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세 계은숙 끝내 안타까운 소식 “사기로 전재산 170억 날리고 결국…”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과거 인기 가수였던 계은숙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얼마 전, MBN ‘한일톱텐쇼’에 출연하며 정말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등장했던 계은숙은 당시 후배 전유진과의 무대에서 젊은 시절과 똑같은 녹슬지 않은 가창력을 선보여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모습 뒤에 계은숙은 너무나 처참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온 것으로 전해졌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한 남자의 첩으로 계은숙을 낳았고, 불우한 형편에서 자라 가수가 된 뒤 인기를 얻었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일본으로 도망치듯 떠나야 했으며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후에 강제 추방을 당한 뒤, 우울증으로 신음하던 중 각종 사기에 연루가 되어 전 재산을 잃은 것도 모자라 실형까지 산 끝에, 끝내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며 극도의 괴로움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가수

아버지 없던 어린 시절

계은숙은 출생하는 순간부터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서울에 이미 본부인과 자식들이 있으면서도 어머니를 속여 허위로 결혼식까지 올리며 사생아인 친언니와 계은숙을 낳았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말만 믿고 자라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작은 매점을 운영하며 홀로 계은숙과 언니를 키웠는데, 형편이 어려워 어린 은숙도 12살 때부터 행상에서 물건을 팔며 어머니를 돕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계은숙은 이후 사춘기 시절 어머니와 친하신 분으로부터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때 아버지의 존재를 숨긴 어머니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데 어머니는 그제서야 어린 은숙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며 당시 아버지의 존재를 숨겼던 이유는 딸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고, 어머니는 사실 6·25 이후 아버지와 결혼했지만, 알고 보니 아버지는 본부인이 있었고, 어머니는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어 끝내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일로 한참 동안 방황을 하게 된 계은숙. 하지만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은 사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가수 데뷔와 일본으로 떠난 이유

10대 시절 가수로 데뷔한 계은숙은 아리따운 외모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큰 인기를 끌었고 고음에서 찢어지는 듯한 호소력 있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79년 ‘노래하며 춤추며’로 스타덤에 올랐고 그 후 ‘기다리는 여심’의 대히트로 인기 가수로 자리매김했는데 이렇게 80년대 초반까지 인기 가수로 이름을 날렸던 계은숙은 그러다 85년에 돌연 일본으로 떠나버렸고, 여기엔 아주 가슴 아픈 비하인드가 숨어 있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결혼까지 하려 했던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고, 소위 이름만 대면할 만한 대기업의 아들이었지만 남자의 집안에서 계은숙을 ‘딴따라’라며 받아주지 않은 바람에 남자는 돌연 그녀를 떠나버리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큰 상처로 슬픔에 빠진 상황에서 도저히 방송에 나와 웃고 춤추며 노래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방송에 펑크를 내버리는 바람에 방송사들로부터 출연 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고, 때마침 일본 진출 제의를 받아 도피하듯 일본으로 떠나버리게 됩니다.

그녀는 일본 진출에 큰 포부를 가지고 ‘오사카의 모정’이라는 곡으로 데뷔했습니다.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큰 사랑을 받게 된 그녀는 자신도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데, 그녀는 일본의 인기 엔카 가수로 명성을 쌓으며 활동했고, 한국 가수로서는 일본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며 일본에서 1년에 딱 1번 연말에 최고의 톱스타들만이 출연하는 ‘NHK 홍백가합전’이라는 프로에 7년 연속 출연했을 정도의 톱스타가 되었으며, 심지어 당시 일본 총리이던 고이즈미 주니치로가 그녀의 엄청난 팬이기도 해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면 항상 계은숙을 초청해 만찬에서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련의 연속

그녀는 일본에서 2000년대까지 큰 인기로 활동을 했고, 활동 중에 우연히 일본 공항에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동네 오빠를 만나게 되어 인연이 이어져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는데, 하지만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던 게, 계은숙의 남편은 장남이었기에 대를 이어야 했지만, 계은숙은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갈등이 심했고, 또 가수 활동과 가정주부 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너무나도 바빠 스트레스가 많았던 데다가 남편의 사업마저 점점 힘들어지는 바람에 두 사람은 결혼 6년 만에 결국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혼을 한 것이 소문이 나자, 계은숙은 일본에서 인기가 크게 추락하게 되었고, 그 결과 몇 년 동안 슬럼프를 겪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녀는 2006년에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고, 일본 대도시 투어 콘서트까지 진행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다시 ‘엔카 여왕의 자리’에 올라선 순간 계은숙은 자택에서 각성제 소지 혐의로 체포되면서 일본에서의 모든 활동을 끝마치게 됩니다. 일본 법원은 계은숙에게 각성제 소지 혐의 비자 연장을 거부하고 한국으로 퇴출 명령까지 내리게 되었습니다. 한때 일본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엔카의 여왕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계은숙이 졸지에 일본으로부터 추방까지 당해버리게 된 것인데요.

사실 그녀는 20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에 유리 파편이 박혀 있었고, 당시 미처 다 제거하지 못해 남아 있던 파편들로 두통에 시달려오던 중 소속사에서 그녀에게 두통을 줄여준다는 약을 건네 복용하게 되었는데 해당 약은 알고 보니 환각 성분이 들어있는 각성제였고, 더구나 각성제 복용 외에도 계은숙은 일본으로 귀화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기도 했었다 보니 괘씸죄까지 적용되어 그렇게 억울하게 일본에서 영구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일본 소속사는 계은숙에게 끊임없이 일본으로 귀화와 일본식 이름으로의 개명을 요구했지만, 계은숙은 일본 귀화를 끝까지 거부했고 한국인으로서의 지조를 지켰다고 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계은숙, 사기 사건에…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계은숙. 그러나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그녀의 고난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혼에 이어 일본에서 퇴출까지 당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그녀는 계속해서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포르쉐 사건으로 하루는 지인 김 씨와 서울의 포르쉐 매장을 찾아가 리스로 차를 구입하려 했지만, 신용 조회 결과 계은숙이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돼 구입이 불가했고, 계은숙이 출연료 2억 원짜리 공연 계약서를 매장으로 팩스로 보내 구입을 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 이 계약서가 가짜임이 밝혀진 데다가 심지어 차를 건네받은 김 씨는 차를 담보로 사채업자의 5천만 원을 빌린 뒤 리스비는 전혀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확인 결과 이 일은 계은숙도 사기를 당한 것이었는데 사기꾼 김 씨는 20살 때부터 계은숙의 팬이었고, 이후 왕래가 없다가 30년이 지나 연락이 와서 다시 만나게 됐는데, 한국에서 재기하고자 연예계 복귀를 하려던 당시 김 씨로부터 매니저 박 모 씨를 소개받고는 박 모 씨가 매니저 일을 보기 위해 참고하겠다면서 과거 공연 계약서를 받아 갔다가 김 씨와 박 씨가 공모해 일을 벌인 것이었고, 계은숙은 그 계약서가 가짜로 쓰였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사기꾼들은 돈을 갚으라며 자신들이 차린 강남의 한 술집에서 계은숙에게 노래를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는데 계은숙은 너무나 억울했지만, 그럼에도 계약서에 직접 서명했기 때문에 도의적으로 피해액을 진위 변제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고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서 한국에서의 컴백은 무산이 됩니다. 당시 고령이 되어 치매까지 앓으셨던 어머니는 딸이 한국에서 다시 일어서기를 바랐지만 계은숙은 고통으로 신음하는 날들을 보냈고, 그러다 고통을 잊기 위해 약초에 손을 댔다가 결국 실형까지 살게 됩니다.

젊은 시절 모르고 먹었던 약 성분에 중독이 되었던 그녀는 각종 소송에 휘말려 약 17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이 날아갔고, 그 여파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렸으며 극단 선택까지 하고 싶었지만 엄마를 생각하며 참고 또 참다가 결국 약에 손을 대게 된 것입니다. 이때 그녀에게 약을 꺼냈던 게 매니저였는데, 정확히 이틀 후에 경찰조사가 들어온 바람에 계은숙은 마치 누가 제보라도 한 것 같은 강한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고, 더구나 이때 또다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게 됩니다.

수감 중 어머니가 세상 떠나고

그건 바로 수원교도소 수감 중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어머니가 홀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마셨던 것입니다. 법무부로부터 3박 4일간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어머니의 빈소를 찾은 계은숙은 임종을 지키기는커녕 돌이킬 수 없는 불미스러운 일로 어머님 가슴에 못을 박았다며 통곡했는데, 장례 당시 가족 중 남자가 단 한 명도 없어서 무척 애를 먹었다며 “손자라도 있었으면 도움을 받았을 텐데, 손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구속 중인 상태에서 장례를 치러 시신을 인수할 돈도 없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한평생 고생하며 두 딸을 키운 어머니께 효도하기는커녕 돌아가실 때조차 곁을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억장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딸의 수감 생활을 뒤늦게 지인을 통해 듣고는 곡기를 끊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잘못 속에서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많은 자책과 후회를 했다는 계은숙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데, 예쁜 외모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한때 일본 최고의 엔카 가수로 활약했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몰락해 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제 그녀가 다시는 주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밝은 모습으로 재기할 수 있기를 바라며 가수 계은숙을 응원합니다.

관련 영상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You may also lik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You cannot copy content of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