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미령을 드디어 찾아낸 토트넘 회장 “손흥민이 사연 듣고 깜짝 놀란 이유”을 확인해 보세요

혹시 개그맨이란 단어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이 개그맨이란 단어의 원조는 바로 기인이라 불리던 전유성입니다. 전유성 기행이란 게 따로 존재할 만큼 항상 별나고 자존심 강하던 그는 어느 날 한 기자에게 자신의 아내 진미령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내가 세상 살며 별의별 고개를 지금까지 다 넘어봤지만, 이 고개를 넘는 게 가장 힘들었어! 그게 무슨 고개인 줄 아니 바로 내 아내인 진미령이야” 이렇듯, 진미령은 전유성과 이혼한 전 부인이자 15년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던 남다른 결혼관으로 유명했는데, 사실 그녀와 그녀의 집안은 연예계 이슈에 그쳐서는 안 될 만큼 우리 한국사의 대단한 족적을 남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토트넘 회장이 진미령의 소식을 애타게 찾아다녔던 놀라운 사연에 대해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축구

진미령의 가수 데뷔

사실 진미령은 가수라는 꿈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화교 학교를 나와 3월에 졸업하고 8월에 대만으로 교환 학생을 갈 예정이었어요. 그전까지 놀기는 모에서 오아시스 레코드라는 곳에 가서 노래 연습했어요. 그때 타미아저씨가 저를 보시고 가수로 데뷔시키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대만에 가야 한다라고 말씀드렸는데 타미아저씨가 대만 가기 전까지 가수로 데뷔시키겠다라고 하셨어요. 대만으로 가기 전에 가수로 확 떴어요. 그래서 대학교는 못 가고 가수가 됐어요.” 진미령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1977년 제1회 MBC 서울 가요제에 장덕이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혼를 하게 된 진짜 이유

진미령은 지난 2001년 개그맨 전유성과 결혼해 연예계 최고의 잉꼬부부로 불리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후 이혼 소식을 전합니다. 과거 진미령은 전유성의 두 번째 부인으로 서류에 오르는 것이 싫다라며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고 이 둘 사이에 아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되고 시간이 좀 더 지난 후 그 소식이 알려집니다. 여기에 이혼 사유를 둘은 이렇게 밝힙니다. 먼저 진미령의 이야기는 이러하였습니다.

“냉면을 먹고 싶어 남편과 만나기로 한 적이 있어요. 냉면 집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이미 혼자 냉면을 다 먹고 난 후였어요. 하지만 함께 있어 주겠다고 해서 제가 주문한 냉면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난 다 먹었고 보는 건 지루하니 먼저 가겠다라는 거예요. 당황해서 순간 아무 말 못 하고 있는데 정말 가버리더라고요. 그때 헤어져야겠다라고 결심했어요. 냉면을 먹는 이 짧은 순간도 기다려주지 못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함께 살아나가겠어요. 10년 동안 참아왔던 것이 표출된 계기였어요.

반면 전유성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진미령과 관련된 이야기는 더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다가 전유성은 후에 이렇게 자책합니다. “난 단란한 가정을 하기에는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돈벌이도 그렇고 가정적인 성격도 못 된다. 많은 면에서 부족했다. 먼저 진미령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남편 전유성은 굉장히 배려가 없는 사람입니다. 냉면 먹는 동안도 기다려주지 못하는 남자니까요. 배려 없는 부부란 남남보다 못한 존재죠.” 전유성은 젊을 때나 지금이나 이런 기인 같은 행동했지만. 젊은 시절의 진미령은 아마 그런 모습까지도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삼계탕집에 대한 엉뚱한 기획이나, 책을 내고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는 전유성의 모습을 보실지로 진미령 역시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진미령은 헤어지기로 작정한 결정적 이유로 경제관념 차이를 꼽았습니다.

“그 사람은 착하고 좋은 남자예요. 갈라서기로 한 건 경제 관념의 차이 때문이에요. 모든 이권을 남한테 줘요. 노후에 쓸 돈이 없으면 사람들한테 가서 달라고 하겠다더라고요. 본인은 좋은 마음에서 남들에게 다 베풀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저는 뭐든지 정확하고 분명한 것이 좋고 신세를 지기 싫어서 밥값도 제가 내야 편한 성격인데 그런 점들이 맞지 않았던 거예요.”라고 밝혔습니다.

최근에는 김치 사업가로 변신해 진미령은 또 다른 삶의 페이지를 넘기는 중입니다.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진미령의 앞으로의 모습도 기대합니다.

진미령의 아버지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그녀의 진짜 성인 김씨 집안의 이야기에 관해 말해 볼 텐데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미국 선정 한국전쟁 4대의 영웅인 그녀의 아버지 김동석 대령입니다. 진미령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실미도라는 영화가 나왔었지 않냐. 북파공작원의 대장이셨던 분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군인 출신이셨으니까 눈빛에 살기가 있으셨다. 집 안 곳곳에 칼을 두셨던 것이다. 피해망상이라는 병이 있으셨다”라고 전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이다라는 생각에 베개, 식탁보, 소파 밑에 늘 칼을 숨겨놓고 계셨고 그렇게 과대망상같이 혼자 속앓이를 많이 하셨다.”라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에 대해 안쓰러움을 드러냈습니다.

진미령의 부친은 북파공작원의 대부로 불리는 김동석 씨로, 지난 2009년 향년 8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습니다. 김동석 대령은 일제강점기 지금은 북한 땅이 된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나 태평양 전쟁시기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입니다. 광복을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이자 한국전쟁에서 몸 바쳐 싸운 국가유공자이십니다. 진미령의 아버지 故 김동석 대령은 1942년 중국에 자리 잡고 있던 한국광복군에 소위 계급으로 입대하였고 중위로 진급하여 광복 전까지 중국에서 광복군 활동을 이어 나가셨습니다. 이후 김동석 대령은 광복 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고 한국전쟁에선 대위로 참전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김동석 대령은 한국전쟁 중 1950년 벌어진 화령장 전투에서 수도경비사령부 제17연대 11중대장으로 복무할 당시 북한군 제15사단 45연대와 혈투를 벌여 궤멸시키기도 했습니다.

중대와 연대의 규모가 4배 가까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업적을 세웠으며 김동석 대령이 속한 제17연대는 전원 1계급 특진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부터 5.16 쿠데타 때까지 휴전선을 넘나들며 첩보 활동을 벌인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김 씨는 5.16 혁명 불참으로 36지구 대장직에서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씨와 같은 육사 8기에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 이석재 전 감사원장, 고재일 전 건설부 장관, 오치성 전 내무부 장관, 윤필용 전 수경사령관, 차규헌 전 군사령관 등이 있었습니다. 전선에서 주로 북파공작 업무를 진두지휘해 온 김 씨는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첩보를 제공하고 휴전 직후인 1954년 2월 강원도 원산만에서 인민군 사단장 이영희를 귀순시키는 등 전쟁 전, 후로 혁혁한 공훈을 세워 한미 양국으로부터 전쟁영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선정한 한국전쟁 4대의 영웅은 김 씨를 포함해 맥아더 장군, 리지웨이 유엔군 총사령관, 백선엽 장군 등 4명입니다. 이후 육군첩보부대와 동해안 지역을 담당한 제36 지구대에서 첩보 장교로 맹활약한 김 씨는 1961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후에는 함경북도지사, 대한유도회 부회장 등을 지냈습니다. 미국 정부는 미 2사단 캠프 레드 클라우드 내 사단 전쟁박물관에 김동석 영웅실을 만들기도 했으며 미 2사단은 2002년부터 매년 12월 16일을 김동석의 날로 지정하여 김 씨의 공훈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토트넘 레비 회장이 진미령을 찾는 이유

이렇듯 지금까지 6.25에 얽힌 한국의 영웅들을 다뤄봤는데 우리의 호국영령 말고도 이 전쟁엔 여러 국가들의 참전용사가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영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전투 부대를 파견한 국가로서, 남한에 파견한 56,000명의 병력 중 대략 5,000명 이상의 인명 피해를 감수했을 만큼 우리에겐 감사한 우방국이자 피해 역사를 함께했던 혈맹국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로선 영국의 은혜를 갚을 참전용사들이 정말 많이 존재하는데, 토트넘의 에릭스타머라는 임원은 어느 참전용사의 손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평소에 할아버지로부터 6.25에서 활약한 김동석 대령의 명성을 마치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처럼 새겨들어왔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실제로도 그의 할아버지는 김동석 대령과 작전을 같이 했던 용사였습니다. 그 때문에 토트넘 회장은 방한 때마다 종종 한국의 관계자들에게 소식을 묻고는 했는데, 오죽했으면 진미령의 가족들을 영국에 초청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토트넘 회장 역시도 6.25와 관련 있는 군인 집안의 자제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김동석 대령의 별세 소식 및 김 대령의 딸인 진미령이 유명한 가수라는 사실, 나아가 진미령이 평소에도 참전용사들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이라고 전해 듣자, 그야말로 대단한 애국자 집안이라며 굉장히 놀라워했다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이렇듯 6.25를 도와주러 온 영국에서 손흥민 같은 한국 축구 스타가 나올 줄은 솔직히 영국이나 우리나 당시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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