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 배우 일본에서 긴급 귀국 “입에서 핏덩어리 뱉어내고 결국…”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1981년 연극 무대를 통해 데뷔한 배우 김응수는 ‘타짜’, ‘범죄와의 전쟁’, ‘검사외전’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선 굵은 연기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작인 ‘타짜’에서 곽철용 역을 맡아 수많은 명대사를 탄생시키며 젊은 세대에서 ‘곽철용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가수로 깜짝 변신하여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을 뻔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건지, 그의 인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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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과 연기 데뷔

배우 김응수는 1961년 2월 12일, 충청남도 서천군 문산면 금복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연기자의 꿈을 키웠고 “부자의 연을 끊자”는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도 재수까지 하면서 1981년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입학했습니다. 연극과 시절부터 극단 ‘목화’에서 활동했고, ‘목화’ 활동 중 도일하여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일본영화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입학전형이 이미 끝난 뒤였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이마무라 쇼헤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가 ‘후지타 겐’이 입학시험을 보도록 하였습니다. ‘이마무라’ 감독 아래서 영화 연출을 수련하며 7년간 감독 데뷔를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졸업작품으로 재일동포 남자의 정체성을 다룬 ‘사자의 계절’의 연출을 맡았으며, 다큐멘터리 ‘가자! 가자! 신군’으로 유명한 하라 가즈오 감독과 연출자로 같이 일했습니다. 그 덕분에 일본 영화에도 출연하여 일본인 연기를 자주 맡는 편이며, 해당 작품의 일본어 연기를 지도해 주는 역할도 겸하는 편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한 만큼 일본어 실력도 매우 뛰어나서 주사도 일본어로 말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영화 투캅스3에서는 중국어를 잘하는 엘리트 조폭으로 등장하여 극중에서 보스의 중국어 통역을 해주는 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연출 전공자로서 능력도 인정받아, 연기자임에도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 과정과 제작진의 회의에도 직접, 간접적으로 도와준다고 하며, PD를 비롯해서 제작진이 김응수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극단 목화 출신답게 코믹연기나 정극을 모두 소화하는 연기력을 갖추었고 김응수는 그야말로 사극과 시대극 특화 배우로 자리매김 중입니다.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드라마 추노의 좌의정 이경식, 해를 품은 달의 영의정 윤대형, 닥터 진의 김병희 역으로 사극의 최종 보스 역할에 매우 잘 맞았습니다.

악역을 맡을 때 대단히 냉혹하고 카리스마가 있지만, 자기 가족이나 아끼는 부하 등에게는 따뜻하게 대해주는 츤데레, 차도남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타짜’ 곽철용으로서의 인기

‘타짜’에서 연기한 곽철용의 캐릭터가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명대사도 많고 임팩트가 컸었는지 다른작품에서의 김응수만 보면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나도 보험들고 적금붓고 산다”, “묻고 더블로 가!” 등의 댓글들이 주루륵 달립니다.

2019년 9월 이후 곽철용의 인기가 치솟자, 결국 BBQ치킨과 버거킹광고의 모델로 전격 발탁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광고 섭외 제의가 80여개나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의 결혼

배우 김응수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28살, 현재의 부인인 김한영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응수의 부인 김한영은 원래 방송국 보조 작가였다가 연극에 흥미를 느껴 잠깐 극단에 가입했었다고 합니다. 당시 김응수는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었는데 연극이 끝나고 잦았던 뒤풀이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결국 2년 뒤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 당시 둘은 동성동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가의 결혼 승낙을 모두 받은 상태에서 뒤늦게 알게 된 뒤 김응수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고, 당시 법적으로도 혼인신고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내 김한영의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다고 장인어른은 약사셨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내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던 김응수를 선택했고 동성동본을 극복하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며 축의금으로 받은 돈으로 김응수 혼자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응수는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다음 아내를 불렀고, 둘은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게 되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첫째 딸이 태어났고 생활이 더욱 힘들어져 총 7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 끝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응수는 한국에 와서도 처가에서 3년을 살았다고, 둘째딸은 김은서로 2002년생이라고 하며 반려견으로는 ‘쵸파’라는 치와와를 키우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토혈까지..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출연한 배우 김응수는 일본에서 토혈까지 하며 죽음의 그림자까지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과거 김응수는 연극 활동을 하다가 일본 유학을 떠나 영화연출을 공부하며 생계를 위해 신문 배달까지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피를 토했다고 합니다. 김응수는 “신문배달을 마치고 보급소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뭐가 올라오는 거야. 변기에 뱉으니까 이만한 핏덩어리야.”라고 밝히면 일본에서는 결핵 치료가 어려웠던 상황을 전했습니다.

돈 없는 유학생이라 잘 챙겨 먹지 못한 탓에 병이 온 것으로, “그때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지더라”라며 죽음이 코앞까지 온 것을 실감한 김응수는 급히 귀국해 고향 집을 찾았다고 합니다. 아들의 소식을 듣고 어머니까지 쓰러지며 모자가 위급 상황에 빠졌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회상한 김응수는 “본가에 전화했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더라. 내가 결핵 판정을 받고 귀국 조치 당했다는 걸 알고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라며 “급하게 귀국해 어머니를 찾아뵀다. 내가 앉으니까 어머니가 막 우시더라”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돈을 꺼내서 통닭을 사오라고 했다. 그걸 먹는데 내가 얼마나 피눈물 나겠냐.”라며 “어머니와 6개월간 요양을 했다. 서천에서 약 먹고 잠만 잤다.”라고 알렸습니다. 6개월간 요양 끝에 김응수는 결핵을 완치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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