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붐 득녀 아빠됐지만, 안타까운 소식 “손녀와 못 만나는 할아버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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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붐의 득녀

붐이 득녀했다는 소식을 알린 가운데 신생아를 보러 가족들이 모두 병원을 찾았지만, 아이의 할아버지께는 손녀를 보여드릴 수 없었던 이유가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붐은 7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식을 올린 지, 2년 만에 2.9kg로 태어난 아이와 산모는 모두 건강한 상태이며 붐은 아내의 곁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붐은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아내가 만삭이고 비상 대기상태라며 “만약 방송 도중 아내에게 진통이 온다면 어떻게 할 거냐?”라는 물음에 “녹화를 끊고 가겠다. 내가 아이를 내려줘야 하니까”라며 새 생명에 대한 큰 기대감을 표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붐 아버지의 안타까운 소식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한 가운데 붐의 아버지 다시 말해 딸아이의 할아버지께는 이 소식을 알리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몇 년 전 붐의 아버지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2교 도로를 달리다가 중앙분리대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고 차량이 멈춰 있는 것을 후속 차량이 목격해 신고하면서 구조대가 출동했지만, 안타깝게도 사고 현장에서 나이 예순에 즉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고 당시에는 운전석 쪽 타이어가 사라졌었을 정도로 충돌이 크게 일어났음을 짐작해 주었고 붐은 소식을 접하고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당시에 반실신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붐은 한참이나 위패에서 손을 떼지 못하기도 했고 시신이 운구차에 실려 가자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고통으로 한없이 통곡하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당시는 붐은 연예인으로 데뷔했지만, 10년 넘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오랜 비 인기시절을 버티다가 겨우 조금씩 예능 프로에서 자리를 잡아 나가려던 시기였고, 이후 점점 활동 폭을 넓히더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방송사 피디들이 가장 선호하는 최정상 메인 MC 급으로까지 올라왔지만, 아버지는 지금의 모든 영광을 보지 못하셨기에 붐은 아버지에 대한 불효와 죄송함으로 한없이 오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수로 실패하자, 케이블TV 리포터 전향하며….

붐은 최근 결혼에 이어 아내의 출산 소식까지 알렸기에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아들의 출세와 손녀 출산까지 모든 기쁨을 함께 누렸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붐의 아버지 고 이용기 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 기업에 입사해 30년 넘게 근속 중이셨을 정도로 근면·성실하셨던 분이셨고 덕분에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붐과 여동생을 살뜰히 키우실 수 있었으며 아들 붐이 사회에서 성공하도록 항상 뒤에서 기도하셨는데 지금이야 아들이 방송가에서 종행무진하고 있지만, 붐은 사실 과거 97년에는 아이돌 그룹 , 99년에는 뉴클리어, 2001년에는 레카라는 그룹으로 세 번이나 데뷔했다가 소속사 사장이 도망을 가는 등 전부 실패를 쓸 정도로 데뷔 초반에는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실패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방송에 대한 붐의 열정은 쉽지 않았는데, 일이 없는 와중에도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쉽게 표현하고 관심을 끌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지 연구했고 덕분에 마치 씨름 선수였던 강호동이 개그맨으로 변신한 것처럼 자신도 케이블TV 리포터로 전향해, 스타 옆에 서면서 당장은 스타가 되지는 못해도 옆에서 스타를 띄우는 역할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비록 가수로는 실패했지만, 제2의 직업으로 성공을 굳게 다짐한 붐은 스타 옆에서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마이크에 본인 이름을 붙이고 나간 적도 있었고, 지상파를 비롯한 백여 명이 넘는 취재진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시 톱스타였던 김희선의 인터뷰를 단단히 따내기도 했으며, 이를 계기로 MBC의 연예정보 프로그램 ‘섹션TV 연예통신’의 리포터로 발탁되어 지상파에 입성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붐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각종 프로그램에서 감초로 활약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게 되는데,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좋은 이미지를 팬들에게 심어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지만 붐은 오히려 역발상으로 비슷한 캐릭터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무도 원하지 않는 ‘싼티의 1인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프로그램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예능에 숨은 보석같은 존재로 점점 인지도를 쌓아 나가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런 싼티 컨셉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비호감 이미지를 사기도 했지만, 대중들의 이미지가 안 좋았던 것과는 달리 방송과 피디들 사이에서는 출연진이 펑크가 났을 때, 전화 한 통이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와서 방송사고를 막아준다고 알려지는 등 열심히 한다는 평판이 나며, 이미지상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었고, 이는 선배였던 강호동과 같은 프로에 출연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배웠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불법 도박사건

하지만 그렇게 여러 예능 프로에서 게스트로 활약하던 붐은 어느 날 탁재훈과 이수근, 토니, 양세형 등과 함께 불법도박 사건에 연루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워낙에 ‘까브리 캐릭터’로 활동해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차에 불법도박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당시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지만 알고 보니, 탁재훈과 이수근 토니가 10억 넘게 배팅했을 정도로 배팅 액수가 많았던 것에 비해 붐과 양세형은 배팅 액수가 적었던 것으로 밝혀지며 벌금 500만 원이라는 비교적 약한 처벌만 받고 자숙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붐의 아버지는 힘겹게 연예계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아들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고, 붐 역시도 아버지의 가슴에 도저히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매일 눈물을 흘리며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범죄가 위중하지는 않았던 덕에 양세형은 반년 만에 연예 활동에 복귀할 수 있었고, 붐도 1년 만에 다수의 피디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며 복귀를 준비하게 되는데, 붐에게 다행이었던 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래도 방송가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던 것이 피디들로 하여금 붐의 복귀를 기다리게 했고, 붐도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피디를 찾아가 회초리까지 맞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잘못을 다시는 재발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진심 어린 사과

당시 그는 “어떤 이유로도 이해받지 못할 잘못을 저지른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불행한 일임을 뼈저리게 느껴 많은 반성을 했고 앞으로 주어진 위치에서 신인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 염치없는 말이지만 방송이 정말 그리웠고 여론의 몸매를 맞으면서도 복귀하고자 하는 데에는 방송을 떠나고 있는 걸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며 솔직한 심정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버지의 비보 이후..

붐이 사고를 친 이후 고개도 제대로 들고 다니시지 못하셨던 부모님도 부디 아들이 재개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간절히 응원을 보내주시게 되는 하지만, 그렇게 복귀해 시동을 걸려던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펼쳐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서두에 언급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이었습니다. 아버지께 마음고생을 시켜드렸다는 죄책감에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다짐할 것만 아버지는 말년의 아들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모습만을 보시고는 그만 이승을 떠나고 마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붐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며, 자신이 기필코 재기의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려 했건만 그런 기회조차 더 이상 주어지지 못하게 된 현실에 한없이 눈물이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근무하시며 가족들을 지켜주셨던 아버지는 그렇게 한 줌에 재가 되셨고 불효자가 된 붐은 아픔을 가슴에 안은 채 더 굳은 의지로 방송 활동에 매진해 TV조선 ‘미스 트롯’과 ‘미스터 트롯’ 시리즈, ‘개나리 학당’, ‘화요일은 밤이 좋아’와 ‘사랑의 콜센터’ 등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을 하는 등 유재석과 강호동 신동엽의 버금가는 다음 세대 예능인으로 꼽히며 2020년대에 전현무와 함께 가장 방송 활동을 많이 하는 연예인으로 당당히 발돋움하게 됩니다.

붐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흥을 돋울 수 있게 적절한 추임새를 넣으며 자신만의 유머 감각과 퍼포먼스로 분위기에 딱 맞는 멘트와 개그로 웃음을 주는 등 프로그램에 활력을 불어넣는 ‘흥 마스터’로서의 끼를 아낌없이 발산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수로는 세 번이나 실패했지만, 바닥에서 리포터로 다시 시작해 예능 게스트 시절을 거쳐 끝내 메인 MC 반열에까지 올라가게 된 붐은 얼마 전에는 결혼까지 발표하며 인생의 최전성기 맞이하게 되는데 7살 연하의 미모의 여성과 가정을 꾸린 그는 아내의 출산 소식까지 전하며 그야말로 경사가 이어지는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붐은 이렇게 기쁜 와중에도 먼 곳으로 떠나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잊히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출세와 결혼 출산까지 이 모든 과정에 아버지가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붐은 과거 2005년에 신인상을 수상하고 집에 돌아가자 책상 위에 놓인 아버지의 편지와 가득 쌓인 싸인지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편지까지 써가며 아들을 축하해 주고 싶으셨고 동네 주민들에게 아들의 사인을 나눠주고 싶었을 정도로 아들의 수상을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수상소감에서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모님 덕분이라며 이제는 부모님께서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주고 계신다”라고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비록 아버지가 더는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먼 곳 어디에선가 아들을 자랑스럽게 지켜봐 주시리라 생각하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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