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된 가수 가족들의 충격 만행 “정신병원에 감금당하고 결국…”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여러분들은 종교가 있으십니까? 우리 주변에는 종교를 가진 사람을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종교를 가지게 된다는 건 사람마다 각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종교마다 다른 교리와 가르침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론 선한 마음을 가지고 베풀며 살게 하는 것은 공통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종교 이야기로 시작하여 많은 분이 의아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오늘 이야기할 인물이 종교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주인공은 한때 노래 한 곡에 집 한 채 값을 받을 정도로 인기 스타였다가 갑자기 한순간에 스님이 된 이경미 씨입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스님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가 스님이 될 수밖에 없었던 놀라운 사연과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충격적인 반응, 그리고 최근 이경미 씨의 근황까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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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데뷔

1980년 음료 광고에 등장한 상큼한 이미지를 가진 귀여운 외모의 여고생이 단숨에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경미 씨가 첫 데뷔를 한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친구와 남산 등반을 하다가 한 관계자의 눈에 띄어 출연 제안을 받았고 연기자를 목표로 광고 모델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음료, 약품, 신용카드, 화장품 광고를 찍으며 광고 모델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광고 한 편당 당시 집 한 채 값인 1천만 원 정도를 받았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1984년에는 데뷔 앨범 소녀시절을 발매하며 지금도 활동 중인 이선희와 나란히 KBS 가요대상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인기는 물론, 이경미의 다재다능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청순한 외모와 시원한 가창력으로 어느새 가수로도 자리 잡은 그녀는 노래 실력뿐만 아니라 작사 실력의 외모까지 겸비하여 대중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아이유’와 비견될 정도로 당시 이경미 씨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렇게 큰 사랑과 인기를 받게 된 그녀였기에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습니다.

돌연 사라지다.

그러나 이경미 씨의 인기와 이런 다재다능함은 그녀에게 결코 행복만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이경미의 인기가 전성기라 불릴 만큼 좋았던 1986년 어느 날, 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100쇼에 출연하려고 대기 중이던 그녀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잠적이었기에 납치설 감금설까지 떠돌게 되었습니다. 이경미 씨의 측근 그 누구도 그녀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속사 방송사 관계자 가족들까지도 그녀를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경미의 이런 잠적은 처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18살에 시작된 연예계 생활로 마음의 병을 얻고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그녀를 힘들게 한 건 주변에서 여자 연예인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흔히 밤무대라고 불리는 업소에서 노래하고 나면 와서 자리에 앉았다 가라라는 메시지가 와서 불려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마치 자신이 꼭두각시 노리개처럼 느껴져 자괴감이 일어났다라고 밝혔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흔히 궁정동이라 불리는 정·재계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에 불려가 노래하는 한편 성희롱까지 견뎌야 했다고 합니다. 당시 여자 연예인들의 어두운 이면을 엿볼 수 있어 씁쓸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아무튼 어린 나이에 겪었을 수모가 이경미 씨에게는 마음의 병을 가지고 오게 한 것입니다. 그녀는 이후 그저 답답한 마음에 얼른 여길 떠야겠다라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이었습니다.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찾은 곳

평소에도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할 때마다 절을 찾기 시작한 이경미는 어느 날, 문득 ‘연예계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는 절에 들어가 종교에 귀의하고자 머리를 깎고 수도자의 길을 걸으려고 결심한 겁니다. ‘스님이 되기 위해 머리를 밀고 너무 좋아 춤을 추기까지 했다’라고 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난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있습니다.

정신병원 감금

하지만 그런 그녀의 가족들은 처음에는 이경미를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머리를 깎은 그녀를 찾아내 가발을 씌워 다시 방송에 출연시키기도 하고, 나중에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감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경미 씨의 어머니는 그녀가 있던 절에 큰스님 멱살을 잡고 절에서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딸이 잘나가는 가수에서 갑자기 스님이 된다라는 사실은 가족들 처지에서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한다 쳐도 가족들의 행동은 조금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그렇게까지 심하게 이경미 씨를 연예계에 복귀시키려고 했던 이유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경미가 7남매의 장녀로서 그동안 가장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그녀의 잠적은 가족에게는 생계의 위기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탓인지 결국 이경미 씨는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잠깐 환속하여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극심하게 반대하신 어머니는 결국…

이때 배우 김혜수가 출연한 사모곡의 주제곡을 부르며 그녀의 가수로서의 인기와 입지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습니다. 하지만 1991년쯤 더 이상 가족들 때문에 떠밀릴 수 없었던 그녀는 다시 한번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될 것을 단호히 밝힙니다. 그리고 한 번만 더 찾아오면 죽어버리겠다라는 선언까지 합니다.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이경미 씨의 어머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강경한 표현과 함께 사라져버린 그녀를 찾아 전국에 절을 찾아다니며 자기 딸이 돌아올 방법을 묻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한 스님에게 따님은 마음공부 하러 떠났으니 더 이상 찾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이경미의 어머니는 그제야 마음으로 그녀를 내려놓고 본인도 불심이 지극한 불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비로소 그녀가 원하던 삶을 살 수 있게 된 이경미는 그 후 3년간의 수행을 거치고 승가대학을 졸업하며 법명 보현스님으로 출가하게 됩니다.

최고의 인기가수에서 돌연 스님으로..

3년간의 수행 기간이 너무 고됐기 때문에 몸도 많이 상했지만, 마음만은 평안해졌다는 그녀는 더 밝은 얼굴로 변했습니다. 서른의 나이가 되기도 전에 인기 절정의 여가수가 돌연 스님이 되려고 결심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어두운 이면이 있었다는 증명이기도 해 안타까움과 친근함이 생기게 됩니다. 보현스님이 된 이경미는 1999년 그의 자전적 소설인 타래를 출간하며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해 천안의 부처님 마을이라는 장애인 시설을 설립하며 6여 년간 장애 아동들을 돌보는 삶을 살며 비구니 엄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합니다. 이후에는 별다른 소식을 전하지 않은 채, 20년 넘게 수행하는 수도승의 길만을 걷다, 2018년 KBS 속보이는 TV 인사이드에 출연하며 다시금 출가 전 그녀의 과거 심경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늘 뭔가가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허기가 있었다.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다.

이렇게 돈을 벌어서 어디에 뭘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했다.”라고 밝히며 당시 그녀가 가진 마음의 갈등에 대해 전했습니다. 이어 “압력밥솥이 어느 순간 갑자기 압이 터지는데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런 도망치는 행위를 해버린 것이었다.”라고도 이야기해 당시 그녀의 상태가 굉장히 심각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당시 고단했고 지쳤을 그녀의 삶에 위로를 표하게 됩니다. 2016년 보현스님은 유튜브 방송을 본격적으로 하며 생활 명상이나 생활 속에 참선하는 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친근하면서도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가지는 고민을 편안하게 풀어갈 수 있게 강의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그녀가 이제는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사랑을 베푸는 종교인의 모습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한때는 치솟는 인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스타에서 이제는 불가에 귀의해 참선을 이끄는 수도자로 사는 삶을 사는 보현스님, 이경미 씨가 평안을 찾은 만큼 더 이상의 고난은 찾아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불교의 포교를 더 행복하게 하시고 그녀가 말하는 참선의 가치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이경미, 그녀가 세운 뜻이자 행복의 우선순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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