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걸스 쌍둥이 언니 위암으로 결국 “동생이 최근 신곡 낸 눈물나는 이유”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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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걸스 언니

바니걸스 우리나라 말로 하면 토끼 소녀인데, 70년대 가장 인기 있던 원조 걸그룹입니다. 두 사람은 쌍둥이며, 두 사람이 춤추면서 노래 불렀을 때 두 사람이 한 몸처럼 동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관심을 더 많이 끌어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 원조 군통령이라고 할 정도로 군인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행사나 공연 등의 토끼소녀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방송 활동을 거의 중단하며 잊히고 말았습니다. 최근 동생 고재숙 씨가 방송에 나와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바니걸스 자매는 보이지 않게 너무나 큰 고통을 겪고 있었고, 최근 근황을 공개하였습니다.

가수 데뷔하자마자 히트치며…

두 소녀는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겨우 10분 차이로 언니 동생이 되었으며, 언니 이름은 고정숙, 동생은 고재숙이었습니다. 두 소녀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했으며, 어머니는 번뜩이는 영감을 받고 부산에서 서울로 와서 작곡가를 만나 예쁘고 노래 잘하는 딸들을 한 10대 때 가수로 만들었습니다.

제2의 펄시스터즈를 만들고 싶었던 어머니가 처음 만난 작곡가는 당대 최고의 신중현 씨였는데, 그에게 1년간 보컬 연습을 하고 두 곡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지나치게 간섭해서 신중현 씨가 좀 싫은 내색을 하니까 어머니가 그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찾은 다음 작곡가는 당대 또 한 분의 최고의 작곡가 김영광 씨라는 분이 있는데, 나훈아, 남진한테 아주 많은 히트곡을 준 분입니다. 작곡가 김영광 씨를 찾아가서 맨 처음 낸 노래가 1971년 파도이며 이 노래부터 히트합니다. 데뷔하자마자 히트를 했고, 이후 1974년에는 그사람 데려다 줘, 1977년에는 그냥 갈 수 없잖아, ‘김포공항’ 등 크게 히트했습니다.

그녀들의 어머니

그런데 참 인생이 기묘한 것이 자기를 이렇게 성공하게 만들어주고 또 자기를 가수로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엄마입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자기를 가장 힘들게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두 딸의 매니저 역할하면서 수입 관리를 다 도맡았습니다.

고재숙에 의하면, “그때 언니나 자기 모두 돈을 몰랐고 욕심이 없어서 그때 돈을 굉장히 많이 벌었잖아요. 그런데 부동산을 사거나 재테크를 전혀 하지 못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막 수천만 원씩 벌었는데, 그 돈을 다 어머니한테 갖다 드렸고 용돈으로 10만 원 정도씩을 받으면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사업을 했는데 다 탕진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딸들을 위해서 저축한다든지, 이런 게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결혼생활

두 사람은 조금 결혼이 늦은 편이었습니다. 1986년 언니가 결혼하고, 그다음 해인 1987년 동생이 결혼하면서 두 사람은 가요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성 속에 살다가 가정에만 묻혀 지내는 것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런 괴로움 때문이었는지 두 사람 모두 불행한 일을 겪게 됩니다. 언니 고정숙 씨는 엄마의 소개로 음악 계통에서 일하는 남자를 만났는데, 어머니의 너무나 지나친 밀어주기로 놀랍게도 그 남자를 처음으로 만나자마자 며칠 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원래 언니는 독신 생활을 꿈꾸는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는데, 결혼한 뒤에는 남편을 하늘같이 여기는 순종적인 아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그녀의 삶은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화려한 생활에 익숙했던 만큼 모처럼 큰맘 먹고 사준 딸의 옷값 때문에 남편이 잔소리하자, 그런 게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방송 활동을 접었지만, 간간이 해외 동포 위문 공연 등 각종 행사에는 출연했습니다.

그럴 때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남편과 다퉈야 하고,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녀는 결국 결혼 생활 13년 만에 이혼했으며, 막상 이혼하자 아주 자유분방하고 통 큰 여자일 것 같은 그녀도 사람들이 주위에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그런 시선이 두려워졌다고 합니다.

위암 투병 중 결국

그런데 언니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2015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2016년에 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언니의 그 몸 상태를 몰랐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언니를 본 사람들이 “어디 아프냐?”라고 물어볼 정도로 언니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언니가 좀 몸이 안 좋은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언니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위암이었고 의사의 권유대로 항암 치료받았는데 항암 치료 6개월 만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언니의 나이 향년 61살 요즘 80대, 90대까지 살기 때문에 요즘 61살에 돌아가셨다고 하면 굉장히 아까운 나이입니다. “더욱더 가슴이 아픈 것은 어머니 병원 간호하고 두 딸을 키우느라 언니를 이제 제대로 신경을 못 썼다는 게 너무나 미안하고, 언니는 자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그걸 숨기고 있었다는 거예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저희는 특히 쌍둥이잖아요. 그래서 서로 거의 똑같이 느낀다고 하잖아요. 한 사람이 아프면 또 한 사람이 똑같이 아픈 경우가 많아요.”

칩거 6년뒤 근황

자기의 반쪽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동생은 자기도 죽고 싶은 정도였다고 합니다. 6년 동안 집 밖에를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칩거했다고 합니다. 칩거 그리고 매일 눈물을 흘렸고, 자기도 언니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두 딸이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리고 6년이 지나서 이 동생은 결심합니다.

“다시 신곡을 내고 가수 활동을 하기로 했어요.” 언니가 2000년 초에 다시 가수 활동을 하고 싶어 하면서 동생에게 바니걸스 활동하자고 제안을 했던 거였습니다. 그때 동생은 아직 아이들이 어리고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언니의 제안을 거절했고, 그게 얼마나 미안하고 한이 되었으며, 다시 이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6년, 7년이 지난 후에 언니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서 언니 몫까지 더 잘 살고 더 열심히 노래 부르고자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동생은 사실 그동안 보이지는 않았지만 늘 어려운 사람들이나 장애자들을 위한 행사 무대에 서며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봉사로 많은 복을 짓는 바니걸스 동생 고재숙 님, 늘 좋은 일이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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