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와 2002년 이후 무려 25년간 이어져 온 질긴 악연이 홍명보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다시금 팬들 사이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일부 팬들은 2002 월드컵 당시 박항서가 홍명보에게 베푼 은혜가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배은망덕할 수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박항서가 불쌍하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홍명보가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과거에 주목받지 못했던 사실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해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고 밝히며, 박항서와 홍명보의 25년 질긴 악연은 업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해 많은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2002 월드컵, 히딩크 감독의 지옥훈련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박항서가 국내 축구계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해 동남아를 전전하며 야인 생활을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축구계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축협과의 불화 때문”이라고 말하며, “그 악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이해를 할 수 있고 그 중심에는 히딩크와 홍명보, 그리고 박항서 3명의 인물이 보여줬던 구도를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2002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맡아 대표팀 선수들을 조련하고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놀라운 말을 해 그 당시 한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한국 축구계는 축구 강국들에 비해 한국은 너무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히딩크가 와서 전술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엄청난 노하우를 전수해 줄 것이라 큰 기대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히딩크는 국가대표팀을 소집해 첫 번째 훈련을 한 뒤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기술은 80점 체력은 50점이다. 기술은 뛰어난데 체력이 형편없다”라는 폭탄 발언을 하면서 그야말로 한국 축구계는 난리가 납니다.
한국은 기술은 부족해도 체력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유럽과 남미의 선진 축구를 상대했는데, 한국 선수들이 기술이 좋다니 뭔가 착각을 해도 단단히 하는 것 같다고 맹비난을 퍼붓습니다. 하지만 히딩크는 유럽 전지훈련을 떠나 평가전을 가지면서도 선수들의 체력 훈련을 그만두지 않고, 그 유명한 셔틀런을 계속 진행해,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0-5로 대패하였습니다. 그 당시 많은 축구 매체는 기술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0-5로 패하다니 한심하다고 조롱하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히딩크는 지옥의 체력 훈련을 멈추지 않았고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 된 선수들은 대표팀에 선발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습니다.

히딩크호에 8개월간 승선 되지 못한 홍명보
그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그 당시 센터백을 맡아야 했던 홍명보입니다. 그가 부임한 이후로 8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해 일각에서는 ‘이제 홍명보도 끝’이라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도되었습니다. 홍명보는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나는 그 당시 피로 골절이라는 부상을 당해서 대표팀에 차출되지 않았던 것이다. 실력이 부족해서 차출이 안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난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다”라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피로 골절은 회복하는 데 2~3달이면 족하다. 8개월간 차출되지 않은 것은 피로 골절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많은 매체들은 홍명보가 히딩크호에 승선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전원 수비라는 토탈 사커를 수행하기에 스피드가 느리고 체력이 모자라 90분간 경기를 할 수 없는 선수라 히딩크가 뽑지 않는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매체들은 “홍명보는 4강전에서 독일을 만났을 때도 체력 저하에 따른 집중력 부족으로 결정적 찬스를 내주고, 3위와 4위 결정전에서도 튀르키예를 맞이해 경기 시작 1분 만에 중앙에서 공을 잡다가 실수해 상대에게 골을 내주며 끌려가게 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다”라고 말하며 “저런 것들이 다 체력이 부족해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처럼 언론에 보도되거나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은 아닌데, 히딩크와 박항서가 과거를 회상할 때의 인터뷰를 종합해 보면 홍명보의 권위 의식이 큰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몇몇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을 지휘하면서 패스와 찬스가 일부 선수들에게만 집중되는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어린 선수들이 나이 많은 고참들의 지시를 받아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을 목격합니다. 축구 경기에서는 포지션에 따른 역할 중 지시를 하고 지시를 받아야 하는 위치가 있는데, 그런 것을 모두 무시하고 나이 든 고참들이 어린 선수들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란다고 말했습니다.
히딩크는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몇몇 나이 든 선수들이 패스와 찬스를 독점했다. 나는 이것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생각해 선수들에게 경기장에서는 모두 반말을 하도록 했고, 식사도 고참들끼리 모여서 식사하는 것을 못하게 금지했다”라고 말했습니다. 2002 월드컵 선수 명단을 보면 홍명보와 황선홍은 33세로 가장 나이가 많은 고참이었기 때문에 선수단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황선홍은 성격이 온화한 편이라, 후배들 앞에서 권위를 내세우며 압박하거나 하지 않지만, 홍명보는 성격 자체가 권위적이고 위아래 규율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히딩크가 누구라고 딱 지목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축구계를 잘 아는 사람들은 히딩크가 홍명보를 지칭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히딩크에게 홍명보를 추천한 박항서
하지만 홍명보가 빠진 8개월간 대표팀은 오히려 수비가 탄탄해지며 조직력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수비수로 급성장한 선수는 송종국이며, 홍명보보다 휠씬 뛰어난 경기조율능력을 보여준 선수는 유상철이었습니다. 홍명보의 자리가 대표팀에 없어지고 히딩크는 8개월간 홍명보를 외면했지만, 박항서는 홍명보를 계속해서 추천했고, 히딩크는 홍명보를 대표팀에 선발하는 조건으로 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체력 훈련을 철저하게 해야 하는 것과 선후배 간의 기강을 필요 이상으로 잡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몇몇 전문가들은 전했습니다.
히딩크는 한 방송에 출연해 “박항서가 선수단 전체를 잘 관리했다. 고참들과의 소통도 원활했고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박항서가 나서서 그들을 꾸짖어 팀워크를 해치지 않도록 강하게 압박했다. 그가 없었다면 2002 월드컵에서 그렇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뒤통수 맞은 박항서
히딩크가 그만두고 박항서는 그 뒤의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2개월도 채 준비하지 못하고 부산아시안게임의 대표팀을 데리고 출전 4강에서 이란에게 지면서 축구협회로부터 바로 경질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박항서는 수비를 안정시키기 위해 와일드카드로 홍명보를 선택한 게 아니라, 이영표를 선택해 많은 축구 전문가들을 그 당시 놀라게 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박항서가 홍명보가 아니라 이영표를 선택했던 이유는 축협은 자신들이 원하는 선수를 대표팀에 발탁하도록 압력을 가했는데요.
그게 들리는 말에 의하면 홍명보”라고 말하며 “축협의 말을 듣지 않고 박항서가 이영표를 선택하자, 축협은 아시안게임까지 무보수로 일하도록 종용하면서 정식 계약을 체결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이 추천한 선수들이 아닌 다른 선수들로 성적을 낸다면 그다음에 생각해 보자는 황당한 계약을 제안해 박항서가 그 계약 사항을 경질 직전에 폭로해 버리면서 축협과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어 “클린즈만이 경질된 이후 박항서는 한국 축구를 위해 임시 감독을 맡을 의향이 있다고 축협의 지인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지만, 축협은 코웃음 치며 비주류이자 고려대가 아닌 박항서를 아예 후보 리스트 자체에 올려놓지 않는다. 홍명보는 2014년 월드컵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술판에 관광에 땅 투기까지 했어도, 다시 기회를 주는데 이것을 본 박항서는 히딩크에게 홍명보를 발탁할 것을 간곡히 전달하면서도 결국 홍명보에게 뒤통수를 맞는 격이 되었다”라고 말하며 박항서 입장에서는 방패가 되어 홍명보를 그렇게 감싸 안았는데 그 결과가 국내에서는 감독을 맡지 못하고 동남아를 전전하는 야인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에 절대 홍명보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많은 팬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