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미모로 극성 팬에게 허위 혼인 신고를 당하고, 대통령의 동생과 스캔들에 휩싸이기까지 한 1977년 역대 최고 미스코리아 김성희가 방송계에서 돌연 사라진 뒤 근황이 전해져 이목이 쏠렸습니다. 오늘은 미스코리아 김성희의 인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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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생으로, 올해 나이 65세인 김성희는 50~60대 이상 세대들에게는 최고의 미스코리아로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피아노와 노래를 배웠으며, 작곡까지 공부하였고, 어릴 때부터 닦아온 작곡 실력으로 본인의 자작곡을 무려 60여 곡을 발표하며 앨범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김성희는 19살의 나이에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당당하게 진을 차지하고, 최연소 미스코리아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에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도 입상하며 더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참고로, 과거 그녀가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했을 때, 입상을 할 거라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미스코리아로 뽑히는 미의 기준이 김성희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전까지의 미스코리아를 뽑는 미의 기준은 넙적하고 다소 둥근 얼굴과 큰 눈을 가진, 동양적인 매력을 가진 미인을 선호하였습니다. 하지만 김성희는 작은 얼굴의 V라인 턱선으로 다소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볼륨과 있는 서구적인 체형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대회에 나타나자, 많은 사람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특히나 1970년 당시 여자 평균 키가 159cm였던 것에 비해, 김성희의 167cm의 늘씬한 키와 서구적인 몸매는 미스코리아 역사상 거의 최초였기에 더욱 큰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김성희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녀의 등장으로 미스코리아를 뽑는 기준의 판도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후 한동안은 김성희의 신체 표를 가지고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참가자들을 채점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당찬 포부로 가수 데뷔
이후 5년 뒤, 1982년 김성희는 정식으로 가수로 데뷔합니다. “저는 노력한 만큼만 박수를 받겠다.”라고 작정했으며, “만약 제가 더 많은 갈채를 원하게 된다면 그때는 더 피나는 훈련을 할 생각입니다. 미인대회에서 제가 받았던 점수는 제 외모에 관한 것이었을 뿐인 만큼, 외모에 비해 노래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겁이 나요.”라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김성희는 당찬 포부를 밝혔고, 결국 1982년 가수로 데뷔하자마자, 그녀는 MBC 신인 가수상
을 수상하게 됩니다. 사실 김성희는 외모가 너무 뛰어나기에 그녀의 음악성이 좀 묻힌 감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60여 곡의 자작곡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인기 프로그램의 MC를 맡는 한편, 드라마에 출연하여 배우로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그녀는 지금으로 말하면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MC, 가수, 배우 등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극성팬의 혼인신고 사건
그러다 그녀는 황당한 사건을 겪게 됩니다. 김성희의 한 열성 팬이 그녀 몰래 혼인신고를 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1980년대 초반에는 단독으로 혼인신고가 가능한 때였는데, 김성희를 너무 좋아했던 한 극성팬이 마음대로 자신의 호적의 김성희를 아내로 혼인신고를 해버린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극성팬은 정신 이상자로 밝혀졌는데, 이후 갑자기 김성희의 집까지 찾아왔고, 결국 경찰에 잡혀 이 사건은 일단락이 됩니다. 비록 사건은 일단락이 났지만, 한 극성팬의 허위 혼인 신고하여 김성희는 큰 충격과 상처를 받게 됩니다.
연예인 생활에 회의를 느끼며…
당시 이 사건을 겪은 그녀는 “극성팬이 몰래 혼인 신고해서 마음에 상처받았습니다. 팬들의 잘못된 사랑 때문에 연예계 생활에 염증도 느꼈죠.”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방송도 하려고 한 게 아니고, 어쩌다 연결이 되어서 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저도 모르게 흐르고 흘러서 어느 자리로 막 가는 거예요. 제가 미스코리아 된 후에 가수도 되고, 모델 활동도 하고, 연기도 하고 연예계 활동은 순조로웠던 반면에, 개인적으로는 무척 외로웠어요. 솔직히 연예계 활동은 제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피디나 기자분들을 만나면 제가 먼저 커피라도 한잔하자고 말을 해야 하는데, 제 성격상 그 말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또한 미스코리아가 된 다음, 친구들도 저를 멀리하고, 제 원래의 모습도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라며 당시 복잡한 심경을 직접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녀는 연예계 활동의 회의를 느끼며, 이때부터 김성희는 방송 일을 멀리하게 됩니다.
악성 루며와 스캔들
이후 1988년, 김성희는 의상 디자이너로 변신하여 청담동에 의상실을 오픈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의 의상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과 같은 건물에 있다’라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악성 루머들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 매체에서는 사실 확인을 하거나 어떠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김성희와 정경환의 허위 스캔들 자체만을 보도하기 바빴습니다.
이후 김성희는 크게 분노하며 이 매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대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온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된 사람과 부도덕한 관계로 오해받는다는 건, 제가 아무리 인기 연예인이라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는 한 인격체잖아요. 아무리 제가 대중 앞에 노출된 신분이지만 어떻게 근거도 없이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건가요?”
사실 당시 언론 매체에서는 김성희와 전경환에 대하여 별다른 근거 없이 단순히 김성희의 의상실과 전경환의 개인 사무실이 같은 건물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추측성 보도를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추측성 보도들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고, 소송의 결과는 해당 매체에 대하여 사과문 게재와 2천만 원 배상을 판결하며 일단락이 납니다.
미국으로 떠나며..
이후 그녀는 앞서 허위 혼인신고 사건과 전경환의 허위 악성 루머로 연예계에 큰 환멸을 느끼며 연예계 생활을 모두 청산하게 됩니다.
잘 나가던 연예계 생활을 뒤로 하고 차렸던 의상실마저 처분한 뒤 그녀는 홀연히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사실 김성희는 연예인을 하기 전부터 줄곧 미국에 가서 디자인 공부를 하길 꿈꿨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집안 반대로 유학을 포기했었는데 과거 그 영향으로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미국에 간 김성희는 사업가 이승원을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남편 이승원은 당시 큰 상처를 받았던 김성희의 마음을 잘 보듬어 주었고, 이후 김성희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아들 3명을 낳게 됩니다.
그녀의 근황
이후 어느 날 김성희는 본인의 근황을 직접 알리기도 했습니다. “결혼 이후에 뭐 평범하게 살았어요.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그냥 보통 주부들하고 똑같이 살았죠.”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그녀가 연예계를 은퇴했다고는 하지만, 이후에도 그녀는 방송 일을 끊임없이 제안받았고 여러 번의 인터뷰 요청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녀는 모든 것들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해당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나 같아도 연예계 환멸 날듯, 화이팅, 지금 모습도 보기 좋아요 응원합니다, 김성희 씨 하고 싶은 일 하며 사세요 등의 응원 메시지를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