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돈나 안타깝게 성대 마비로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에 결국…” 그녀의 안타까운 상황을 확인해 보세요

엄정화 씨는 가수로서 크게 성공했으며 배우 역시도 그녀의 존재는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닥터 차정숙에 출연하며 가정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방송 내용으로 시청률 16%대를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처음에 엄정화 씨는 가수인 듯한 배우, 배우인 듯한 가수로 애매모호한 위치였으나, 그녀의 투트랙 전략으로, 가수로써는 이 세상 완전 센 언니 캐릭터로, 그리고 배우는 현실적인 사람으로서의 캐릭터로 포지셔닝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성공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때 정신병에 걸릴 것 같고 인생이 끝이라는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녀에게 벌어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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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엄정화 씨는 1969년 8월 17일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태어났으며, 4남매 중 둘째입니다. 언니와 여동생이 있으며, 남동생은 그 유명한 배우 엄태웅 씨입니다. 아버지는 트럼펫 연주가이자, 서라벌 예대에서 음악을 전공한 중학교 음악 선생님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엄정화 씨가 겨우 6살 때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고, 가족은 살 곳이 없어 아버지가 다니시던 남자 중학교의 매점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며 홀로 내 아이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단칸방에 온 식구가 살기도 했는데, 당시 집에 오면 하루아침에 세간살이가 없어지고 동생 엄태웅 씨는 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운 생활에 대학교에 갈 형편이 못 되었던 터라, 일찍이 공부를 포기한 엄정화 씨는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를 꿈꾸었습니다. 엄정화 씨는 아버지를 닮아 그런지 노래 쪽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엄정화 씨는 한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시절에 들국화 콘서트를 보러 서울에 올라오기도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학창 시절부터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또한 고등학교 시절에도 노래 잘 부르는 것으로 유명한 학생이었으며, 소풍이나 장기자랑 시간에는 친구들의 신청곡이 밀릴 정도였고, 노래와 춤, 친구들과 노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고 합니다.

엄정화 씨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고백해 많은 사람의 응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어머니와 함께 상경에서 자신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머니는 떡볶이,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를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 알바 일을 끝내고 엄마의 포장마차를 찾았을 때, 때마침 단속에 걸려 엄마는 포장마차를 끌고, 자신은 포장마차를 밀어야 했다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MBC 합창단 입단

엄정화 씨는 또 “고교 때 사실 공부를 안 해서 회사에 시험 치고 갈 입장은 아니고, 단원을 뽑는 광고 같은 걸 유심히 보던 중, 합창단 모집 광고를 보고 오디션을 봤었다.”라며, 1차 서류에서 전문대졸 이상만 뽑는 학력 제한 때문에 떨어졌지만, 나를 좋게 본 선배님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고MBC 합창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학력이 낮아 호봉이 제일 낮았다는 엄정화 씨는 합창단 첫 월급 80만 원을 엄마에게 드렸고, 형편이 빠듯해 당시 코미디언 이주일 씨가 운영했던 극장식 바인홀리데이 인 서울`에서 코러스 아르바이트를 해서 150만 원을 받았다는 일도 기억했습니다. 이렇게 그녀는 20살 때부터 아버지 대신 가족을 책임지기 시작했습니다. “합창단 시절, 초창기에는 가장 막내라서 캐스팅이 잘 안 돼요. 울기도 많이 울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영화 데뷔하며 승승장구

그러나 합창단원이라는 직업은 그녀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엄정화 씨가 MBC 합창단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엄정화 씨는 한 쇼 프로그램에서 배우 최진실 씨의 노래를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엄정화 씨는 최진실 씨의 소속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엄정화 씨와 최진실 씨는 매우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또한 합창단 시절 양수경 씨의 코러스로 참여한 후, 가수 제의를 받아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1989년부터 2년간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카메라에 대한 실전을 터득한 그녀는 나중에 가수로 데뷔한 후 합창단원으로 받은 훈련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합창단원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감지덕지했는데, 그 후 그녀의 인생은 술술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에 배우 심혜진 씨 주연의 영화 결혼 이야기의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데뷔했고, 다음 해인 1993년 신인 유하 감독의 첫 데뷔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의 주연을 최민수, 홍학표 씨 등과 맡으면서 본격적인 연예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유하 감독은 엄정화 씨에게 “너는 오렌지족처럼 생겼는데 눈은 되게 착하다.”라고 하며 캐스팅했고, 이 영화에서 팜므파탈 역을 맡았던 엄정화 씨는 영화의 삽입곡이었던 신해철 작사, 작곡의 눈동자로 가수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 영화 개봉 시 엄정화 씨는 MBC의 합창단원이었다는 전력 때문에 연기력을 의심받고 있지만, “이번 기회의 노래보다 연기가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라고 코멘트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부른 눈동자에서 엄정화 씨는 당시 청순함이 대세이던 여자 가수 중에서 섹시한 분위기를 풍기며 데뷔부터 남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합니다.

가수로도 성공하며..

그러다 1996년에 낸 2집 음반에서 슬픈 기대하늘만 허락한 사랑이 히트했습니다. 슬픈기대는 가발을 쓴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았고, 하늘만 허락한 사랑은 엄정화 씨를 대표하는 발라드곡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엄정화 씨는 가수로서의 커리어의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1997년 발표한 3집부터 엄정화 씨는 작곡가 주영훈 씨와 함께 일하게 됩니다. 주영훈 씨가 작곡한 배반의 장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녀가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주영훈 씨와의 성공적인 결과물을 얻어낸 엄정화 씨는 또 한 번 그와 손을 잡습니다. 노래 포이즈는 배반의 장미를 뛰어넘는 엄청난 히트를 했습니다. 당시 엄정화 씨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서, 하나의 패션 아이콘이자,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포이즌과 함께 무대에서 선보였던 엄정화 씨의 단발머리 스타일과 사이버틱 메이크업을 비롯해, 하늘을 찌르는 댄스 동작 역시 센스에이션을 일으키며 큰 반향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후, 그녀가 선택한 후속곡은 박진영 씨와의 합작품이었던 “초대”였습니다.

긴 머리에 검은 드레스 부채를 들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무대와 함께, 상반신 노출, 마사지 장면 등 에로틱한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감도는 뮤직비디오를 시장에 내놓으며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후 몰라, 페스티벌, 다가라, 디스코 등등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승승장구합니다.

연기의 터닝포인트

엄정화 씨는 2002년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연기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됩니다. 남자 주인공 감우성 씨의 출연은 진작 결정되어 있었지만, 이 영화의 과감한 노출과 급진적인 대사로 여자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고사하면서 1년여를 기다리다가 엄정화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주위에 엄청난 만류를 뿌리치고 시나리오에 힘을 믿고 출연을 결정했으며, 도발적인 연기를 선보인 엄정화 씨는 이 영화로 백상 예술대상에서 최우수여자연기상을 수상하며 성공적인 영화 복귀를 알렸습니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호평받자, 엄정화 씨의 배우로서의 행보는 탄력을 받게 됩니다. 사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엄정화 씨는 어쩌면 과소평가 되는지도 모른다고 평가도 있었습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해운대에서 엄정화 씨를 처음으로 천만 배우로 등극시키기도 했습니다.

갑상샘 암 판정

이렇게 가수와 배우로 너무나 쉴 틈 없이 일하다가 큰 고비를 맞게 됩니다. 암에 걸리고 말았는데, 이 암이라는 악몽은 그녀에게서 아주 소중한 것을 빼앗았습니다. 종합검진을 받던 중 초기 단계의 갑상샘암을 발견하여 2010년 초, 내시경 절제술로 갑상샘암 수술받게 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후 영화 마마, 영화 댄싱퀸의 황정민 씨와 함께 주연을 출연하였습니다. 특히 ‘댄싱퀸’는 400만 관객을 넘기는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인생이 끝났다’라는 생각까지…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배우로서의 행보는 활발하지만, 가수로서는 자주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MBC 방송 환불원정대 프로젝트를 통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갑상샘암 수술 중에 성대를 다쳐 왼쪽 성대 신경이 마비되어 지금도 성대가 제대로 닫히지 않는 상태”라고 합니다.

“수술 직후에는 목에서 바람 새는 소리만 났기에 정신병이 오는 것 같았다.”라고 할 만큼 힘들었으며,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이전 방송에서 고백하길 “수술 후에 한 달이 지나도록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난 이제 노래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연기도 못하고 그럼 어떡하지”라는 오만가지 생각에 엄정화는 괴로워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주사를 이용한 치료법을 통해 조금씩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마저도 일시적이라 1년에 2~3번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엄정화는 “그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숨소리조차, 말하는 것조차 다 너무 소중해졌다”라고 밝혔고 현재는 주사를 맞지 않고 재활 치료를 통해 많이 호전된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그나마 목소리가 어느 정도 돌아와 연기 활동은 활발히 하고 있지만, 일이 있고 난 뒤에 정규 앨범은 10집 한 장뿐입니다. 안타깝게도 엄정화 씨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파와 솔, 그리고 라 음역을 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굴의 의지로 이런 한계도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중년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물을 연기하며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엄정화 씨는 시대를 이끌어가는 능력자라는 생각이 들며 앞으로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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