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배우 김영옥 안타까운 현재 상황 “영원히 혈육과 못 만납니다” 어떤 상황인지 지금 확인해 보세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배우가 있습니다. 아름다웠던 한때의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는 배우가 있고, 반면 함께 울고 웃으며 오랫동안 살 비비며 산 가족처럼 함께 늙어 가는 배우도 있습니다. 올해 나이 84세, 현재 대한민국 현역 최고령 여배우인 김영옥은 반세기가 넘도록 시청자들의 아내로, 엄마로, 할머니로 함께 해왔으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연기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이름 가족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또한 그녀의 연기가 유독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로는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김영옥 속에 그 캐릭터를 녹여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매번 새로운 드라마를 할 때마다 새로운 인생을 산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오랜 연기생활 동안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할머니로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당연할 만큼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그녀였지만 배우로서의 김영옥과 달리, 정작 인간 김영옥의 삶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만큼 눈물로 얼룩진 인생이었습니다.

한 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란 드라마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연기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실제 자식들에게 그녀가 “만약 내가 진짜로 치매에 걸리면 병원에 갖다 놔라. 내가 모아놓은 돈이 충분할 테니까 괜히 불효랍시고 집 안에 모셔두는 것이 가족들이 감당 안 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이유와 더불어 그녀의 너무나 슬픈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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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겨운 어린 시절

1938년 일제강점기 때 태어난 김영옥은 8살이 되던 해에 해방이 되었고, 그로부터 5년 뒤 전쟁이 뭔지도 몰랐던 14살에 6.25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폭격 소리에 놀란 동네 사람들이 이북에서 쳐들어왔다라며 난리가 났고, 그렇게 눈을 떠보니 전쟁 한가운데 있던 그녀는 설상가상 피난도 못 가고 서울에 남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겨우 14살에 소녀가 겪어야 했던 전쟁의 비극은 정말 안타깝지만, 그녀의 가족에게도 비극이 드리우고 맙니다.

연세대학교 수재였던 21살의 큰 오빠가 아무것도 모른 채, 북한의 정규군을 지원하기 위해 인민 의용군으로 징집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어머니가 두 아들이 행여나 인민군으로 징집될까 봐, 집 안에 다락에 두 아들을 숨겨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연세대학교 한 학생이 “이제 인민공화국 시대가 됐으니까 지금 당장 학교로 안 나오면 제적당한다”라는 말에 당시 대학교 다니는 게 최선이었던 큰 오빠가 바보처럼 뛰어간 뒤로, 그 길로 인민군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인민군에 들어간 큰 오빠가 언젠가 살아서 돌아오겠지라며 그녀의 가족들은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하지만 1.45 후퇴 때 작은 오빠마저 국군으로 나가면서 인민군이었던 큰 오빠와 급기야 형제간에 서로 총대를 겨누고 싸워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영화 태극기 날리며의 장동건과 원빈 같은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작은 오빠는 천만다행으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큰오빠는 가족들의 간절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어머니가 갑자기 사라진 큰아들 생각에 피눈물을 흘리며 여기저기 점도 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으며 그때마다 “큰아들이 어딘가에 살아있다.”라고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 큰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야만 했습니다.

아나운서와 결혼

그렇게 전쟁이 끝난 후에는 20대 초반이었던 그녀는 KBS 아나운서로 입사했고 같은 아나운서였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이른 나이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남편이 결혼과 동시에 군대에 가는 바람에 홀로 남겨진 그녀가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설상가상 당시 아나운서의 월급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결국 아나운서마저 8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말았습니다.

본격적인 배우활동

이후 MBC 성우를 거쳐 배우로 활동하게 된 그녀가 우리나라 텔레비전 최초의 드라마에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몇몇 배우를 제외한 모든 배우가 그렇듯, 20대 후반부터 할머니 분장에, 노인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노인 역할만 맡게 된 그녀가 환갑도 되기 전인 1996년에는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치매 노인 역할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동년배 뻘인 배우 주현과 나문희가 그 드라마에서 아들과 며느리 역할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항상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지만, 자신은 노망난 늙은이 역할만 자주 하다 보니, 그 이상 나올 게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노희경 작가한테 “이제 망령 난 할머니는 그만하고 싶다.”라고 했더니 그때 노희경 작가의 말이 “예전에 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영화로 만드는데 그녀가 맡았던 치매에 걸린 할머니 역을 故 김지영 씨가 하게 됐다.”라고 했습니다. 막상 그렇게 되니 한때 원망 섞인 서운함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큰 오빠와의 만남

한편 2000년에는 6.25 전쟁으로 인해 50년간 이별했던 큰 오빠와 상상도 못 했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당시 그녀가 SBS에서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을 때, 큰오빠가 그녀를 찾는다라는 연락이 오게 됩니다. 그렇게 50년간 생사도 모르던 상황에서 2000년 제2차 이산가족 상봉으로 인해 두 사람은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모님이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마음이었지만 그때는 이미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은 후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큰 오빠와 이별한 당시에는 21살 청년이었으나, 흰머리 가득한 71살에 상봉하다 보니 예전의 얼굴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라고 했으며 “젊은 시절 오빠가 농구를 해서 살도 안 찌고 몸도 빳빳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은 아주 짧은 만남이었고, 이후 또다시 연락이 없어 23년이 지난 지금까지 큰 오빠의 생사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살아있다면 현재 나이 94세라 사망했을 거라 예상됩니다.

아픈 손자와 딸, 그리고 그녀의 삶

마지막으로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24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해 아내가 되고, 자녀 셋 둔 엄마가 되고, 이후 손자를 거느린 할머니가 됐다. 그리고 손자가 지금 32살인데, 5년 전 술을 많이 먹은 사람이 대포차에 면허도 없이 길에서 택시를 잡은 손자를 받고 말았다.

이후 손자는 혼수상태에 빠져 생사를 오갔고 심지어 그때 우리 딸이 깨어나지 못하는 손자의 손을 주무르고 수건으로 닦고 마사지를 해주며 지키다가, 결국 딸마저 쓰러지고 말았다. 그래서 현재 나는 딸을 대신해 우리 집에서 손자를 돌보고 있다. 그리고 내가 버텨야만 이 아이를 챙길 수 있다는생각이 들어, 그때부터는 건강을 더욱 챙기게 되더라.”

“아무튼 내가 이 나이에 손주를 돌보게 되었지만, 한편으론 손주가 나를 돌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다행히 우리 손자가 지금은 의식을 회복해서 이제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좋아졌고, 이제 나는 그저 우리 딸 건강하라고 기도한다. 딸한테도 네가 건강해야 손자도 일어난다. 내가 손주를 데리고 있는 동안 걱정하지 말고 잘하고 견뎌라.라고 말했다.”

“나도 여태껏 살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리고 어른들이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게 젊은 친구들에게 함부로 이래라저래라할 필요가 없다. 내버려 두고 받아주면서 조언해주는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생은 故 천상벽 시인의 시처럼 ‘인생은 소풍 왔다가 가는 거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소풍이 길다고 하면 길고 또 너무 행복한 소풍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우여곡절도 많고 풀어야 할 실타래도 많다. 그러나 인생은 복잡하면서도 그래도 살만하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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