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공화국’ 원로 배우 폐렴으로 결국 “극심한 생활고에 화장품 판매까지…”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배우 박규채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최근 브라운관에서 활동이 뜸해 보기 힘들었던 박규채는 7월 1일 오후 1시 5분에 향년 85세로 폐렴 치료를 받던 중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오늘은 안타까운 그의 인생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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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 합병증과 갈비뼈 골절

박규채는 배우들 중에서도 체력이 좋기로 유명했지만, 고령의 나이가 되면서 건강이 상당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최근까지도 외아들의 부축을 받아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을 정도로 허약한 상태였고, 당뇨와 골다공증 치료를 받던 와중에 얼마 전에는 홈플러스의 장을 보러 갔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증상을 입기도 했으며, 6년 전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낸 뒤 상심으로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폐렴이 도져 수년째 치료를 받아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2005년에는 전립선암이 발병돼 최근까지도 예우를 지켜보면서 병원에서 체크를 하고 있었으니, 당뇨, 합병증의 골다공증과 전립선암, 폐렴, 거기에 갈비뼈 골절까지 그야말로 여러모로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인데요. 박규채는 전에는 주변의 지인들과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곤 했지만, 골절 사고 이후 일주일에 두 차례 고대 안산병원과 동네의원에서 치료를 받느라 건강 때문에 집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좀 답답하긴 했지만 곧 건강이 회복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들의 극진한 간호

그의 몸이 편찮아진 이후로는 아들 박영구 씨가 아버지의 간호를 도맡아 왔는데요. 1남 2녀 중 막내인 아들은 여주대학 총무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하루 24시간 아버지의 옆을 지켰을 정도로 효자도 그런 효자가 없었고, 워낙에 천사 같은 심성을 가지고 있어, 아버지 박규채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정성스럽게 간호를 해왔다고 합니다.

박규채는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아들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병원을 가는 등 이동을 할 때는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대화가 힘들 때도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 아내가 10년 이상 투병할 때도 역시 아들은 그림자였다.“라며 아들의 효심을 극찬하기도 했는데요.

아들 박영구 씨는 과거 말하기에 “아버지는 친구와 사람을 좋아하는 호탕한 성품을 가진 분이다. 한국 탤런트 협회장도 하신 분으로 방송계에서 이름을 떨치셨다. 운동을 좋아해서 건강에는 자신 있는 분이었는데, 자식된 도리로서 가슴이 미어진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군부대 위문을 간 적이 있는데 장교들이 따라주는 소주 240잔을 연거푸 마신 분이다. 오죽하면 인사불성된 아버지가 혹시나 잘못될까 봐 군의관과 함께 잠을 자게 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로 술을 좋아하셨다. 제발 건강이 회복돼 나랑 전국 여행을 다니는 게 소원이다. 어머니가 10년 넘 암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완쾌된 줄 알았는데 10년 만에 재발하는 바람에 세상을 뜨셨다. 아버지는 어머니 생각을 많이 하고 생활하신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었습니다.


박규채는 딸 둘이 있는데, 큰 딸은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큰 딸도 암에 걸려 치료 중에 있고, 때문에 얼굴을 자주 볼 수가 없어서 아버지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는데요. 박규채는 생전에 자신의 건강보다도 제발 딸의 건강이 회복되길 빌고 있다고 밝혔으며, 공주에 살고 있는 둘째 딸은 대전의 한 중학교 교사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위도 고등학교 교사인데 자주 볼 수는 없지만 늘 곁에 있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딸들이라고 밝히며 그는 1남 2녀 자식들을 참으로 사랑했던 마음이 따뜻한 아버지였습니다.

아내가 떠난 후 건강 악화

박규채는 앞서 말한 대로 젊은 시절에는 스포츠맨이었을 정도로 건강이 좋고 운동을 잘했는데, 양정고등학교와 고려대를 다니던 시절 유도는 4단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승마와 사격도 잘했으며, 한때 배구 선수로도 활약을 할 만큼 단단한 체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박규채는 그렇게 건강에 자신이 있었지만, 아내가 오랜 투병 끝에 수년 전 세상을 떠나 이후로 건강이 더 악화되었고,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도 커서, 아내를 보낸 이후 아내가 잠들어 있는 부곡동 하늘공원에 자주 가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의 연기 활동

박규채는 1962년에 데뷔하여 오랜 세월 평생을 연기인으로 살아왔고, 다양한 연기 생활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왔던 연기자였는데,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수많은 팬들로부터 분해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데, 여러 가지 기억이 있지만, MBC 제1공화국을 시작으로 박순경, 야망의 25시, 제3공화국 등이 기억에 남고, 1980년대에서 90년대 당시 비교적 시대 상황을 풍자한 드라마에 많이 출연했으며, 특히 “공주갑부 김갑순” 같은 드라마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드라마로 기억이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박규채는 드라마 박순경 방영 당시에는 명예의 순경까지 얻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탤런트로 활동하면서 여러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1980년대 드라마에 출연하며 모두가 도둑놈이란 뜻의 일본어 “민나 도로보데스”를 만들었고, “나 돈 없시오”, “당신 미인이야요.” 등 유행어를 지어내기도 했었는데요. 그는 후에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오며 요즘 연기인들은 그런 풍미가 부족해 보여 안타까운 면도 있다고 밝혔었는데, 과거 팬들이 그에게 준 사랑이 지금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그는 한때 영화진흥공사 사장도 지냈을 정도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1997년 당시 사장으로 재직하며 남양주 영화 촬영소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고, 한국의 독립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갖고 정부 지원금을 주도록 하는 등의 역할을 했으며, 세계 시인대회 유치나 베니스 국제영화제 출품 등도 기여했지만, 후에 정치 핍박을 받는 바람에 노인대학을 설립하고 대방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했으며, 한국평생교육 복지장학회로 만드는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펼쳤으나 결국 나중에 그것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되거나 다른 기관으로 넘어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과거 정치 발언으로 생활고에 화장품 판매까지…

하지만 그렇게 인기 배우로 활약하던 그도 과거 정치 발언으로 핍박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과거 김영삼 야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고 쫓겨났고, 한참 진행 중이던 드라마가 조기에 종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박규채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김영삼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을 뿐이었지만, 그에 따른 여파나 핍박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연예인들이 정치에도 참여하고 지지 또는 반대 선언을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폭탄 발언이라 할 정도로 파급이 컸었고, 자신의 연기 인생의 기로가 그때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자신의 행동에 후회는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이후 생계로 인해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의 일을 딸 박순재가 말했는데요.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다. 아버지가 방송출연을 안 했지만 절망을 넘어서고자 하는 희망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컸다. 또 그런 어려움을 티 내지 않아서 몰랐다. 후에 알려주셨는데 심지어 화장품 판매도 했다고 들었다”고 고백해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박규채가 당시를 설명하기를 “선물용 화장품 장사를 했다. 지인에게 화장품을 보내면 숨을 뜻을 알고 다시 돈을 보내고 그런 시스템이 없다. 사람들에겐 끝까지 숨기려 했지만 다들 알게 됐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놨습니다. 이어 “당시 셋방을 전전했던 우리부부에게 사위가 네 번이나 찾아와 ‘같이 살자’고 설득했다.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 이후 안산의 딸네 집에서 3년간의 더부살이가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향년 85세로 안타까운 비보

그는 생전 마지막으로 가졌던 인터뷰에서 “연기인으로 살아온 지난날이 아름답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가끔씩 시를 쓰기도 한다. 문예지 등의 여러 편의 시를 실은 적도 있다. 마음이 평화로울 때 아름다운 글귀가 떠오른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도 많다. 연기를 하는 후배들에게는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연기자가 되라고 당부하고 싶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나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이 애처로울 때가 많다. 나도 전처럼 건강을 되찾길 바라고 있다. 후배 탤런트 한인수 씨가 가끔 찾아온다. 의리 있는 사나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라고 밝혔지만 결국 안타깝게도 더는 생명을 연장하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유족은 박규체가 평생 연기의 진심이었던 분이라며 연기의 길을 걸어온 선후배를 만령까지 챙기셨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는데요. 현재 생전에 그가 살았던 지역인 안산의 단원병원 장례문화원의 빈소가 차려진 가운데 발인은 내일 오전에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모쪼록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박규체가 하늘에서는 편안하고 즐거운 날들을 보내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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