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월드컵 경기장을 가득 메운 6만 관중은 탄식했습니다. 대표팀을 망가뜨린 진범이 이강인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시작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번 태국전은 2026년 북중미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아시아 2차 예선으로 친선전이 아니었기에 승리가 필수였던 경기였습니다.
한국이 지난 수십 년간 월드컵 본선에 연속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은 다름 아닌 태국 같은 약팀에게 패배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날도 한국은 절대적 우세였는데 경기 전까지 태국과의 상대 전적은 30승 7 무 8패로 압도적 우위인데다, 피파 랭킹으로 봐도 한국은 22위로 중상위권이지만, 태국 101위에 그쳐 한국의 낙승이 예상된 건 당연했습니다.
굳이 월드컵 예선이 아니었어도 한국은 승리가 필요했습니다. 지난 아시안컵 탈락으로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이후 첫 경기였기 때문에, 냉랭하게 식은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승리 외에 다른 결과를 생각해서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경기 시작부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손흥민의 선제골
한국은 경기 초반 태국의 밀집 수비에 고전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던 건 사실이나 주요 격전지가 태국 진영이 아닌 아예 중원 싸움에서부터 막혔다는 것입니다. 높은 볼점유율을 통해 경기를 지배하고자 했던 전술은 계속된 턴오버로 여의찮았고 짧은 패스가 매끄럽지 않다 보니 최후방에서 김민재와 황인범이 다이렉트로 공격을 연결하는 등 단순한 롱패스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수비력이라도 좋았으면 모르겠는데 이따금씩 들어오는 태국의 날카로운 역습도 한국 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들면 전반 8분 후방에서 드리블하던 백승호가 형편없는 탈압박으로 공을 놓쳤고 태국의 수파차이 선수가 지체없이 중거리 슛을 날리자, 골키퍼 조현우가 간신히 손끝으로 쳐내며 첫 실점 위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본기에서 태국이 한국의 상대가 될 수 없었던 건 맞습니다. 조금씩이지만 빈틈을 찾아내기 시작한 선수들은 태국의 측면 방어가 약하다고 판단, 특히 손흥민을 막기 위해 가운데로 집중된 점을 발견하자마자 전반 29분 태국의 반칙을 유도하며 페널티아크 왼쪽 좋은 자리에서의 프리킥을 얻어냅니다.
손흥민이 오른쪽 아래를 노리고 직접 찬 슛이 골키퍼에 손을 막고 불발되긴 했으나, 이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 충분한 결실이었습니다. 결국 전반 41분 초반보다 넓은 지역을 수비하려던 과정에서 공간이 열리자 왼쪽 측면을 파고 들어간 이재성이 가운데로 컷백 패스를 날리면서 손흥민이 해결사다운 첫 득점을 뽑아내게 되었습니다. A매치 45번째 골을 기록한 손흥민은 포효했고 동료 선수들을 비롯해 상암 경기장을 찾은 팬들도 올 게 왔다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한국이 약해졌다 해도 태국에게 못 이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법. 적어도 이 순간까지는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는 듯했습니다.

태국에게 동점골 허용
하지만 이렇듯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이 착각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후반 시작과 함께 경기의 흐름은 다시 태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데, 태국은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전술로 조금씩 한국 진영으로 전진해 왔고 반면, 한국 수비들은 태국의 역습에 당황하며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듯 보였습니다.
결국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밀고 들어오는 걸 끊어내지 못한 한국 수비는 코너에 몰렸고 결코 내줘서는 안 될 동점골을 허용하고 맙니다. 당시 태국은 중앙으로 파고드는 척 갑자기 방향을 바꿔 왼쪽 측면으로 날카로운 돌파를 시도했는데, 이때 한국 수비들이 한꺼번에 왼쪽으로 몰려들자 태국 공격수들은 보란 듯이 공을 오른쪽으로 보내며 틈을 만들어 냅니다. 한국이 우왕좌왕하던 찰나 이 기회를 틈타 중앙으로 강하게 넣은 패스는 무에안타의 발끝에 걸렸고, 사실상 노마크였던 그는 매우 안정된 자세로 정확히 골문 안으로 차넣었습니다.

이강인이 투입되지만…
변명의 여지 없는 실점에 깜짝 놀란 황선홍 감독은 결국 벤치에서 몸을 풀던 이강인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둡니다. 이강인을 투입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그는 경기장에 들어가자마자 아주 잠깐이었지만 경기의 흐름을 되돌리는 데 성공합니다. 순간적인 침투와 패스 등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한국 수비 진영을 헤집던 태국은 이강인의 탈압박과 전진 패스의 완벽한 상성을 보이며 위기를 맞이했고, 이는 곧바로 일방적인 한국의 반격으로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이날 한국에 대한 분석을 끝낸 태국에겐 플랜B가 있었다는 것으로 전반전처럼 태국은 필드위 10명 전원을 수비로 복귀시키는 등 다시 한번 걸어 잠그기를 시전합니다. 어떻게든 이를 풀어내기 위한 한국의 집요한 공격이 계속됐고 백승호와 손흥민이 빈틈을 노렸으나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무승부였지만 태국 선수들은 마치 경기에서 이기기라도 한 듯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지만, 분위기 전환을 위해 승리가 필요했던 한국 대표팀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 1위를 유지하긴 했으나, 2위 태국과 3위 중국과의 승점 차가 크지 않았기에 축구 전문가들은 자칫하면 2차 예선에서 경우에 수를 따져야 하는 돌발 상황을 경고하기도 했는데, 한국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요? 경기를 분석하던 해외 축구 전문가들은 “승리 가능성이 가장 컸던 후반 30분 동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장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강인이 교체로 들어가고 한국의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됐던 당시 공을 몰고 전진하던 수비수 김영권은 오른쪽 측면에 노마크로 있던 이강인을 발견하고도 굳이 태국 수비들이 촘촘하게 서 있는 중앙으로 패스를 넣으려다 가까스로 턴오버를 면하게 됩니다. 이 장면이 소름 끼쳤던 건 프로 선수들이 마음먹고 한 선수를 따돌리면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이를 눈치채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패스 타이밍을 딱 한 박자만 느리게 해줘도 오프사이드 트랙 돌파 확률을 조작할 수 있으며 드리블 역시 조금만 미적대는 순간 100% 공을 받을 받을 수 있던 선수도 상대 수비에 가려질 수 있었기에 경험없는 일반 팬들의 입장에선 뭔가 이상한 기분만 느낄 뿐,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이강인은 우리가 모르는 짧은 순간에 10번도 훨씬 넘는 패싱을 당했을지 모른다는 것. 게다가 누가 봐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으로 이강인을 패싱했다는 건 적어도 일부 선수들 중엔 이날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이강인을 대표팀에서 몰아내겠다는 삐뚤어진 심보를 노출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이강인은 오죽 답답했는지 아직 표정 관리가 중요한 시기에 얼굴을 꾸긴다거나 나중엔 아예 두 손을 번쩍 들며 소리치는 등 제발 패스 한 번만 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손을 들거나 소리쳐봐도 선수들의 눈 밖에 난 이강인은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었고 심지어 그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태국 선수들은 이강인을 연신 흘깃하며 어리둥절한 표정마저 짓습니다. 결국 이 상황을 눈치챌 태국 선수들은 아예 이강인이 뛰는 오른쪽을 텅 비워두며 여유롭게 한국 공격을 막아내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를 처음 발견한 해외 축구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 대표팀은 이미 피해 당사자인 손흥민도 용서했고 이강인이 축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 상황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은 팀워크적인 면에서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거나 어린 선수를 이끌어줘야 할 고참 선수들의 따돌림이 한국 축구를 흑역사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등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손흥민과 이강인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후반 25분 페널티 박스 바로 앞에서 이강인이 침투 패스를 건네자, 공을 이어받은 손흥민이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는 등 호주전에서 보여준 케미는 여전히 위협적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주장으로서의 가치를 잘 알고 있던 손흥민은 결국 휘슬소리가 들리자마자 더 이상 못 해 먹겠다는 듯 주장 완장을 패대기쳐 버립니다. 심지어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잠시 넣어뒀던 대표팀 은퇴서를 다시 꺼내 들기까지 했는데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지난 아시안컵 이후 대표팀 은퇴를 진지하게 고려했었던 것이 사실이고 마음을 돌린 건 팬들 때문이었다. 이어 오늘 태국전 무승부로 그런 심정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은퇴한 많은 선수에게 정말 질문도 많이 하고 조언도 구했는데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셨다”라며, “이제는 진짜 결정을 내릴 때가 된 것 같다. 축구 선수로서 이렇게 힘든 상황 속의 동료들은 여전히 상황을 개선하려 들지 않는 것 같다. 경기에 뛰는 선수와 뛰지 않는 선수들 모두가 최소한 노력은 했다는 부분은 존중하지만 좋은 결과에 도달하진 못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강인과 그라운드에서 뛰는 게 즐겁다”라면서 “후반 17분 이후 공격의 흐름을 바꿔놓은 그의 재능은 놀라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