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해 스님이 된 미스코리아 “깊은 산 토굴서 처참한 생활”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연예계 생활은 무척이나 화려하지만, 일부 연예인들은 정반대의 조용한 삶을 선망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주목받지 않고 싶다는 이유로 은퇴까지 감행하기도 합니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배우 MC까지 맡으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김성희는 이목이 쏠리는 삶에 염증을 느껴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를 떠나 이민까지 갔습니다. 이에 더해 속세와의 연도 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현스님으로 불교의 귀의한 가수 이경미, 모델 활동을 했던 덕원스님, 그리고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이제는 불교의 귀한 보타스님 차우림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차우림은 어떤 이유로 연예계를 떠나고 또 속세까지 등져야만 했을까요? 오늘은 보타스님 차우림의 사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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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시절

한 방송을 통해 미스코리아 차우림에 소식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차우림은 1994년 미스코리아 인천 선으로 본선까지 진출한 경력이 있습니다. 당시 미스코리아 ‘진’은 한성주, ‘미’는 성현아가 차지했습니다. 차우림 역시 쟁쟁한 미모의 참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미스코리아 출신 스타였습니다.

그녀는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한 이후에 178cm의 큰 키를 장점으로 삼아 모델 활동까지 했습니다. 한창 제일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냈다가 난데없이 불교에 귀의했다는 사실을 전해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깊은 산속 생활하며…

방송 화면에 담긴 그녀의 모습은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고 집안도 부유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는 데는 한 방송 공개된 영상에는 한 여성이 절에서 머리를 삭발하고 있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삭발식을 거행하고 있는 여성의 정체는 다름 아닌 차우림이었습니다. 또한 산등성이 바위 아래 작은 문 안에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믿지 못할 아담한 토굴에 차우림은 큰 키를 욱여넣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걱정하는 눈빛들에 차우림은 “씻는 것도 불편하지만 참아내야 하는 것”이라며 온화한 미소를 보였습니다. 기도하면서는 연거푸 눈물을 흘렸고 마음속 번뇌를 쫓고자 시작한 3000배는 몸도 마음도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투박한 생활에서는 화려한 과거의 영광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차우림은 영하 날씨에도 맨손으로 빨래했으며 흐르는 시냇물을 통해 담아가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어떤 편의시설도 없는 그곳은 불조차도 마음껏 쓸 수 없었습니다.

차우림은 날곡식을 담은 그릇에 찬물을 부어놓고 곡식이 불면 먹는 생활을 6개월간 이어왔습니다. 여의찮은 끼니조차 하루에 한 번만 먹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그녀가 잊지 않고 매일같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경건한 자세로 매일 2시간씩 불경을 베껴 썼습니다. 그 행위로 마음에 쌓인 번뇌를 내쫓고 수행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녀에게는 어떤 번뇌가 쌓여 있기에 산속에서 고생을 하며 수련을 하는 걸까요?

남편은 교통사고로…

차우림은 힘겹게 말문을 열어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차우림은 94년대 미스코리아를 시작으로 짧은 모델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곧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화려한 삶을 살았던 만큼 그녀는 결혼식도 화려하게 하며 남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주례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해줬을 정도입니다.

남편 역시 잘나가는 사업가로 그녀는 계속해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IMF가 오면서 그녀는 큰 절망을 겪어야 했습니다. 잘 운영하던 사업체가 무너지며 부도났고 결국 집도 차도 모두 압류되는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사랑하는 남편은 결혼한 지 4년 만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차우림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하나뿐인 아들만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 다른 시련

차우림은 각고의 노력으로 아들을 성인까지 다 키워낸 후 이제 한숨 돌리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그녀는 또 다른 큰 시련을 맞이합니다. 하나뿐인 아들이 갑자기 심한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진행했지만, 아들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은 “엄마! 누군가가 자꾸 나보고 죽으라 해.”라면서 괴로움을 토로했습니다.

아들의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고 잠도 못 이뤘으며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증상에 차우림은 아들이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싶어 아들의 손을 잡고 정신의학과를 방문했습니다. 6개월간 계속되는 치료에 두 사람은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아들의 증세는 차도를 보이지 못했고 약까지 증량해가면서 손을 썼지만 결국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끼니도 제대로 못 넘기는 아들을 보며 엄마 차우림의 마음은 찢어져만 갔습니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겠다’라며 날마다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아무것도 못 먹는 아들을 위해 차우림은 매일 코코넛을 즙으로 만들어 먹이며 목숨을 연명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걸 가만히 지켜봐야만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병원에서도 원인을 잡아내지 못하고 그 어떤 노력에도 효과가 없자 그녀는 종교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속세를 떠나야 했던 이유

틈날 때면 절에 가서 기도하며 아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아들의 눈빛을 보고 제3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병원에 가서 고쳐야 할 병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그녀는 유명한 스님들의 도움을 받고 아들은 점점 나아졌습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기에 차우림은 화려한 속세의 삶을 뒤로 하고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오로지 하나뿐인 아들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단 하나뿐인 삶의 등불을 지키기 위해 천륜을 끊어내고 출가한 것입니다. 차우림은 속세에 여유롭고 편한 생활을 모두 등지고 떠나왔습니다. 많은 문명의 혜택을 모두 포기하면 아들이 다시는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붙잡고 그녀는 출가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과 걱정은 출가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차우림은 “나는 자식을 위해 이런 선택을 했지만, 아이는 어떻게 보면 엄마도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생각 안 하기를 바라지만….”이라며 아들의 걱정을 계속했습니다. 자식 걱정하는 것은 비단 차우림뿐이 아니었습니다. 차우림의 부모는 딸이 힘든 생활을 하는 데에 걱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우림의 어머니는 “그 길을 택했을 때 얼마나 생각이 많고 깊었겠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하산에서 부모 모시고 잘 살면 좋겠다. 부모가 얼마나 산다고 같이 따뜻한 밥 먹고 해야지….”라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속세를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끝까지 딸을 향한 걱정을 내비쳤습니다.

이에 차우림은 “속세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럴 마음도 없고요. 출발하는 게 머리만 깎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 정도 각오 없이 결정한 일도 아니고서요. 저는 제 갈 길을 최선을 다해서 갈 거예요.”라면서 굳은 결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녀도 “누군가의 어머니인 만큼 다시 속세로 돌아오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녀의 아들은 완쾌되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차우림은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 숱하게 찾아왔던 과거의 번뇌, 앞으로도 수행에 집중하며 참된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며 차우림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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