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채 발견이 되었던 김수미가 사망 당시 왜 홀로 세상을 떠난 것인지, 남편이 같이 사는데도 어떻게 아내가 죽어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많은 이들의 의문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김수미는 사망 당일 아침 아들 정명호 씨에 의해 이미 숨져있는 상태로 발견이 되었는데 남편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도 어떻게 남편이 발견하지 못하고 같이 살지도 않는 아들이 발견한 것인지, 그렇다면 남편은 몰랐던 것인지 많은 이들이 갸우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수미의 사망을 남편이 아닌 아들이 발견하게 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수미 남편의 외도
생전에 김수미는 한 인터뷰에서 “신혼 초 임신 8개월 때 남편이 외도했다”라며 말하길, “오래전에 이혼하려고 법원에 간 적이 있어요. 첫 아이가 4살 때였고 둘째 임신한 상태였는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알게 됐고 출산을 한 이후에 이혼하려고 작정했죠. 아들이 첫사랑의 여자와 바람난 사실을 알게 된 시어머니는 혈압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라며 “유복자라고 오냐오냐 키운 내가 잘못이다”라면서 “살고 계시던 아파트와 신사동 사거리에 있는 3층짜리 작은 건물의 명의를 내 앞으로 옮겨 놓으셨어요. 그러면서 ‘너는 내 아들과 살기에는 과분하다. 좋은 남자 만나서 보란 듯이 잘살아’라고 하셨죠.”라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그런 시어머니의 말에 일단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좀 더 지켜보기로 한 김수미는 둘째를 낳은 후부터 방송일이 쏟아져 들어와 차일피일 이혼을 미뤘고, 남편 때문에 부부싸움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그녀의 속을 썩어 문드러지게 했던 남편의 여자가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이혼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김수미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사업까지 망해 빚더미를 떠안으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그런 그녀에게 ‘내 아들이 너무 못났으니 어서 이혼하고 자기 재산도 다 가져가라’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오히려 이혼 생각을 접었을 정도로 따뜻했던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 한 번의 시련
하지만 그랬던 시어머니가 김수미의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운명을 달리하게 되자 김수미는 당시 충격으로 더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게 되었고, 당시 상황에 대해 “제 운전기사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동안 시어머니가 차에서 내리셨죠. 기사가 차를 빼려고 할 때 시어머니가 뒤쪽 담벼락 끝에 서서 ‘오라이~ 오라이~’하시며 뒤를 봐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굉음을 내면서 튕겨 나가 급발진으로 담벼락 앞에 서 있는 시어머니를 덮친 겁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한 바가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시어머니를 잃은 그녀는 당시 충격으로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가서 죽어버리고만 싶었고, 드라마 섭외가 들어왔지만 출연 중이었던 ‘전원일기’의 ‘일용 엄니’ 역할조차 빼달라고 할 형편이었으며 세수하는 것도 물 마시러 주방에 가는 것조차도 귀찮을 정도였습니다.
김수미는 “하루 종일 걸려 오는 전화도 받지 않고 침대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누워만 있었고, 얼마나 오랫동안 샤워를 안 했는지 머리를 긁으면 손톱 밑에 까만 때가 낄 정도였는데, 그러다 이듬해 그녀의 몸 상태가 더 심각해지며 전에는 혼자 먹는 점심도 한정식집에서 먹는 것처럼 있는 대로 다 차려놓고 먹었는데, 먹는 것도 귀찮아서 1년 4개월 동안 아침은 굶고 점심, 저녁에 만두 5개씩 먹고 살았죠. 증상이 심해지자 샤워는커녕 한 달째 속옷도 안 갈아입고 살았고 이런 저를 가족들이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사나흘 동안 모든 검사를 해도 갑상선 외에는 다 건강하다는 진단이 나왔고 정신과에서도 갱년기 우울증일 뿐, 그리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해서 1주일 만에 퇴원했어요”라고 말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김수미의 증상은 점점 악화되어 갔는데 정신은 멀쩡한 상태였지만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아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타인에 의해 대소변을 받아내는 날이 허다했고,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으며 잠에서 깨면 심장이 뛰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손바닥으로 가슴을 쳐댔던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던 까닭 그럴 때마다 빈속에 소주를 커피잔에 가득 달아 마시고 나서야 심장이 가라앉게 되는데 그러던 것이 한 잔이 두 잔으로 늘어나고, 두 잔이 한 병으로 한 병이 두 병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김수미는 매일 소주 2병으로 살았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집에 있는 양주며 와인까지 다 갖다 버리고 남편은 기자들의 눈을 피해 저를 한 대학병원에 다시 입원시켰어요.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앞에 경호원을 배치시킨 후, MBC 제작부장을 만나서 아내를 ‘전원일기’에서 빼달라고 부탁했대요. 하지만 완전히 뺄 수는 없다는 제작진의 말에 야외 촬영에서 제외하고 대사를 줄이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나 봐요”라고 말했었는데. 당시 ‘전원일기’를 눈여겨본 시청자들은 2년 전부터 일용 엄니가 예전에 생기발랄한 수다쟁이 노인네의 모습이 아니었음을 눈치채고 있었고, 방송가에서는 그런 김수미를 두고 ‘알코올중독이다’, ‘중풍이다’, ‘미쳤다’라는 소문들이 끊이지 않고 떠돌아다녔으며 ‘전원일기에는 일용 엄니가 이상해요’, ‘어디 아픈가요?’라는 질문이 심심찮게 올라오게 됩니다.

생명의 은인, 김혜자
그 해가 지나갈 무렵 김수미는 문득 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는 데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그녀는 눈을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김혜자 언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고 김혜자에게 “언니! 만약에 내가 언니보다 먼저 죽으면 내 무덤가에 나팔꽃씨 뿌려줄 거야?”라고 물었더니, “그래, 꽃씨 한 가마니 사서 뿌려 줄게”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언니에게 죽을 것이라고 했더니, ‘너 맨날 그 말했어. 말로만 그러지 말고 실천에 옮겨 봐’라며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김수미가 죽기로 결심한 사실을 김혜자가 결국 눈치챈 바람에 울먹이며 그 새벽에 김수미의 집으로 달려온다기에 김수미는 그만두라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고 밤을 꼬박 새운 뒤 가족들이 외출할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날이 밝았고 이른 아침에 남편이 한 통의 전화를 받더니, 김수미에게 코트를 입히고 어디론가 끌고 가 죽을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이 든 바람에, 김수미는 차를 타고 가면서 악을 써댔고 그렇게 남편이 데려간 곳은 기 치료를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녀는 말하길 “기 치료를 한다는 분에게서 두 번째 기를 받는 순간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어요. 기를 받는 중이라 어지간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죠. 변기에 앉으니 튀밥을 튀길 때처럼 펑 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변기에는 새까만 그을음 같은 게 묻어 있었고, 마른 나뭇잎같이 자잘한 것들이 둥둥 떠 있었어요. 열 번 정도 기를 받은 후 집에 돌아왔고 그 후 사흘 동안 기 치료사가 제가 있는 곳으로 기를 보낸다는 시각에 맞춰 좌선을 한 채 10분 동안 기를 더 받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기 치료를 마친 다음 날 아침, 2년 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던 이유
김수미는 이후 눈에 모래가 낀 듯이 아프기 시작했고, 병원에서는 눈물샘도 마르지 않았고 시력도 정상이라는 검진 결과가 나왔지만 고통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게 됐다며 “어느 날 아들 방에 들어갔는데 방에 있던 사진 속의 시어머니가 나를 노려보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노려보는지 귀신처럼 느껴지면서 무서워서 액자를 창밖으로 던져버렸어요. 또 제가 미쳤다고 할까 봐 아무에게도 이런 얘기를 못 했죠. 사진 속의 시어머님이 늘 저를 노려보고 있는 얼음장 같은 한기가 빠져나오더니, 제 얼굴에 닿는 것 같았어요. 결국 이런 현상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고민하다가 스님이 쓴 빙의라는 책을 읽고 혹시 빙의가 아닐까 싶어 스님을 찾아갔어요”라며 “스님은 대뜸 눈에 빙의가 아직 안 빠졌네요”라고 말했는데, 시어머님이 왜 나를 노려보느냐고 묻자, 스님은 ‘억울하게 죽은 혼령이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떠돌다가 가장 애착이 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붙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친정 부모님, 우리 형제 셋, 시댁 식구들, 2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시누이, 아들 이름까지 다 적은 뒤, 한이 많은 영혼을 불러낸 뒤 달래서 보내는 퇴마 의식을 치렀어요.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날 이후로 무섭게 노려보던 사진상 속의 시어머니는 다시 웃고 있었어요.”라며 “기독교 신자인 자신이 왜 목사님을 통하지 않고 스님을 통해 빙의를 치료했는지 나도 몹시 궁금하고 불가사의하다”라고 털어놓았는데 “빙의는 심한 우울증과는 확연히 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다”라고 말했고, 당시 한 후배 배우가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법정 공방을 벌이는 걸 보며 말하길,
“저도 한때는 남편과 이혼하려고 했었지만 이후 남편이 저를 살렸기 때문에 후배들이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어 찾아오면 일단 이혼을 서두르지 말라고 충고해요. 옛말에 부부는 전생에 원수였던 사람들끼리 만나 한과 오해를 풀며 살아가는 거래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내려 평생 후회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어쨌든 저도 악몽의 세월을 보내고 나니 다행히 남편이 돌아왔어요. 당시에 이혼했더라면 금세 재혼했을 것이고, 자식 있는 여자가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는 힘들었겠죠”라고 말했습니다.

김수미 남편이 사망 사실을 몰랐던 이유
그렇게 비정상적인 삶을 훌훌 떨쳐 버렸건만 김수미는 시간이 흘러 오늘날 건강 악화로 끝내 숨진 채 발견이 되었고, 남편이 아닌 아들에게 발견이 돼 많은 이들의 의문을 자아냈는데, 하지만 남편이 김수미의 별세를 먼저 발견하지 못한 건,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먼저 가장 큰 이유는 김수미가 남편과 한방에서 지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과거 MBN ‘최고의 한방’에 출연해 남편과 각방을 쓰고 있고 그것이 몇십 년이나 되었다며 “과거로 돌아간다면 한 침대에서 남편 팔베개하고 꼭 껴안고 자고 싶다”라는 소망을 드러낸 적이 있었는데, 물론 각방을 쓰더라도 한집에 같이 살면서 어떻게 사람 죽는 것도 몰랐냐고 묻는다면 그건 김수미가 작은 집에 사는 게 아니라, 100평에 달하는 큰집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김수미는 서울에서 부촌으로 유명한 방배동 서래마을의 고급 빌라에 살고 있었고, 방 4개에 화장실이 2개가 있는 해당 자택을 방송에서 몇 번 공개하기도 했었으며, 더구나 과거 KBS ‘수미 산장’에서 김수미는 산장에 가장 초대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편을 꼽으며 “서로의 방이 멀어 아침밥을 먹을 때만 만나는 우리 남편을 초대하고 싶다”라며 “방이 멀다”라고 말한 바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김수미는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서 “남편이 40세에 당뇨 판정을 받았고 50세에는 심근경색으로 두 차례나 수술했다”라고 밝혔고 작년에 tvN ‘회장님네 사람들’에서 “남편이 심한 가슴 통증이 왔지만 딸 결혼식을 위해 일주일간 진통제만 먹고 병원에 가지 않고 참았다”라며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119를 불러달라며 응급실로 향해 심근경색 수술을 또 받았다”라고 밝혔고 기적적으로 버티며 중환자실에서 보름간 입원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김수미는 “딸의 신혼여행을 망칠까 봐, 딸에게도 남편의 병원을 알리지 못했고,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딸이 오열했다”라면서 “현재 남편은 폐렴으로 입원 중”이라고 밝혔었는데, 김수미의 발인 날에도 남편 정창규 씨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 고령이 연세의 기력이 쇠하고 거동이 불편해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걷고 있었기에, 자택에서 아내의 방이 들락거리며 아내를 돌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아내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할 처지였다는 걸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가장 결정적으로 김수미는 자면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별세했기에 이상의 이유들 때문에 남편은 아내가 갑자기 별세했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었고, 그러다 한남동에 사는 김수미의 아들이 부모님 댁에 자주 들러 부모님을 돌보고 있던 도중 아침 8시경 부모님의 집에 도착했다가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알고 나니 김수미가 어쩌다 아들에게 발견이 된 것인지 이제야 의문이 풀립니다. 그토록 죄송하고 그리웠던 시어머니를 뵈러 먼 길을 떠나버린 김수미 모쪼록 소중한 사람을 잃은 김수미의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김수미가 하늘에서는 부디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