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모친상 허락받지 못한 조문객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가수
👉미운우리새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와 미우새 엄마들의 근황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빈소를 찾은 동료들

이상민 어머니의 빈소에 많은 스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운우리새끼에 함께 출연 중인 김준호와 김종민, 김종국이 빈소를 찾아왔고, JTBC 아는 형님에 함께 출연 중인 강호동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으며, 그 외에도 예능계 동료인 유재석, 지석진, 이경규, 하하 등이 시간을 내서 빈소를 찾아와 슬픔에 빠진 이상민을 위로했습니다.

이상민의 어머니 故 임효순 여사의 빈소는 서울 연세대 신촌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된 가운데, 상주는 이상민과 누나인 이성경이며, 발의는 오는 7일 오전 6시,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그의 아버지

이상민의 어머니는 보험왕을 했을 정도로 오랜 시간 보험업에 종사했지만, 30개 넘게 가입한 보험 중 대부분 수당을 많이 받는 보험을 들었다 보니 실질적으로 청구해 받을 수 있는 보험이 거의 없었고, 이마저도 80세가 넘으며, 재갱신하는 과정에서 해약하면서 2천만 원을 받은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사실 이상민은 지금 시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가족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본처가 아니고, 즉 둘째 부인이었고, 아무래도 자기 집이 아버지에게는 메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태어났을 당시 매우 어려웠던 형편 탓에 2년간 호적에 등록되지 못하면서 이애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밝히기도 했던 이상민은 5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후 중3 때는 충격적인 일까지 겪게 됩니다.



하루는 친구가 명절에 왜 아버지 산소를 찾아 차례를 안 지내냐?라는 물음에 어머니께 이유를 물어보니, “우리는 교회에 다녀서 아버지 산소를 찾지 않는다”라고 변명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상민은 길을 물어물어 친구와 함께 일산에 위치한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갔다가 거기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어렵게 찾은 아버지의 비석에는 다른 형제자매의 이름은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은 안 보였습니다.

당시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이상민은 창피하고 속상한 마음에 못으로 비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으려고 애쓰기도 했습니다. 아들의 이런 방황을 일찍 눈치챈 어머니는 세 가족이 함께 있는 사진을 합성해 액자로 만들기도 했으며, 자식들을 위해 장사와 보험 판매 등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돈을 버셨다고 합니다.

억척스러운 어머니이셨지만..

이상민의 어머니는 아프시기 전까지 보험의 여왕으로 혼자 전남 곡성까지 장거리 운전도 하시며 열정적으로 전국을 누비셨던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은 아들인 이상민에게 전화해, “몸이 안 좋다”라는 말을 했고, 이때 이상민은 어머니의 발음이 평소와 다르게 이상함을 느끼고, 급히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엔 어머니가 뇌가 안 좋아서 입원하셨는데, 병원에서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혈소판 수치가 감소해 혈액 문제부터 고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분야의 권위자를 찾아갔지만, 1년간 고칠 방법을 못 찾다가 다행히 좋은 주사를 만났는데, 일주일에 한 대 맞는 주삿값이 무려 150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그걸 맞으면서 수술을 한 끝에 다행히 상태는 호전되었고, 1년 6개월 만에 뇌수술을 마치고 퇴원했습니다. 그렇게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프로그램을 떠났던 이상민의 어머니는 2018년 1월, 다시 미우새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못 가 어머니는 그만 무리하게 운동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치셨고, 그렇게 또다시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이후 다시 병원에 거의 누워 있어야만 했고, 게다가 연세도 있다 보니 다수의 합병증이 생겨나면서, 결국 이러한 일들로 움직이기조차 힘든 상황 끝에, 급기야 최근에는 치매까지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방송에서도 이상민은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의 상태가 점점 악화하더니, 어머니가 자신을 못 알아본다고 전하기도 했고, 병원비가 한 달에 1천만 원씩 든다고 설명하기도 했으며, 수년을 투병한 끝에 위독해진 상황임을 공개해 모두의 마음속을 애잔하게 만들었었습니다.

과거 승승장구하던 이상민

어린 시절 아버지도 없이 자랐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다짐 끝에 그룹 룰라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이상민은, 가수로 성공했을 당시만 해도 통장에 무려 현금 48억이 있었다고 밝히며, 그야말로 잘나가는 연예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게다가 프로듀싱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1990년대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제작자로 나서서, 기획사를 설립하였고 컨츄리꼬꼬와 샤크라, 샵 등을 성공시켜 정상급 프로듀스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당시는 현재만큼 정확한 정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였음에도 저작권료로만 수억 원을 벌었고, 그가 손대는 곳마다 승승장구 탄탄대로였습니다. 이렇게 프로듀서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면서 이혜영과 결혼한 그는 모두가 인정한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이후 엄청난 투자를 했던 신인 그룹들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20억 빚이 생겼고, 이는 외식 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국내 최초로 식사하며 격투기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이었고, 127억 원이 투자된 프로젝트였으며, 처음에는 라스베거스 2호점을 계약까지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경기 중에 불의의 사고로 선수가 사망해 영업장은 문을 닫는 것뿐 아니라, 적지 않은 피해 보상금과 계약 파기 등을 겪었고,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힘든 시련의 버팀목

특히 이상민을 빚더미에 앉힌 주요 인물 중 한 명이 화제인데, 공동 투자자였던 속칭 ‘김 사장’이라 불리는 이 인물은 이상민이 믿고 따랐지만, 투자금을 들고 잠적하면서 그야말로 처참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2005년 11월, 최종 부도 처리되고, 이상미는 70억이라는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되었는데, 사실 70억이면 일반인이라면 진작에 포기했을 겁니다. 게다가 당시 가족 채무까지 48억 원가량 있었다고 하니, 아마 웬만한 연예인이라 해도 갚을 엄두가 나지 않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이상민은 파산 신청을 안 하고 빚을 갚기로 택했습니다. 열심히 빚을 갚으려는 모습과 이상민의 이러한 사정을 알아서 그런지 몰라도, 방송계에서는 오히려 이상민을 더 많이 써주게 됩니다. 이렇게 이혼과 회사 부도까지 모든 게 한꺼번에 겹쳐 삶에 대한 의지조차 놓고 싶었을 당시, 이상민이 유일하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만 바라보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상민아, 네가 버틸 수 있다면 버텨라 이렇게 해서 강해질 수 있으면 살아달라.”라고 간절하게 호소했다고 합니다.

이때 이상민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보다 더한 시련이 와도 견뎌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과거의 삶을 진지하게 완성한 그는 2012년 음악의 신이라는 프로로 복귀해 연달아 여러 예능에 캐스팅되며 방송인으로 다시 한번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고, 12년간 80개가 넘는 예능을 출연하며 현재 본인의 빚을 거의 다 갚았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런데 이런 기쁨도 잠시 이제 좀 어머니와 부족했던 시간을 가지며 효도하고 싶었지만, 시간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기력이 약해지고 이제는 돌아오지 못하는 먼 길을 가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머니를 모시고 첫 해외여행으로 태국을 다녀왔던 것이 지금에 와서 보면 이상민에게 한편으론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말하길 “어머니가 아프셨다가 잠깐 괜찮아지셨을 때, 처음으로 태국으로 해외여행을 같이 갔다. 태국에서 휠체어 타고 다니셨는데 많이 좋아하시더라. 사진도 많이 찍었다.”라며 태국 여행을 하면서 기뻐하던 어머니를 회상했습니다. 비록 이상민이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하루라도 빨리 좋은 처자를 만나 결실까지 맺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상처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어쩌면 아이를 갖고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재혼을 지금까지 주저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이혜영과의 결혼 생활마저 1년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에 정리가 되었기에 어머니와 부족한 시간을 보낸 것 역시 여러모로 죄송한 마음에 더 다가가기 힘들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모쪼록 비보를 당한 이상민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오래 투병하신 어머니가 하늘에서는 편히 쉬시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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