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수희 친딸 이순정의 안타까운 사연” 어떤 사연인지 확인해 보세요.

삶에서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많은 사람에게 가족은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자, 동시에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딸과 엄마의 관계는 더욱 특별하기도 합니다. 같은 성별인데다 감정적으로 밀착되어 있기 때문인지 유난히 더 복잡하고 또 예민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종 딸들은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엄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엄마들의 경우, 어떤 선택을 강요하며 “이게 다 널 위해서야”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딪히다가 결국에는 부모는 부모 대로 자식을 외면하고, 자식은 자식 대로 애정 결핍과 자존감 부족으로 무너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간혹 목격하곤 합니다. 오늘은 이처럼 위험천만한 모녀 관계를 아슬아슬하게 유지 중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바로 여자 조용필이란 별명을 가진 가수 김수희 씨입니다.

김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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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전성기

1993년 9월 8일, 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뒤흔든 최고의 이변이 KBS 가요톱10 무대 위에서 벌어집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가수 김수희 씨입니다. 그녀는 당시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제치고 가요톱10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김수희 씨 본인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수상인지라, 당시 화면을 보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몹시 당황해하는 그녀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김수희 씨는 외모로 가요톱10 5주 연속 1위를 달성하여 골든컵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됩니다.

알고 보면 김수희 씨는 애모 외에도 전 국민의 애창곡 남행열차멍에, 너무합니다 등의 메가히트 곡을 여러 개 보유한 명실상부 트로트계의 여제입니다. 그녀의 별명이 괜히 여자 조용필인 게 아니라는 뜻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프로필과는 달리 김수희 씨는 말로는 다 주워 담지 못할 정도로 힘겨운 시기를 여러 번 겪고 또 넘겨야 했습니다.

힘든 과거

김수희 씨는 1953년생으로 올해 나이가 벌써 69세 일흔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녀 역시 한국전쟁 이후 배고팠던 어려웠던 시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수희 씨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부산에서 포목점을 하며 나를 키우셨다. 여섯 살 무렵부터 엄마 가게에서 무정천리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며 사람들에게서 박수갈채를 받았다.”라고 어린 시절을 회고합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노래의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녀였으나 놀랍게도 김수희 씨의 원래 꿈은 작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족이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되자, 18살에 미8군에서 노래를 시작하게 됐고 결국 그녀 역시 자연스레 가수라는 직업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길거리를 전전하며 무명으로 노래하다가 실질적인 데뷔를 하게 된 건 1976년 너무합니다를 통해서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김수희 씨는 첫 남편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여 딸 순정 씨를 낳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합니다가 당시엔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몇 년이 흐른 후에야 요즘 말로 치면 역주행을 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뒤늦게 그녀의 가능성을 알아본 음반 제작자들은 김수희 씨를 미혼으로 속여 대중 앞에 내놓았고 결국 이 일은 훗날 인기 절정의 여가수가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라는 내용의 빅 스캔들로 김수희 씨를 괴롭히게 됩니다. 그녀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무죄로 판명 난 대마초 스캔들`을 비롯해 걸리지도 않았던 유방암을 치료받기 위해 필리핀의 심령 시술자를 찾아갔고, 결국 완치됐다고 하더라고 카더라식의 내용의 기사가 언론에 도배되는 등 그녀의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언론은 김수희 씨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아픔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남편 이모 씨와의 이혼이었습니다.

그녀의 재혼

온갖 루머에 이혼까지 견디다 못한 김수희 씨는 85년 도망치듯 일본 진출을 감행합니다. 기쁜 일이 계속되지는 않듯, 아픔 역시 지속되지는 않는가 봅니다.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떠났던 일본에서 2년간 활동하다 돌아온 김수희 씨는 방송 출연을 위해 제주를 찾게 됩니다. 그곳에서 현 남편 김태식 씨를 만나게 되고 결혼에 골인하여 곧바로 아들까지 낳게 됩니다. 제주 MBC PD 출신인 김 씨는 김수희 씨에게 몹시 헌신적인 남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모 활동 당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김수희 씨를 남편인 김 씨가 무려 8개월간 대소변까지 받아 내가며 간병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 역시 그녀의 바람대로 착하게 자라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딸 순정 씨의 경우는 김수희 씨의 말에 따르면 좀 달랐습니다. 김수희 씨 첫 번째 남편은 배경이나 출신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간에는 조폭 출신이다., 건달이다 등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딸

김수희 씨 본인의 말에 따르면 전 남편은 1년에 한두 번 집에 들어올까, 말까 하는 바람 같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녀에게 크나큰 상처를 준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큰딸 순정 씨의 나이는 현재 42살이며 그녀는 엄마의 길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현재 트로트 가수로 활동 중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직 이렇다 할 히트곡은 없는 상황입니다. 엄마인 김수희 씨가 트로트계의 여제인데다 작곡, 작사 모든 분야에 재능이 있는 만큼 어떻게든 딸의 활동을 도울 법도 한데요

딸 순정 씨의 말에 따르면 엄마인 김수희 씨는 도와준 게 하나 없다 못해, 그녀의 가수 활동을 뜯어말렸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김수희 씨의 딸 순정 씨에 따르면 그녀는 엄마가 친아버지와 이혼한 후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엄마의 정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단적인 예로 엄마에게서 용돈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유학을 하러 간 것도 엄마가 재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데 방해가 될까 봐 걱정해서였다.라고 합니다. 실제로 두 사람이 출연했던 프로그램을 보면 김수희 씨의 핸드폰에는 딸인 순정 씨의 사진은 한 장도 들어있지 않고 대신 아들의 사진만이 가득했습니다. 순정 씨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얼굴 한가득 서운함을 드러냈습니다.

순정씨의 안타까운 상황

어린 시절 떨어져 살며 엄마가 어색했을 정도였다는 순정 씨는 가족의 정을 느끼고 싶었고 스무 살에 만난 인연과 사랑에 빠져 곧바로 임신, 스물한 살에 결혼식을 올리고 세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녀는 “가족한테 받는 사랑을 모르니까,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당시 자신의 선택을 회상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가정은 당연히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순정 씨는 이혼을 선택하게 됩니다. 현재 그녀의 세 아이는 남편 쪽에서 맡아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엄마인 김수희 씨는 이런 딸이 성에 차지 않는 모양입니다. 딸과 함께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이런 말로 딸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배웠던 나는 그런 딸을 보면서 한심해서 가슴을 쳤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얼마든지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노래도 할 수 있는 건데, 딸인 순정 이가 미국에서 유학을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라며 “당시엔 정말 찾아가 두들겨 패고 싶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김수희 씨를 생각해 보면 작곡, 작사 심지어 영화 제작에까지 손을 댔을 정도로 워낙 재주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그 제주를 마음껏 펼쳐보지 못했기에 한스러운 마음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딸은 자신과 달리 마음껏 날개를 펴고 넓은 세상에 훨훨 날아가길 바랐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늦은 만큼 예쁜 딸을 좀 더 많이 끌어안아 주고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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