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새 부인’ 개그우먼 4중 추돌 사고 “전신 마비에 혀까지 잃고…”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1980년대 당대 최고의 개그우먼이었던 이현주는 어느 날, 갑자기 방송에서 사라졌습니다. 최고로 잘 나갔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인생이라는 게 늘 그렇듯, 예상치 못한 사고가, 그것도 좋지 않은 사고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오

늘은 90년대를 풍미했고 각종 코미디 부문 신인상과 대상은 물론, 행사까지 섭렵하며 현금을 쓸어 담을 만큼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개그우먼 이현주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추돌
👉”개그우먼 이경애는 세 번째 결혼 후 하던 사업이 쫄딱 망해 결국…” 그녀의 안타까운 근황을 확인해 보세요.

데뷔와 활동

개그우먼 이현주 1966년 11월 29일생으로, 개그계에 데뷔한 건 1987년 MBC ‘개그콘서트‘에서 대상을 타면서 촉새 부인 캐릭터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현주는 자신의 개그우먼 생활을 대박이라고 꼽으며 “우연히 친구가 MBC에서 개그맨 대학생 콘테스트를 연다고 나가보라고 권유했다.

재미 삼아 나간 콘테스트가 인생을 대박치게 했다”라고 개그우먼이 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후 ‘청춘만만세’로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에는 우수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 중인 이경실, 박미선을 제치고 대상을 받으며 국민 개그맨 반열에 올랐을 정도이었습니다.

그녀는 “CF는 20편 정도 찍었는데 돈을 갈고리로 긁어모았는 표현이 맞다. 그 당시에 은행에만 있던 돈 세는 기계가 있었다. 옛날에 현금을 얼마나 많이 모았는지, 한 30년 전에도 몇십억 원 정도면 많이 버는 거였다. 보통 행사 한 번에 몇천만 원씩 벌었다”라고 했습니다.

끔직한 사고로…

화려한 생활이었으나, 어린 나이였던 이현주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합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경쟁, 시청률 부담 등등으로 너무나 힘들었던 순간에 불의의 사고가 터졌습니다. 1993년 대전에서 열린 친구의 결혼식을 다녀오다가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그녀는 목의 인대가 늘어나고 뇌압이 높아져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던 것입니다.

이현주는 “1993년도에 친구 결혼식을 보고 올라오는 중에 갑자기 뒤 차가 저희 차를 박았다. 4중 추돌 교통사고가 났다. 뒤에 있던 제가 앞 유리까지 튕겨 나갔다. 앞 유리가 깨졌으면 즉사했을 거다. 머리를 세게 부딪혔던 생각이 난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마비됐다. 거동을 할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현주는 “또 치과 치료를 받을 때 마취 주사를 맞고 마취가 풀리기 전에 라디오 대본을 봤다. 누가 과자 준 걸 아무 생각 없이 씹었는데 피가 대본 위로 떨어지더라. 알고 보니까 내 혀 살점 덩어리였다. 혀 절단 사고로 장애 5급 판정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환청과 환각까지….

연달아 벌어진 불행한 일은 이현주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렸습니다. 환청, 환각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방송 활동을 더는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때는 세상을 떠나는 걸 생각했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현주는 “환청, 환각이 제일 힘들었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상한 소리가 날 괴롭혔다. 병 고치려고 세상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가봤지만 정확한 병명이 나오진 않았다”라며 “직업이 개그맨인데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까 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약 먹고 잠자듯이 사라지면 고통도 없겠지! 생각도 해봤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까 그게 두려웠다”라고 털어놨습니다.

병을 고치러 사이비 종교까지….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사이비 종교에까지 찾아간 그녀는 “눈에 귀신이 있다라며 눈알을 쑤시더라. 눈알이 빠질 뻔했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현실이 감사하지만, 당시에는 죽으려고 유서까지 썼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현주는 유서까지 써놓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빛은 찾아왔습니다. 이현주는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됐다. 내가 죽으면 부모님이 어떨까, 부모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 죽으려고 유서를 썼는데 부모님께 불효자 같았다. 그렇게 2년 정도 지옥 같은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을 생각하며 견뎠고 마침내 건강을 되찾은 이현주는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 환자들을 도우며 나 같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강의도 많이 다니고 용기를 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근황을 전했습니다.

봉사하며 행복을 전파하는 행복 전도사 삶에 만족하고 있는 이현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또 좋은 일이 또 일어나서 50살에 연하 신랑과 결혼도 했다.”라고 전하며 행복감을 드러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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