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스스로 생을 마감한 故 최성봉 씨에 대한 장례가 치러질 예정입니다. 고인은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돼 그동안 장례식장 냉동고에 기약 없이 안치돼 있었는데요. 다행히도 최성봉의 전 매니저가 사망 25일 만에 쓸쓸히 안치되어 있던 고인의 장례를 치러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7월 15일 오후 서울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빈소가 마련되었는데요. 빈소에는 전 매니저가 상주를 맡아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고인을 아끼고 응원했던 여러 명의 팬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소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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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봉 씨는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납니다. 겨우 3살 때 고아원에 버려졌는데, 거기에서 너무 때려서 5살 때 그곳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배가 고파 쓰러졌는데, 자기보다 3~4살 더 많아 보이는 어떤 형이 짜장면을 사주면서 껌 파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그 후 10여 년을 혼자 살면서 껌을 팔며 노숙하다시피 살았습니다. 씻는 것은 공용 화장실에서 씻었다고 합니다. 이 가엾은 아이는 이렇게 살다가 부모님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시장을 통해서 포장마차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이름도 없이 야! 이놈아
로 불리던 그에게 아주머니는 지성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그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학을 다니게 되었는데, 야학 선생님이 그에게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게 해주려고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 작업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때 놀랍게도 호적에 그의 부모가 모두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호적에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에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최성봉 씨는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한 적이 있는데, 보호자가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없어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부모한테는 어떤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까요? 보육원 기록에 의하면, 최성봉 씨의 아버지는 그가 3살 때 아동복지시설에 맡긴 이후 양육 거부 및 연락 두절 상태가 됩니다. 어머니 역시 남편과 이혼 후 연락이 완전 두절되어, 그는 보육원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에게 연락했으나, 아버지가 만남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만난 어머니는 더욱 모질게 대했다고 합니다.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듣게 된 성악
술 취한 사람들에게 껌을 파는 것이 더 수월하다는 팁을 얻은 이 어린아이는 어느 날, 손님들에게 껌을 팔기 위해 나이트클럽에 들어갔다가, 나이트클럽에서 초청한 성악가가 노래 부르는 것을 듣게 됩니다. 성악을 듣고 그는 전기에 감전되는 것 같은 전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이트클럽과 성악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그 자리에 있는 어느 사람도 성악을 반기지 않았지만, 그에게 성악은 가장 밑바닥 인생에 비참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천상의 세계처럼 느끼게 해준 것 같습니다. 그 이후 그는 백방으로 성악을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악을 배우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 성악을 공부하는 음대 대학생을 만나, 그로 인해 교회를 다니며 교회 사람들의 도움으로 한글부터 배우기 시작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1년 이내에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대학생에게는 성악을 배워 처음으로 고등학교라는 곳에 들어갑니다. 그 대학생은 나중에 팝페라 가수가 된 박정소 씨였습니다.
스승을 만나 처음 학교에 다니지만..
최성봉 씨는 한 번도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에 늘 학교에 다니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웬만큼 잘 사는 부모들도 뒷바라지하기에 벅찬 예고 성악과에 보호자도 없는 극빈층 껌팔이 소년이 들어간 거였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한 번도 다닌 적이 없고 혼자 지내던 나이라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가자 전혀 적응을 못 했고, 특히 사람들과 소통할 줄을 몰랐습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었지만, 사귀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내다가 학교를 그만두려고도 했으나, 박정소 씨가 고등학교만이라도 나와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제대로 된 거처 하나 없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하며 간신히 대전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에도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서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1년간 돈을 벌어서 대학에 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으나 번 돈을 모두 사기를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 극단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1~2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혼자 살면서 그 어린 나이 때부터 100번도 넘게 그런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몸에는 수도 없는 상처가 있었다고 박정소 씨는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죽기 전에 만난 어머니
그때 죽기 전에 어머니를 한번 보고 싶어서 수소문 끝에 어머니를 찾아갔는데,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 왔냐?”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박정소 씨에게 연락이 옵니다. 최성봉 씨는 “죄송하다”라고 하며 자꾸만 전화를 끊었습니다.
예감이 이상하다고 느낀 박정소 씨는 한 번만 만나달라. 할 말이 있다.라고 사정하다시피 해서 최성봉 씨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코리아 갓 탤런트에 출연해서 상금을 타라고 제안합니다. 2011년 반신반의하며 오디션에 출연했고, 거기에서 그는 기적적으로 준우승합니다. 인생이 바뀐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코리아 갓 탤런트’ 출연으로 큰 관심
안타까운 가정사를 이겨낸 그는 한국의 폴 포츠라 불리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외신에도 이름을 알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 후 활발한 활동을 하며 그는 이제 제대로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2013년에는 경희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했고, 2014년에는 앨범 느림보를 냈습니다. 자신의 스승 박종소 씨와 함께 무대에 섰고, 자신의 이름을 딴 콘서트부터 자선 음악회 등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담은 책 무조건 살아. 단 한 번의 삶이니까라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2017년에는 정부가 주관하는 2016 국민추천포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두운 유혹
이렇게 그는 앞으로의 미래가 창창하게 보였는데 그는 왜 이렇게 망가져 버렸을까요? 껌팔이 소년에서 갑자기 유명인이 된 그는 제대로 적응을 못 한 것 같습니다. 연예계의 세상에서 배신도 당한 것 같습니다. 소속사와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거짓의 유혹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는 후원금을 받기 위해 너무나 허술한 거짓말들을 끊임없이 해댔습니다. 그는 2020년 대장암, 전립선암, 갑상선암 등을 동시에 진단받고 암 투병 중이라고 밝히고 후원받았습니다. 그러나 2021년 한 유튜버가 거짓 암 투병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에 휩싸였고, 그는 처음에는 부인했으나 얼마 가지 못해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후원했던 사람들과 법적 분쟁에 휘말리며 그는 고소당했습니다.
그들에게 선처를 부탁했지만, 너무나 큰 배신감에 휩싸인 사람들은 그가 정당한 벌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그는 연예계에서 영구 방출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암이 아니라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습니다. 2023년 6월 20일 그는 다시 한번 용서를 빌면서 “후원금으로 낸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돈은 모두 돌려주었다.”라고 밝히며, “그래도 죗값은 목숨으로 갚겠다.”라며 그만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말
그가 분명히 잘못은 했지만, 그가 죽기까지 바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세상을 떠난 것도 충격인데 죽어서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더 충격입니다. 그 이유는 유족이 나타나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적지 않지만, 그의 인생 자체가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나이 겨우 33살, 마지막 길을 가면서도 부모님을 찾지 않고 혼자 쓸쓸한 선택을 한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글을 전해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최성봉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 삶을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보내는 글이면서 이 글이 보인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 2011년부터 현재까지 정말 많은 분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마지막 글이라 이 분통함을 알리고 싶지만, 여러분께 지난 세월 받은 사랑이 더 커 마음속에 묻기로 했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잘못과 피해를 받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고 거듭 잘못했습니다. 지난 2년여 동안 후원금 반환 문의해 주신 모든 분께 반환을 해드렸습니다. 이제는 제 목숨으로 제 죗값을 치르려 합니다.
돌이켜보면 나름 어릴 적부터 하루를 10년 같이 최선을 다해 평범한 삶을 노리고자 노력했는데, 결국 저는 안 됐네요. 마지막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그냥 제 형식대로 쓰겠습니다. 나의 숨이 비록 지금 멈추지만 찬란하게 살아온 삶의 여정에 후회는 없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하루하루 행복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34살 이번 생은 비극이지만 다음 생에는 행복한 삶으로 생을 마감하길. 나로 인해 피해받은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고 이 목숨으로 대신 죗값을 치르겠다. 나를 도와준 많은 분께 미안합니다. 버틸 때까지 버틴 것 같다. 나를 잊기를…. 그리고 각자의 삶터에서 행복하기를…. 인생이 찬란하기를…. 안녕히 계십시오.”
개인 사비로 장례를 치러준…
지난 6월 20일 오전 9시 41분께 자택에서 스스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던 최성봉 씨. 최성봉은 향년 33세 일기로 너무나도 안타까운 선택을 했었는데요. 당시 출동한 경찰에 따르면, 현장 상황과 부검 결과 등을 토대로 타살 혐의점은 없었다고 합니다. 고인은 6월 20일 오전에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지만, 시신을 인계하려는 유족이 나타나지 않아, 한 병원의 장례식장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매년 무연고 사망자가 늘고 있는 관계로,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0년부터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전 고인과 가까웠던 친구나 지인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지침을 정했다고 하는데요. 또한 9월 29일부터 시행되는 장사법 개정안 12조 2항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가 사망하기 전 장기적, 지속적 친분 관계를 맺은 사람은 희망하는 경우 장례의식을 주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홀로 쓸쓸하게 차가운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던 고인은 사망한 지 25일 만에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시신을 인계한 사람은 최성봉의 전 매니저였다고 하는데요. 개인의 사비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7월 15일 오후 서울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빈소가 마련되었는데요. 빈소에는 전 매니저가 상주를 맡아 조문객을 맡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고인을 아끼고 응원했던 여러 명의 팬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영정 속 고인은 힘겨웠던 그동안의 삶과는 달리 편안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었는데요.
고인을 아껴주던 지인과 팬들이 마지막 길을 애도했습니다. 상주를 하고 있는 전 매니저는 “팬들께서 몇 분 오셔서 앉아 계신다. 다른 바람은 없다. 잘 가고 편히 잘 쉬었으면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팬카페에서도 추모의 뜻을 전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막상 영정 보니 먹먹하기도 하고 눈물 날 뻔했다. 우리 가수님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겠다.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라는 등에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인의 발인은 다음 날인 16일 오전 5시며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에덴 추모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생전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쓸쓸하게 혼자 있었을 그가 참 안타깝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니저분께서 시신을 인계해서 참 다행입니다. 씁쓸하기만 합니다. 평생을 외로웠을 그의 마지막을 애도합니다.” 라는 추모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