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2 김태연 스승 투병 끝 별세 “제자 김태연이 마지막 길 배웅” 안타까운 비보를 확인해 보세요

미스트롯 출신으로 활약 중인 김태연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습니다. 김태연은 얼마 전, 전북 정읍 홍보대사로 위촉된 데 이어, 부안 해양경찰서 홍보대사, 대한결핵협회 홍보대사,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홍보대사에 연이어 위촉되며, 깨끗한 이미지의 연예인만이 선정된다는 각종 홍보대사를 연이어 독차지하는 대단한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내 주요 기관들이 김태연을 잡기 위해 서로 경쟁을 펼칠 정도로 이제 김태연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김태연은 인지도가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집안 형편이 극심하기 어려워 고통으로 신음했던 시간을 보내왔다는 사실이 감춰져 있던 것으로 밝혀졌고, 또한 어릴 적부터 그를 가르쳤던 스승님이 암으로 지난 1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세한 내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수

극심한 생활고

김태연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어, 사실 미스트롯에 참가 중이었을 때도, 생활고에 시달리며, 그녀의 어머니가 주머니에 돈 1만 원도 없이 열차 차비만 들고 전북 부안 집에서 서울 녹화장까지 오가는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고 합니다. 때로는 늦은 시간까지 녹화하느라, 부안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방을 잡아서 묵어야 했지만, 돈이 부족해 찜질방에 들어가 아이를 끌어안고 자기도 했으며, 그때 경연의 긴장과 피로로 녹초가 된 어린아이가 제대로 된 호텔은 고사하고 여관조차도 잡아주지 못한 채, 찜질방 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재워야만 했을 때 너무나 비참하고 가슴 아픈 현실에 이 어두운 터널이 언제 끝날까?, 빛은 언제 찾아오는 걸까? 하며 눈물 흘리는 날들이 참으로 많았었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최고로 잘해주고 싶은 것이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인데,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김태연은 최고의 무대로 경연 당시 마스터들과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미스트롯에 나가기 전까지는 팬덤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인지도가 0에 가까웠던 어린아이가 경연을 거듭할수록 인기가 서서히 올라가더니 마지막에는 최종 4위까지 차지했으니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 투혼을 발휘하며 연습에 매진했을지 참으로 딱 하고 안 됐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어머니 김애란 씨는 후에 밝히길, “부안에서 서울을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다. 열차 시간이 됐는데 태연이가 아침에 학교 갔다 오니 아무것도 못 먹은 거다. 기차역에 음식점이 있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마감했다더라. 그러자 직원분이 아이를 보고 라면을 끓여주겠다라고 하셔 먹고 나서 아이가 엄마, 나 이제 살 것 같아.하더라.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그러고 열차를 타고 가면서 내가 잠이 들었다. 태연이가 나를 깨우더니 나 도저히 못 참겠어! 엄마, 이젠 안 잘 수 있지?하더라. 둘 다 잠들면 못 내릴까 봐 기다리다가 나를 깨운 거다.”라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당시 만 8살밖에 되지 않았던 어린 아이가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엄마를 챙겨줬다는 사실이 기특하면서도 천성이 참으로 바른 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어머니는 “저녁에 정읍역에 도착했는데 업힌 채 곯아떨어져서 지친 아이를 보니 기가 막히는 거다.”라고 말했는데, 이제 김태연이 유명해지고 잘 됐으니 망정이지, 만일 미스트롯에서 입상하지 못했다면 아직도 생활고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을런지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악신동

이런 김태연은 세상에서 가장 힘이 되는 존재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어머니를 꼽으며, “어머니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 같다.”라는 지극한 사랑과 효심이 묻어나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김태연이 국악 신동이 될 수 있었던 건, 남다른 핏줄을 타고난 영향도 있었는데 외증조부는 설장구 명인 김오채이고, 그는 고종 앞에서 어전공연으로 벼슬을 받은 김창환의 손자였으며, 외고모할머니 역시 가야금병창 이수자라고 합니다.

김태연의 아버지는 42세의 첫 아이이자 늦둥이 딸인 김태연을 낳았는데, 어머니 김애란 씨는 딸을 임신했을 때, 빛이 나는 청사과가 높은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태몽을 꾸고, 또 김태연의 외할아버지는 용이 집 뒤로 올라가면서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아이를 안고 오는 꿈을 꾸기도 하셨다고 하니, 장차 크게 될 아이라는 역시 그 태몽 또한 과연 범상치 않았던 것입니다. 김태연의 부모는 국악 명상 음악으로 태교했으며, 문득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다른 끼를 가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계속해서 음악을 들려줬다고 하니, 김태연이 오늘날 노래 실력을 갖추게 된 데에는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했던 교육이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김태연은 4살에 판소리를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대한민국 춘향국악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국악 신동으로서, 타고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그 뒤에는 그녀를 지도했던 명창 박정아 선생의 세심한 지도가 있었습니다.

호랑이 스승님

김태연은 6살 때 스승님의 학원에 갔다가, 선생님이 너무 멋있고 감동적이어서 자신도 스승님처럼 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박정하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게 되었고, 박정하 명창은 적벽가로 대통령상을 받았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뛰어난 명창으로, 호랑이 선생님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자들을 무섭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박정하 명창은 김태연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흥보가 한바탕을 배우려면 보통 5~10년쯤 걸리는데, 태연이는 거의 3년 만에 흥보가를 끝냈고, 힘도 좋고, 감정도 좋고, 너무 잘해서 자신도 가르치다가 여러 번 놀랐다.”라며 김태연의 천재성을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정아 명창은 “현재 유방암 4기로 전이가 많이 되어 수술조차도 할 수가 없는 상태이고, 판소리 하는 사람들은 항상 머리에 쪽을 찌는데, 이젠 머리가 없으니까 더 이상 판소리를 못하는 건 아닌지….”라며 말을 잊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그녀는 건강이 악화하며 제자들이 떠났을 때가 암 선고받았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고 토로했는데, 아픈 자신의 상태로 인해 제자들이 모두 떠났지만, 태연 양만은 끝까지 떠나지 않고 자신 곁에 남아 있었다는 감동적인 사연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스승님의 마지막 수업

그러던 박정아 명창은 결국 건강이 더 이상은 허락하지 않아, 김태연마저 떠나보내야 했고, 결국 마지막 수업을 하기 위해 김태연을 부르게 되지만, 김태연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김태연은 아픈 선생님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선생님과 이별해야 하는 사실도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아름답고 예뻐요”라며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박정하 명창은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며 “고맙다.”라며 눈물을 머금은 채, 애써 웃으며 대답하게 됩니다.

이어 박정하 명창은 김태연에게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냐?”라고 물었고, 김태연은 6살 때 만난 것을 기억하는 건 물론이고, 당시에 박정하 명창이 입은 옷과 스타일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박정아 명창은 “작년에 미국 갔을 때를 기억하냐?”면서 지난 여행 얘기를 꺼냈는데, “나이아가라를 여행 갔을 때 너무 좋았다.”라며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그때 태연이가 그랬잖아. 선생님! 제가 돈 많이 벌어서 또 모시고 올 거라고. 약속 지킬 수 있어?”라고 물었고, 김태연은 “지킬 수 있죠”라며 다음에 갈 때는 선생님의 다른 언니, 오빠, 제자들이랑도 다 같이 가자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박정하 명창은 “선생님 아픈 거 알고 있지?”라고 물었고, 김태연은 “선생님이 계속 속이 아프다고 그러셨잖아요. 그때 제가 선생님, 그렇게 아프시면 병원에 가보세요.라고 그랬는데 선생님이 괜찮다고 그러셨잖아요. 그때 언니들이랑 계속 선생님 걱정을 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병원에 가셨잖아요. 너무 못 참으시겠다고….”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박정아 명창은 “어쩌면 선생님이 태연이 곁에 오래 없을지도 몰라.”라고 말했고, 김태연은 “제가 선생님께 항상 선생님 곁을 안 떠난다고 말했잖아요. 저는 선생님이 아프셔도 돌아가실 때까지 선생님 곁을 안 떠날 거예요.”라며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박정아 명창 역시 울음이 터지며 “태연아, 선생님은 꼭 이겨낼 거야. 그러니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다른 선생님한테 가서 더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해.”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김태연이 “그래도 저는 선생님 곁을 떠나기는 싫어요.”라며 울며 대답하자, 스승 박정아는 “태연아, 나 네가 다른 곳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해서 선생님 제자가 아닌 게 아니야. 선생님이 태연이에게 엄마이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선생님은 우리 태연이가 더 좋은 곳 가서 더 많이 좋은 걸 배우라고 보내는 것이지, 선생님을 떠나는 게 아니야.”라며 자신은 태연이를 오래 가르쳐줄 수는 없지만, 헤어지는 게 인연이 끝나는 게 아님을 설명해줬습니다.

박정하 명창은 김태연과 마지막 수업에서 흥보가를 같이 부르며 흥보가 박타는 대목에서 박 속에서 뭐가 나오는지를 물었고, 김태연이 “돈이랑 쌀”이라고 대답하자, “선생님한테는 태연이가 금은보화야.”라며 태연 양을 아끼는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김태연은 그 말을 듣고 또 눈물이 나왔고 그렇게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박정아 명창은 “우리 태연이 잘하네.”라며 다정 어린 말로 칭찬했고, 스승에게 처음으로 칭찬받자 태연 양은 복잡한 심경의 표정을 짓게 됩니다.



이어 박정아 명창은 “정말 어디에 내놔도 쓰겠다. 이제 스승님한테 칭찬 처음 듣지? 우리 태연이가 이렇게 기분 좋을 줄 알았으면 맨날 해 줄 걸 그랬다. 지금까지 칭찬 많이 못 해줘서 미안해.”라며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게 되었습니다. 박정아 명창은 이어 “나는 태연이가 더 좋은 곳에 가서 더 훌륭한 스승님에게서 공부했으면 좋겠어. 선생님의 제안을 꼭 받아주었으면 좋겠다.”라며 마지막 부탁을 제안했고, 김태연은 깊이 고민하더니 이내, “선생님, 전 싫어요.”라며 끝까지 스승님 곁을 지킬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수업을 마친 박정아 명창은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며 “제 자식 같은 제자인데 보내주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우리 태연이가 더 훌륭한 곳에 가서 배우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래서 꼭 좋은 스승님한테 보내주고 싶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라며 속마음을 토로했습니다.

김태연 스승의 안타까운 비보

김태연의 스승이자,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이수자인 박정아 명창이 49세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지난 16일 국악계에 따르면 박정아 명창은 유방암 투병 중 지난 14일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습니다. 국창 임방울 선생의 3대 제자인 박정아 명창은 ‘미스트롯2’에 출연한 신동 김태연을 비롯해 많은 국악 인재를 길러냈습니다.

박정아 명창은 2000년 보성소리축제 전국대회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고인은 생전 김태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과거 박정아 명창은 2021년 KBS 1TV ‘아침마당’에서도 “암 요양병원이 병원비가 비싼데 태연이가 CF 찍었다고 어마어마한 돈을 줬다”라며 고마워하기도 하였습니다. 김태연은 주소연 명창과 함께 장례위원으로서 스승의 마지막 길을 지켰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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