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배우 전 재산 32만원 생활고 “낭떠러지에 차 굴려 9m 추락해 결국”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유명 배우의 2세로 데뷔부터 화려했을 것 같았던 독고영재는 사실 무명 생활을 20년간 겪었습니다. 오랜 생활고로 아이들이 있었음에도 삶을 포기하려고 고의로 교통사고를 낼 만큼 괴로운 시간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세상을 포기하려는 시도를 했던 사연부터 촛불을 켜고 살아야 했을 만큼 가난한 시절을 보내야 했던 과거까지 독고영재의 삶을 자세히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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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그의 아버지는 악역 전문 배우였던 배우 독고성입니다. 독고영재는 1971년 연극 제17포로수용소로 데뷔, 1973년 영화 빗방울로 데뷔했으며, 영화 빗방울로 은곰상, 신인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독고영재는 고등학교 때까지 배우의 꿈을 꾼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착실히 공부해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가 기자가 될 생각으로 원서 준비까지 다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배우가 된 계기는 아버지의 인맥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조금 늦은 사춘기를 겪은 일들을 방송에 출연하여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본인이 아는 얘기만 하더라.”라며, “수업이 시시하다고 느껴져서 오전 수업만 받고 마음대로 학교를 다녔다.”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친구 자취방에 가서 놀거나 동네에서 싸움하다가 집에 돌아가곤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고영재의 어머님이 “너 그렇게 사람 구실 못할 거면 나하고 이 세상을 뜨자”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그에게 알약을 사 50개 정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반항심에 “그래요”라고 말했고, 어머니가 먼저 약을 드신 후 이불 위에 누우시더라며, 그래서 자신도 약을 먹고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누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상해서 일어나 살펴보니 어머니가 연탄까지 피워두었고, 작은아버지가 창문을 깨서 어머니와 그를 구했습니다. 그날 이후 독고영재는 모범생으로 거듭났습니다. 이후 독고영재 아버지 역시 당시 싸움만 하고 다니던 아들 독고영재를 타이르기 위해 자기 친구들을 불러 어려운 자리를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승승장구

당시 아버지의 친구이자 배우 박암과 함께 남산 드라마 센터로 가, 극작가 겸 연출가인 유치진을 소개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남산 드라마 센터의 시험을 보게 되면서 서울연극학교에 들어갈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는 데뷔해 아버지처럼 배우가 되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무명 생활을 거치며 80~90년대 성인 영화나 B급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 남부군 이후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에 캐스팅되면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하얀 전쟁은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는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수상과 함께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습니다. 하얀 전쟁으로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언급했던 부친 독고성을 한 방송에서 회상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본인의 뒤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TV에 연예인 2세인 전영록, 이덕화가 나오면 아버지가 채널을 돌리셨다.”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와는 친한 사람들이고 하니, “잘 보고 있는데 왜 그래요?”라고 했는데 그 마음을 그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아들이 보면 속상할 거로 아버지는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이후 1993년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 출연하면서 인기가 더욱 높아지며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게 됩니다. 드라마 엄마의 바다는 최민수, 김혜자, 고현정, 고소영이 출연했으며, 당시 최고 시청률 51.6%로 화제의 인기 드라마였습니다.

임예진과의 인연

그의 외모는 과거의 친한 배우들 사이에서 동안으로 유명했습니다. 동안 외모로 당시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무명 시절 7살 어린 임예진이 그를 촬영장에서 처음 보고 자신과 같거나 어린 나이인 줄 알고 “영재 씨, 안녕”하면서 말을 걸어서, 어이가 없던 나머지 말을 안 하다가 임예진이 계속 말을 걸자, “나 이덕화랑 친구다.”라고 말을 하니, 임예진이 화들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는 일부러 임예진과 어릴 때부터 연기한 이덕화의 이름을 댄 것이었는데, 임예진은 심지어 이덕화랑 여러 영화에 출연하던 시절의 아저씨라고 불렀었습니다. 처음에는 안 믿었지만, 독고영재가 진지하게 환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눈빛이 너무 사나워서 임예진이 겁이 나서 눈을 피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동안이기도 했고 임예진은 중학생 때, 영화배우로 데뷔하자마자, 유명세를 얻었을 만큼 커리어가 긴 반면, 독고영재는 무명 시절이 길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자기보다 후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예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임예진은 본인보다 많을 가능성을 막연히 생각해도 1~2살 정도라 봤을 것입니다.

최민수와의 불화설?

그런가 하면 최민수와의 불화설도 있었습니다. 이는 드라마 엄마의 바다 방영 당시 생긴 이야기입니다. 엄마의 바다 촬영 중 독고영재의 비중이 커지자, 불만을 품은 최민수가 펑크를 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불화는커녕 오히려 최민수는 독고영재의 은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엄마의 바다에 독고영재를 추천한 인물이 최민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독고영재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최민수는 담당 PD에게 삼각관계를 다룰 수 있는 완전무결한 멋쟁이가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미 독고영재를 염두에 두고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PD가 “누가 하면 좋을 것 같냐?”라고 묻자, 최민수는 “이미 알려진 사람은 임팩트가 없는 것 같다. 독고영재라고 독고성 씨의 아들인데 연기에 대해선 말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라고 드라마 출연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본 리딩 날,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에 독고영재가 그만 실수하고 맙니다. PD가 불같이 화를 내며 최민수에게 책임지라고 했고, 그날 이후 두 달간 최민수는 독고영재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연기 연습에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로 두 사람의 우정이 돋보여도 모자랄 판에 불화설로 퍼진 것입니다. 라이벌 연기를 하다 보니 이러한 불화설까지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생활고로 고의로 팔당댐에 차를 굴려…

이렇게 독고영재는 배우인 아버지로 인해 유복하게 자랐지만, 그만큼 바쁜 아버지로 인해 빈자리를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독고성이 제작한 영화가 실패하면서 큰 생활고를 겪기도 했습니다. 독고영재 역시 배우로 활동하면서 여러 사업을 했지만 연이은 실패로 빚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전 부인과 이혼 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전 재산이 32만 원뿐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여관에서 잠을 자다 나중에는 돈이 떨어져 남산 주차장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침에 남산 화장실 가서 딸 세수시키고 우유하고 빵 먹여서 학교에 데려다줬습니다. “그런 생활이 오래가지는 않았는데 참 힘들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는 삶을 포기하려고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적도 있습니다. 김용건, 김수미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 회장님네 사람들에 출연해 방송에서 처음으로 밝힌 가족사로 독고영재는 삶이 너무 힘들다 보니, 어느 날 떠나자,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라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고 맙니다. 그 생각을 그는 기어코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춘천에 가던 중 낭떠러지 밑으로 차를 굴렸습니다. 그때 상황을 고백하길 “차 안에서 핸들을 붙잡고 있는데 눈앞으로 피가 휙휙 하고 흩날리는 게 보여서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는데 죽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얼굴은 다치지 않고 손에 유리가 박혀서 피가 나고 있었던 거였다”고 부연했습니다.


독고영재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도로에서 8~9m 정도 추락한 상황이었다. 그때 ‘차를 어떻게 끌어올리지’ 걱정하게 된 순간 해탈을 하게 되더라”면서 “‘죽고 사는 게 요만한 머릿속에 있구나’ 싶었던 거다. 산다는 건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구나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내가 진짜 나쁜 아빠구나. 만약에 그때 내가 소원한 대로 됐으면 애들은 고아잖아”라고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이에 다른 출연진들도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가장으로서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결정을 했나 하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 또한 듭니다.

그의 재혼

그러다 그는 1994년, 16살 나이 차를 극복하고 현재의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당시 독고영재는 41살, 아내 나이는 25살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92년 영화 장군의 아들 3을 촬영하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영화 의상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전처와 헤어진 후, 홀로 남매를 키우고 있었던 그는 재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여서 혼자 아이 둘을 키우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과거까지 털어놓았는데, 다음 날 아내가 먼저 만나자는 전화를 했고, 이후 만남이 계속되면서 사랑이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생활이 너무 힘들어 4개월 넘게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초를 켜놓고 생활했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놀러 온 아내가 왜 초를 켜고 있는지 물어보자, 독고영재는 “오늘부터 촛불 잔치를 한다.”라고 둘러댔습니다.


이에 아내는 초를 20개 정도 더 사 와서 방마다 켜놓았습니다. 이어 당시 아내는 독고영재에게 주려고 100만 원을 들고 왔었지만, 자존심 상해할까 주지 않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자존심까지 걱정해 줄 여자라면 결혼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재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가 아내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아내가 그에게 자신은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부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연예인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살고 싶어 하는 아내를 위해 부부 출연을 요청하는 수많은 광고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는 “지금의 아내를 못 만났으면 나는 아마 이 땅에 없었을 거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아내와 만나고 1년 만에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 출연하며 무명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힘든 시간,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삶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었을까요? 수많은 인연 중 두 사람이 만난 것 또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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