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호 그동안 어찌 숨기고 살았나 “숨겨놓은 세 아이의 정체 밝혀져” 그의 안타까운 상황을 확인해 보세요

트로트계의 ‘BTS’, ‘엄통령’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장민호는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민호의 데뷔 역사를 알고 나면 정말 깜짝 놀라실 분들이 많으실거라 생각듭니다.

오늘은 장민호가 어려운 무명 시절을 딛고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절대 밝히고 싶지 않았던 과거 무명시절 숨겨둔 귀한 새 아이가 있다고 하는데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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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데뷔

장민호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6년 전인 97년도, 아이돌 그룹 ‘유비스’를 통해 데뷔했습니다. 장민호는 ‘유비스’ 시절, 너무 어린 나이라 뭐가 음악이고 가수인지조차 잘 몰랐다고 합니다. 장민호는 외모가 출중했기에 중학생 때부터 연기 학원을 다니며, 단역과 cf, 촬영 등을 하며 연예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유비스’로 활동할 당시, 기계처럼 스케줄을 소화하고, 팬들에게 둘러싸여도 피곤함이 앞서서 좋고, 감사한지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소속사 대표에게 구타에 시달리면서 ‘유비스’ 시절이 다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2년 만에 소속사가 망하면서 자연스레 아이돌 그룹 생활은 접게 되었습니다.

30대 초반까지 당시 소속사 대표와 비슷한 눈빛을 가진 사람을 보면 식은 땀을 흘릴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10년 후 사장과 화해를 하면서 나아졌다고 합니다. 정말 폭력은 어른에게도 크나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 같습니다.

인기 수영강사

장민호는 가수 활동이 실패하고 바로 수영 강사를 하였고 합니다. 당시 오후반을 맡았다가, 오전반 어머니들의 항의로 수영장 강습의 한창때인 오전 반으로 내려가서 2년 동안 수영 강사로서 일했다고 합니다. 잘생긴 아이돌 출신 수영 강사로 다른 수영장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장민호 씨의 인기는 어머니들에게 최고였고, 그 당시 경험으로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분들과 소통하고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들이 진짜 수영을 배우러 온다기보다는 스트레스를 풀고 아들 버린 자신에게 하소연하고 수달을 떨며, 집안일과 남편, 자식들과 속상한 일을 다 풀고 간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님들의 심리와 행동 방식에 대해 잘 학습한 덕분인지 매니저, 사회자들보다 훨씬 분위기를 잘 이끄는 듯했습니다. 장민호 씨는 오래도록 무명 시절과 실패를 많이 겪으며, 지금의 큰 인기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멘탈을 잘 다져온 것 같습니다.

실패를 경험하며 결국…

뼈 아픈 첫 실패를 겪은 장민호는 이후 무려 7년 만에 2004년 발라드 그룹 바람으로 다시 한번 연예계에 도전장을 내밀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또 한 번 쫄딱 망했습니다. 장민호는 이에 굴하지 않고, 2011년, 사랑해 누나라는 곡을 앞세운 트로트 가수로의 변신을 시도합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또 망했습니다. 결국 월세 20만 원짜리 방에 살며 정말 힘든 무명 가수 시절을 겪었습니다. 2012년, 장민호는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이라는 KBS 2TV에 새 프로그램을 통해 1년 만에 재기에 도전하게 됩니다. 이번엔 출연 후 웃음까지 경험하게 되면서 이제 드디어 성공 가도를 달리는가 싶게 됩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최악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폐지되었습니다.

그렇게 가난과 실패의 길만 걷던 장민호는 2014년 발표한 신곡 남자는 말합니다를 통해 드디어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성인가요로 발표한 `남자는 말합니다’는 성인가요 차트에서 고공행진을 하며 장민호의 인지도를 대폭 높여주게 되었습니다.

‘미스터 트롯’ 출연 계기

장민호는 1977년 9월 11일생으로, 장민호의 올해 나이는 46세입니다. 장민호의 나이가 많다는 것은 많은 분이 알고 계셨을 테지만, 40대 중반이라는 것까지는 잘 모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장민호가 나이에 비해 워낙 동안일 뿐만 아니라, 굉장히 젊은 센스를 자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장민호는 미스터 트롯 참가 전, 동료들에게 출연 여부를 들게 됩니다. 장민호는 당시 ‘미스터 트롯’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스터 트롯 첫 오디션 당시, 출연 안 하기로 했던 장민호가 대기실에 들어왔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영탁이 말하길 “임영웅과 같은 방이었는데 빨간 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들어오더라.”라고 전했습니다. 이에 장민호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 제가 트로트에선 알려졌지만, 실상은 많은 분이 모르는 가수랑 똑같다. 나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얘네들이 나간다고 하더라. 가만히 집에서 생각해 봤는데 얘네들이 송가인처럼 되면…. 그 꼴을 나는 못 볼 것 같더라.”라고 하며 “내가 안 되는 건 상관이 없는데 얘네들이 잘되는 건 못 보겠더라.”라며 말해 폭소케 했습니다.

데뷔 24년 차 가수지만 큰 성공은 경험해보지 못한 장민호는 정동원과 듀엣으로 부른 파트너라는 곡으로 30살 나이 차이 나는 어린 후배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함께 어우러지는 노련한 선배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또 장민호 본연의 목소리를 찾으며 부른 상사화를 아름답게 소화해 호평받았습니다. 7위로 최종 마무리한 미스터 트롯과는 별도로 장민호는 트롯 F4로 불리며 우승자 못지않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숨겨놓은 3명의 아이들

배우 신애라가 장민호에 대해 말하길 “깔끔하고, 웃기고, 따뜻한 사람 가수 장민호를 이보다 더 잘 정리한 단어가 있을까요?”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전 세계 어린이 후원과 봉사를 적극적으로 하며 친분을 쌓았다고 합니다. 입양에 대한 인식을 바꾼 신애라는 15년 전부터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활동하며 10년 넘게 홍보대사로 국내외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고 지난 2009년부터 컴패션과 인연을 맺은 장민호는 공연을 통해 어린이를 돕는 후원 모임인 컴패션 밴드로 활동하며 각종 봉사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장민호는 무명 가수 시절부터 한국 컴패션을 통해 3명의 아이와 결연을 하여 10년 동안 후원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컴패션 밴드’ 활동을 하며 재능기부까지 하고 있는데, 처음 밴드 활동을 시작한 때는 심적으로 힘든 때였다고 합니다. 종교는 기독교로 가수로서 힘든 삶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후원하며, 최근에는 후원하던 아이를 직접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답장을 하지 못하고 돈만 후원하는 것 같아서 안 만나려 했지만, 실제 만나서 아이와 첫마디를 나눈 순간, 눈시울이 불거지며 자신을 위해 10년간 기도했을 아이의 마음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는 후문입니다. 장민호 씨 팬들은 마음 착한 가수를 따라 함께 ‘컴패션’ 기부 활동에도 동참한다고 하니,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장민호 씨가 왜 무명 가수에서 벗어났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컴패션 밴드 활동하며 가수로서도 전환기를 맞았는데 함께 컴패션을 하던 주변 동료들이 발라드 가수를 하던 자신에게 트로트 가수를 권하면서 본격적인 트로트 가수로서의 행보를 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트로트 가수 시장도 만만치 않았는데 트로트를 하는 가수들이 너무 많았고, 국내 앨범을 낸 가수까지 합치면 무려 40만 명이나 되는 매우 진입 장벽이 높은 곳이었습니다.

개그맨, 배우들도 조금만 연습하면 트로트에 뛰어드는 정도이니, 실제로 행사 섭외도 잘 안 들어오고 돈을 벌기는 힘들었고 첫 시도는 실패하고 3년 후 남자는 말합니다7번 국도 등을 성공시키면서 20년이 지나서야 어느 정도 인지도 확보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출중한 노래 실력과 외모를 통해 어려운 이웃 돕는 일에서도 빠지지 않으시길 바라며, 무엇보다 더욱더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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