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주승 빈소에 허락받지 못한 조문객 “뻔뻔하게 감히 어디라고 찾아와”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대한민국의 희대의 경제사범 장영자가 있습니다. 장영자는 큰 손이라고 불리며 남편과 거액의 어음 사건을 벌여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놨습니다. 장영자 사건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시대극에서 그녀의 사건이 재구성될 정도로 단군 이래 최대 금융 스캔들로 꼽힙니다.

그렇게 큰 사건을 일으켰던 주인공이기에 장영자에게 고통받은 피해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유독 그녀 때문에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편하게 눈을 감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장영자의 사위라는 꼬리표로 평생을 고통받았던 배우 김주승입니다. 오늘은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김주승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빈소
👉배우 임동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병원에서 “너무 늦었다. 장례를 준비하셔라.”라는 말을 듣고 결국…

미국으로 도피

80년대 청춘스타 김주승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더 빛나는 외모로 말도 안 되게 잘생겼다며 큰 인기를 끈 배우입니다. 김주승은 1983년 MBC 공채 16기 탤런트로 데뷔해 86년에는 MBC 연예대상 신인상을 받는 등 수려한 외모와 안정적인 연기력을 인정받으면서 8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하기도 했습니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김주승은 90년에는 큰손 장영자의 사위가 되며 크게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김주승은 94년 장영자의 부도사건 여파로 미국으로 도피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주승은 잘나가는 사업가로 이름을 알렸는데 장영자 사건과 엮이며 사업 부도를 맞았고 40여 억의 거액 사기 혐의로 수배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잘 운영하던 사업체와 배우로 사는 삶을 포기하고 도피하듯 오른 이민 길에 김주승은 참 많이도 힘들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장암

1996년에는 미국 생활을 끝내고 다시 귀국해 성공적인 재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SBS 드라마 형제의 강으로 성공적인 복귀를 마친 김주승은 이후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해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배우와 제작자로 활약하던 김주승은 97년 신장암 판정을 받으며 다시 한번 인생의 좌절을 맛봤습니다. 그러던 2002년 김주승은 병세가 호전되어 연예계에 다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연기자로서의 복귀와 함께 사업에도 다시 손을 뻗치기도 했습니다.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

김주승은 연기자와 방송국 그리고 시청자들까지 모두가 만족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연기자 최초로 직접 드라마 제작에 나섰습니다. 게다가 김주승은 평소 연기자 처우 개선에 관한 관심도 컸다고 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김주승은 그의 뜻에 대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왜 사서 고생하느냐?라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협회장을 하면서 나이가 들어 소외되어 가는 연기자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연기자들을 보며 제작 환경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세상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얼마나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그런 소수 권익을 보호해주면서 드라마를 잘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김주승은 제작자로서 단순히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이 아닌 따뜻한 사람 냄새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가 제작한 드라마 나도야 간다는 청춘남녀 일색인 여느 드라마와는 달리, 참 따뜻한 가족 이야기였습니다. “드라마가 언제부터인가 가족을 벗어나서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 세 자매와 모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게 될 겁니다.”라고 밝힌 김주성은 나도야 간다에서 40살 넘어 딸과 같은 학번으로 대학에 다니는 엄마를 주인공으로 세 자매가 펼치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드라마 제작하며 힘든 점을 묻자, “캐스팅에 관해 힘들었다.”라는 점도 밝혔습니다.

“자신이 연기하면서도 피디들로부터 캐스팅 어렵단 말을 들었지만 이렇게 진 빠질 줄은 몰랐다.”라며 고충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연기하며 쌓은 인맥이 도움 되고 있어요. 이번 드라마에 출연하는 김미숙 씨, 정보석 씨가 다 그런 인연이더라며 연기자로서의 경력이 제작자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고마운 아내

그리고 김주승은 96년 부도로 인한 수배로 미국으로 도피했을 당시도 회상했습니다. 그는 사업실패로 자존심 큰 상처를 입은 나머지,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며 몸을 학대했다고 합니다. “저 하나쯤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아마 혼자였으면 견뎌내기 힘들었을 겁니다.”라고 고백한 김주승은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드러냈습니다.

96년 당시 김주승은 도망치듯 떠나야만 했던 터라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미국행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랬던 나머지 경제적인 어려움도 심하게 겪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아내가 번역일을 해서 부쳐주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재기를 생각하게 됐다.

여러 차례 이혼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그건 우리 부부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얘기.”라며 그간 돌았던 이혼설에 대해서도 일축했습니다. 김주승은 서울에서 뒷바라지하고 있는 아내를 생각하며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또한, 부와 명예를 잃었으니 건강이라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술 담배부터 끊었다고 합니다.

또다시 시작된 건강악화

피 끓는 노력으로 귀국 후 재기에 성공한 그였지만 복귀작 형제의 강으로 모든 상황이 나아질 무렵, 김주승은 신장암 판정으로 또 한 번의 좌절을 맛봤다고 합니다. 신장은 온몸의 혈액순환을 관장하는 장기로, 암이 생기면 전이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합니다. 의사도 그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하루빨리 수술하자 만류했지만, 김주승은 그럴 수 없었다고 합니다.

형제의 강은 그가 어두운 시간을 지나 다시 빛을 보게 해준 작품으로 김주승에게도 무척이나 의미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목숨을 담보로 온 힘을 다해 연기했고 작품을 끝내고 나서야 수술대에 올랐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다시 행복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행복을 다 누리지도 못한 채, 그는 다시 한번 암 진단받게 됩니다. 이번에는 췌장암입니다. 두 번째 암으로 큰 고통에 휩싸인 김주승은 주변과 연락을 끊고 투병 생활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이혼

이번에는 힘든 시절 그를 지지해줬던 아내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김주승은 2007년 1월, 17년 만에 아내와 이혼하게 됩니다. 당사자가 아닌 만큼 정확한 이혼 사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연이은 사업 실패와 투병 생활로 힘들어진 환경 탓이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두 사람의 이혼을 두고 건강에 이상이 생긴 김주승이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집을 나와 잠적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혼으로 발전되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밝히기 힘든 사적인 이유로 남편이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요즘 여러 가지로 복잡해 혼자 지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한 부인 김 씨의 인터뷰가 그 근거로 언급되기도 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잇따른 사업 실패와 이혼 꾸준히 언급되는 장모님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김주승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간 마음고생을 겪으며 몸까지 쇠약해져서인지 김주승은 결국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생전 시끄러운 삶 속에서 많이 고통받았던 그이기에 가는 길은 조용히 가고 싶어서였을까요. 김주승은 신문에 부고도 내지 않은 채, 모든 조문까지 받지 않고 쓸쓸히 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이 돼서야 뒤늦게 소식을 듣고 하희라, 김정현, 정보석 등 평소 고인과 가까이 지내던 동료들이 그를 찾았습니다. “조문받지 않겠다”라는 유족 측의 간곡한 뜻에 따라가는 길을 배웅조차 못 했다고 합니다.

김주승은 마지막 가는 길 조용히 세상을 마감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족이 말한 발언은 조문받지 말 것을 부탁하는 유언을 남긴 채 홀로 쓸쓸히 떠났다고 합니다. 고인의 유언대로 조문객을 받지 않았던 그의 빈소는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의 마지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쓸쓸했습니다. 하늘에서는 생전 받은 고통 다 잊고 편안해지길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 유튜브 “연예인국민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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