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조연배우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 “연예계 망연자실, 충격에 빠졌다”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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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석균

그가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는 아무도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습니다. 죽어서야 비로소 유명해진 그는 바로 ‘무명 배우’였습니다. 배우 김석균은 1979년 4월 9일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으며, 27살 때인 2006년 아동극 배우모집 공고에 응모해 합격했습니다.

그는 한 신인 연예인 전문 마케팅 업체의 홍보 인터뷰에서 “영화가 끝난 후의 기분 좋은 잔상과 오래도록 남는 여운이 좋아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석균은 데뷔 이후 아동 뮤지컬 정글북, 피노키오와 영화 코리안랩소디, 아날로그 러버, 과식, 눈빛이 흔들린다 등 10여 편의 중·단편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무명시절이 길었지만, 꺾이지 않은 열정으로..

하지만 그는 연기자로서 빛을 못 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엑스트라를 전전했고, 한 번은 단편영화의 주연을 맡아 두 달여를 죽도록 연습했지만, 크랭크인 3일 전에 제작이 취소되면서 크게 실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영화와 뮤지컬 등의 오디션에 계속 지원했지만, 번번이 쓴잔을 맛보았습니다.

김석균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라고 토로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배우로서의 열망은 꺾지 않았습니다. “비록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배우를 선택한 데 대해 한순간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라며 연기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시했습니다.

무명 배우의 恨

배우 설경구와 양조위를 좋아했던 고인은 “소시민이나 비주류를 연기해서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라고 했지만 끝내 뜻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타이틀 아래, 암을 이긴 사이클의 신화 랜스 암스트롱이 남긴 “암이 내 육신을 바꿔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정신을 바꿔 놓았을 뿐이다.”라는 말이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김석균은 다른 무명 배우들처럼 죽어서야 비로소 유명해졌습니다. 김석균의 죽음은 무명 연예인들의 쉽지 않은 삶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의 사랑을 얻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연예인입니다. 이들에게 죽음으로 존재를 알리는 일은 그 자체로 무척 가혹하고 슬픈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김석균 죽음 이후에도 여러 무명 연예인들이 쓰러져 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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