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 그렇게 열심히 활동했는데 “장례식에 아무도 안 온다!”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배우

건강 악화한 김수미의 근황

김수미가 건강 악화로 전격 활동 중단을 선언한 가운데, 많은 대중의 걱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한양대 병원에 입원 중인 김수미의 건강 상태는 단순한 피로 누적으로 인한 입원이라는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76세가 되어 팔순을 향해 가고 있는 김수미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은 것이 아니냐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수미가 수년째 드라마에 출연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건강을 해칠 정도로 극심한 피로가 올 수가 있는지 의아함을 가지는 대중들도 있지만, 실은 그녀는 최근 한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김수미의 아들이 운영하는 식품회사는 한때 평탄하게 성장해 왔지만, 예기치 않은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사건의 발단은 한 수산물 유통회사 대표 A 씨와의 계약 문제. A 씨는 B사와 꽃게 납품 계약을 체결했지만, B사의 요청으로 김수미의 아들 회사로 꽃게를 납품하게 되었고, 대금은 B사로부터 받아야 했으나, 결국 받지 못한 A 씨는 물건을 받은 김수미의 아들 회사에 대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수미는 큰 충격을 받았고,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수면 부족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건강이 악화하였다고 합니다.

팔순의 나이에도 무리하게 활동하는 이유

더구나 김수미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지난달 말까지 뮤지컬 ‘친정엄마’에서 조연도 아닌 비중이 가장 큰 주인공 역으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 맹활약을 해왔고, 이 뮤지컬은 김수미가 무려 2010년부터 해오고 있었을 정도로 그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tvN 예능 프로그램 ‘회장님네 사람들’에도 햇수로 3년째 매주 빠짐없이 출연하는 등 다양한 예능 프로와 행사 등의 얼굴을 비추며 일반인이라면 진작에 정년퇴직하고 은퇴했을 나이에도 젊은 사람처럼 똑같이 활동하는 바람에 몸과 마음의 극심한 피로 스트레스가 누적되었던 것인데, 그렇다면 형편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딛고 이제는 충분한 재산을 모은 김수미가 아직도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배우로 데뷔

김수미 씨는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며 이후 주로 TV 드라마에 출연해 왔습니다. 데뷔 초에도 이국적이고 개성 있는 미모를 자랑했으나, 당시 선호되던 스타일은 아니어서 데뷔 후에도 한동안 무명 생활을 하였습니다.
의외로 연예 활동 초기부터 진행자 경력이 있는데, 1982년부터 MBC 오늘의 요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고 1987년부터는 MBC 토요일 정보 총집합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때의 경험이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김수미, 본인의 이름을 내건 예능 프로그램들을 여러 개씩 진행할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전원일기

1980년부터 방영한 국민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용 엄니역으로 무려 21년 동안 열연했는데 처음 촬영할 당시 겨우 32세의 나이에 시골 할머니 연기를 했고, 아들인 일용이 역할의박은수보다도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래서 아들보다 나이 어린 엄마였던 것이었습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하기를 “제작진으로부터 전원일기의 출연은 통보받았으나 어떤 역할이라고 구체적인 얘기는 듣지 못했다.”라고 합니다. 이후 대기실에서 만난 선배 박은수가 “야! 너랑 나랑 한집에 산다.” 그러길래 “어머! 선배님 그럼 우리 부부예요?”라고 물었더니 “네가 우리 엄마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나이도 더 위인데다, 방송사 직속 선배인 박은수와 연기하는 게 좀 불편했으나 차츰 적응된 이후에는 연기할 때는 신나게 “일용이 너 이놈 시킨!”하고 혼내다가 그날 촬영이 끝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드린 뒤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박은수 선배도 적응이 돼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고,일용 엄니` 역을 맡은 배우가 후배 김수미라는 것을 알게 된 박은수는 “처음에는 저 여자의 얼굴이 어떻게 할머니가 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합니다. 당시 김수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데다 조그맣고 아주 어려 보이는 외모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첫 녹화 후 소위 대박을 터트리게 됩니다. 사실 김수미는 일용 엄니 배역을 하기 싫어서 3개월 동안 제주도로 도망간 적도 있습니다. 이 여파가 엄청나서 전원일기 PD는 “촬영에 복귀하지 않으면 이 동네 식구들을 극에서 아예 제외해 버리겠다.”라고 했지만, 김수미는 “맘대로 하라.”라며 무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은심 역에 김혜자가 나서서 “다른 출연자들은 이것을 직장으로 생각하는데 너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너 하나 때문에 아들 박은수와 며느리 김혜정의 밥줄을 끊을 셈이냐?”라고 말하자 정신이 번쩍 든 김수미는 다시 출연하겠다고 PD에게 전화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수미는 이 드라마로 1986년에 MBC 연기대상을 받았는데 조연 역할인데도 최초로 연기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존재감이 매우 강한 캐릭터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조연 역할이 연기대상을 수상받은 사례는 김수미가 유일한데, 그만큼 김수미가 일용 엄니의 배역을 실감 나게 잘해서, 할아버지들이 방송국으로 팬레터를 엄청나게 보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1980년대 중반 일용 엄니 역할을 한참 하던 시절, 노인 분장을 지우고 어린이 영화 우뢰매 3편과 4편의 김 박사 역할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1988년 어린이 영화 용호취에서 일본 야쿠자 두목 역으로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출연 당시 이미 30대 후반임에도 그녀의 미모는 여전했습니다.

시어머니 사고로..

김수미는 결혼을 약속하고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뵈러 갔는데, 남자 친구의 부모님이 조실부모했다. 대학을 안 나왔다, 직업이 연예인이다라는 세 가지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김수미는 “대학은 다시 가면 되고, 연예인은 그만두면 되지만, 부모님 돌아가신 건 내 의지가 아닌데 너무하다. 아주머니도 딸이 있는데 내일이라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 그 딸도 똑같은 잣대 들이댈 거냐?”라고 했고, 그 길로 결혼이 성사되지 않게 됩니다.

이후 한참을 연애 못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결혼 전 김수미가 너무 남편을 안 만나주니까, 시어머니 되실 분이 “우리 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와라.”라고 해서 예의상 갔더니 김수미의 손을 꼭 잡고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요.”라며 보듬어주셨다고 합니다. 결국은 시어머니의 인품에 마음을 열고 결혼까지 성사가 되었고, 그 이후로도 시어머니를 마음 깊이 존경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1998년에 b사 최고급 대형 세단을 구입했는데, 김수미의 전속 운전기사가 이 차에 탑승해서 단지 시동만 걸었을 뿐인데 차량이 급발진하는 바람에, 당시 김수미가 출연하고 있었던 연극의 공연 벽보를 붙이고 계셨던 시어머니가 차에 치여 숨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수미는 피해자 신분으로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인품을 보고 결혼을 결심할 정도로 존경하던 사람을 너무 어이없게 잃은 탓에 충격을 너무 심하게 받아서 2000년대 초에는 수년 동안 병에 걸려 연기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b사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강력하게 급발진 결함규명 및 보상을 요구했으나 결국 패소하고 맙니다.

“너 이렇게 죽으면 장례식에 아무도 안 온다”

이후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고 밤을 꼬박 새운 김수미는 가족들이 외출할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으나 이른 아침 남편이 김혜자의 전화를 받더니, 김수미에게 코트를 입히고 어디론가 끌고 갔는데, 남편이 데려간 곳은 시어머니의 산소였습니다. 남편은 1년여 동안 김수미의 병간호에 매달리느라 사업도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는데, 어머니 무덤에다 얼굴을 찧으며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엄마! 수미가 미쳤어요. 엄마! 우리 아들 명호랑 딸 주리 불쌍해서 어떡해요. 나도 당뇨 수치가 엉망이라 수미보다 먼저 갈 것 같아요. 우리 수미 불쌍해서 어떡해요. 엄마”라고 울부짖으며 남편은 김수미가 세상과 작별하려는 걸 알고 “너 이렇게 죽으면 장례식에 아무도 안 온다”라고 설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김수미는 아랍 왕실에서 기 치료를 한다는 분의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아끼던 시어머니를 자신의 차로 치어 하늘로 보내드리는 비극을 겪더니,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싶었을 만큼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녀의 가슴 아픈 인생사. 그런 그녀에게 다시는 또 다른 슬픔은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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