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금동이 행방불명되고 “지명수배까지 당하더니… 결국”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이 드라마야말로 전 국민의 인생 드라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간 우리 곁을 지켰던 드라마 바로 전원일기입니다.

김 회장님부터 일용엄니, 복길이까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등장인물들이 가득한 이 드라마에서 오늘은 특별히 모두의 마음속에 짠한 기억으로 남은 한 인물, 금동이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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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앞서 말씀드린 대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 2개월 동안 188회에 걸쳐 MBC에서 방송됐던 우리나라 역대 TV 드라마 중 최장수 방영 기록을 남긴 최고의 걸작 드라마입니다. 전원일기에는 김혜자 씨, 최불암 씨, 고두심 씨, 김용건 씨, 유인촌 씨, 김수미 씨 등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그 덕에 연기구멍 따위 없는 완벽한 생활 연기를 선보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농촌 드라마라는 한계를 깨고 최고 시청률만 42%를 기록했던 어마어마한 드라마 전원일기. 초창기에는 흑백으로 방송을 시작했을 정도로 오래된 드라마이지만, 아직도 케이블 채널에서 전원일기를 다시 방송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는 팬들이 아직 많다는 의미일 겁니다.

‘금동이’ 아역배우

한 번이라도 ‘전원일기’를 보거나 혹은 그 이야기를 들어보신 분이라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 인물, ‘금동이’를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금동이’는 극중 최불암 씨가 맡았던 역할 김 회장 댁 업동이 막내 아들의 이름입니다. 원래 떠돌이 고아로 지내다가 김 회장의 배려로 이댁의 양자가 되는 캐릭터입니다. 입양이라는 소재는 당시만해도 집 안에 아이를 입양한 사실이 있어도 이야기하기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던데다, 드라마에서도 쉽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부분이라 상당히 센세이셔널했던 소재 캐릭터였습니다.

그런 만큼 ‘금동이’ 역할을 맡은 배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매우 컸습니다. 당시 ‘금동이’ 역할을 맡았던 아역 배우 양진영 씨는 업동이 역할임에도 밝고 따뜻한 눈빛을 지니고 있어 지금으로 치면 ‘국민 남동생’ 수준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양진영 씨는 1974년생으로 ‘전원일기’ 이전엔 교회에서 연기를 해본 게 전부인 생초짜 신인이었습니다. 당시 양진영 씨는 “자신이 연기를 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지만, 정작 해보니 재밌더라.”리며 계속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던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실제로도 그는 아역 수준 이상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인기를 끌었고, mbc 방송대상 특별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양진영 씨는 이후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 ‘푸른 교실’, ‘유심초’, 영화 ‘저녁에 우는 새’ 등을 통해 아역배우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어느 날부터인가 밝고 명랑하던 그의 캐릭터와 눈빛이 점차 우울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성장통과 방황

아니나 다를까 방황과 가출을 일삼던 양진영 씨는 해선 안 될 것에 손을 대고 맙니다. 그건 다름 아닌 약물이었습니다. 아역배우로서 갑작스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 화근이었을까요? 양진영 씨는 약물에 중독된 후 가출을 일삼다 결국 녹화를 펑크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에 최불암 씨와 유인촌 씨 등 출연진들이 그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출연진들이 겨우 양진영 씨를 데리고 와 녹화를 진행한 탓에, 실제 드라마에도 양진영 씨의 방황에 관한 내용이 극화되어 녹아있을 정도입니다. 즉, 드라마가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양진영 씨의 성장통을 그대로 가져다 옮겨놓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내용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양진영 씨는 결국 끝까지 마음을 잡지 못했습니다. 1992년 6월 28일, 양진용 씨는 초등학교 동창 2명 등과 함께 서울 중구 미도파 백화점 앞길에서 밤길 거리에 쓰러져 있던 취객의 지갑을 훔치다, 결국 불구속 입건되고 맙니다.

이 일로 그는 방송계에서 영구 제명돼 연기생활을 영영 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이런 금동이 양진영 씨의 일탈에 가슴 아파한 건 전원일기를 사랑한 시청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배우들의 안타까움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최불암의 고백

극중 양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최불암 씨는 전원일기 종영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극중 업둥이 금동이를 잘 키워내지 못한 것이다. 버려진 아이를 자식 삼은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네 후덕한 인심과 사람 농사를 제일로 짓는 어른, 즉 김 회장의 의지였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 자식 키우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걸린다.” 최불암 씨가 엇나가는 양 씨를 보며 어떤 마음이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방황의 이유

모두가 안타까워하며 바로잡고 싶어 했지만, 결국 양진영 씨는 연예계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상황. 대체 그는 왜 끝이 빤히 보이는 길을 걸어야만 했을까요? 알려진 바에 따르면, 양진영 씨는 중학교 3학년 무렵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고등학교 진학 후,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유흥업소 DJ를 하는 과정에서 약물과 술을 접하게 됐고, 결국 범죄의 길로 빠져들게 됐다고 합니다. 많은 비행 청소년들이 하는 변명 중 하나로 들리기도 합니다. 결국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내가 이렇게 됐다.”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본인의 탓, 안 좋은 친구가 본인이었는지, 본인의 친구들이었는지는 훗날 돌이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그의 가정사를 들 수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갑작스레 유명해진 아들과 그의 수입 때문에 양진영 씨의 집안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원일기 촬영 당시, 녹화가 늦게 끝났는데도, 당시 어린 양진영 군은 씩씩하게 집에 혼자 돌아가곤 했다라는 회고가 있는 걸 보면, 부모님은 양진호 군의 방송 생활에 대해 별다른 보살핌이나 지지를 해주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양진영 씨의 부모님은 이혼을 선택하며, 양진영 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맙니다.

당시 사춘기였던 양진영 씨에게 이는 큰 충격이었고, 결국 약물에 손을 대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그를 범죄로 내몬 마지막 원인을 꼽아보면, 갑작스레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과 유명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아역 배우들이 이런 관심에 한껏 들떴다가, 또 너무나 큰 부담을 느껴 자신을 놓아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곤 합니다.

최근 근황

그렇다면 1992년 이후 연예계에서 영구 제명됐던 금동이 양진영 씨는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그의 소식이 들려온 것은 놀랍게도 뉴스의 사회면이었습니다. 양진영 씨는 ‘전원일기’가 종영되던 2002년 충북 소재의 한 호스트바 단속 과정에서 붙잡히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 양진영 씨는 ‘새끼’라 불리는 종업원들을 거느린 호스트 마담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한 농촌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다고 진술, 정체가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몇 건의 사기 혐의에 연루되며 지명수배 중에 있다고 합니다. 양진영 씨는 군 복무 중 ‘금동이로 많이 떴냐?’ 묻는 고참에게 “금동이 때문에 오히려 내 인생에 묻혔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는 어렸으니 모를 수도 있었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도, 다시 띄우는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이라는 걸 말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대중 앞에 나타나 죄를 뉘우치고 새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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