 큰 뜻 없이 지원했던 그녀가 운 좋게 덜컥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그때는 탤런트 시험에 붙으면 방송사에서 월급을 줬는데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월급을 준다고 해서 배우를 했지만 배우가 뭔지 제대로 알았으면 최소한 이름이라도 예명으로 바꿔야 했다. 그럼 이혼해도 숨길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순진했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녀는 공채로 뽑힌 지 2년 만에 굉장히 빨리 주인공으로 발탁되었고 당시로서는 몇 년 안 된 신인 배우가 주인공을 한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이라 너무 긴장했던 그녀가 mbc 정문 앞에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찍은 민비라는 드라마로 마침내 배우 김영애가 만들어졌고, 이처럼 그녀는 데뷔 직후부터 별다른 무명 생활 없이 인기를 끌며 주연급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스타 반열에 올라 잘 나가던 그녀가 1975년에는 당시 부인과 아들 둘이 있던 11살 연상의 유부남 밴드 마스터 이종식과 사랑에 빠져버렸고 이후 간통죄로 고소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그녀의 연기 인생에 큰 치명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통제가 없어졌지만, 통제가 존재하던 1970년대의 보수적인 시대적 상황에서 미혼 연기자가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가락질을 받는 범죄이자,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져 한동안 그녀가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연기자로 복귀

그렇게 그녀가 이대로 연예계에서 사라지나 했으나 당시 세상을 뒤흔든 또 다른 초대형 스캔들 재벌집 아들 박동명 사건으로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사건을 조금 가장하면 TV나 영화에 출연하던 여배우들이 절반이 사라졌고 또한 사건에 연루된 여러 연예인과 달리, 김영애의 불륜은 상대가 재력가와는 거리가 먼 가난한 밴드 마스터였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이해할만한 순수한 사랑 아니냐?라며 오히려 김영애를 동정하는 여론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순간의 불장난이 아니라 서로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이였다라는 것이 두 사람의 결혼으로 증명되기도 했으며 그 결과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시 연예계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무리였던 간통으로 한동안 쉬었다가 복귀한 그녀는 이후에는 주연보다 여러 조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했고 선한 역과 악역을 넘나들며 시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훗날 최고의 중견 여배우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혼과 재혼

그러나 2001년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혼한 첫 번째 남편과 한동안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았지만, 남편 이 씨가 김영애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의심 등으로 인해서 결국 두 사람은 21년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이혼 후 그녀가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짐과 동시에 우울증 등 몇 가지 병을 앓게 되었고, 이후 그녀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한 수련원을 방문해서 기 치료를 받게 되는데, 그때 방문했던 수련원에서 두 번째 남편 기 치료 전문가 박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수련원에서 머물면서 기 치료를 받았던 인연으로 5세 연하의 박 씨와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황토 사업

한편 이때 그녀가 34년 동안 해오던 배우 생활 은퇴를 선언한 채, 남편과 함께 황토 사업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2000년대 전반 대한민국은 황토 붐이 크게 일어나고 있었고 그녀의 황토팩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2002년에 사업 매출이 25억 원을 달성하는가 싶더니, 이듬해는 250억 달성하고 급기야 2006년도에는 매출이 1,700억 원으로 급성장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가 생산하는 황토팩이 미국과 호주에까지 수출되면서 사업이 절정을 이루던 그때, 하지만 인생사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갑자기 이영돈 PD가 하던 KBS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김영애의 황토팩에는 중금속이 함유되었다라는 허위 방송이 방영되면서 그 잘나가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폭락하였고 결국 사업을 접는과 동시에 사업을 운영하던 사장 즉 두 번째 남편에게 이혼까지 당하고 말았습니다.

췌장암 판정으로..

이처럼 잘 되던 사업이 허위 보도 하나에 완전히 망해버린 이후 그녀는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이후 다시 연예계로 복귀해 왕성하게 활동하나 했지만, 그때 받은 충격과 후유증으로 끝내 췌장암 판정을 받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녀는 드라마 촬영 중에 병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숨긴 채, ‘마지막 쓰러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연기자의 자세다’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9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완치 판정을 받고 암을 이겨내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췌장암이 재발한 탓에 그녀는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을 정도로 심한 통증이 몰려왔고, 심지어 이후에는 십이지장부터 담도, 췌장 일부를 잘라내서 물만 먹어도 고통이 뒤따랐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국 그녀는 향년 65세의 나이로 봄날의 꽃처럼 먼 길을 떠나버렸고, 그리고 자기 몸 상태를 알고 있던 그녀가 한 기자에게 “우리 인생은 유한한 거다. 그래서 정리 좀 하고 가려고 하는데, 나를 좀 만나러 와달라.”라며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자신이 하늘로 가거든 이 인터뷰를 세상에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별로 보잘것없이 평범하게 태어나서 공부도 별로 많이 못 했는데 단지 운이 좋아서 배우가 됐고 과분하게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이 날 보고 반가워하고 즐거워해 주셨는데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사실 배우는 드라마 속에 있을 때나 멋있고 근사한 거지, 드라마 밖에서는 잘난 척 할 게 없는데 그런데도 사랑받았으니 너무 감사했다. 또한 사람들이 이영돈 PD에 관해서 묻는데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 따지면 나도 살면서 정말 부끄러운 일을 많이 했다.

즉, 누구를 뭐라고 하거나 미워할 차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은 어떤 미운 사람도 가슴에 남아 있지 않다. 누구를 원망하는 건 결국 나를 괴롭히는 건데, 그 시기를 그냥 나를 위해서 사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이제 주어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힘들지 않고 곱게 가는 게 소원이고, 주어진 대로 때가 되면 가야 한다. 내가 아프기 전에는 마지막 순간이 그냥 꿈 같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진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사는 거야, 아침에 눈을 뜨느냐? 아니냐? 의 문제일 뿐이다. 난 더하고 싶은 게 없다. 사랑도 원 없이 했고 다 했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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