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가 최근 방송에 못 나오는 충격적인 이유

배우 주현은 1990년 평균 시청률 30%를 넘긴 국민 드라마 서울 뚝배기에서 코믹하고 인간미 넘치는 설렁탕집 직원 안동팔 역을 열연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유행어로 자리 잡은 “~했걸랑요”라는 대사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후 그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였고 당대 최고의 스타인 채시라, 최수종, 유동근 못지않은 출연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친근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57년간 한 번도 쉬지 않고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그가 갑자기 한 방송에 나와 고백하길 “처음으로 출연작이 없어 2년째 쉬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에게 무슨일이 생겼는지 배우 주현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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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을 불 속에서 구한 은인이지만 아버지 장례식에도 못 간 기구한 사연” 안타까운 그의 인상사를 들어 보세요.

그의 어린 시절

1941년 함경남도 해산군에서 태어난 주현은 당시 아버지가 공산당에게 잡혀 1년 가까이 옥살이를 치른 후, 1948년에 가족을 이끌고 월남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 한의사이었기 때문에 그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습니다. 또한 영화 보는 걸 좋아해 극장에 자주 갔었던 그는 영화를 보고 온 날이면 친구들을 불러 모아 실감나게 들러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연예계를 동경했었는지 그가 서부 영화를 본 날에는 자신도 쌍권총을 둘러보고 거울을 보면서 모자도 비스듬히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신파극의 대사도 모두 외워, 교내 장기 자랑에도 나가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천도교 교령 대우까지 받는 등 종교 활동을 시작한 후부터 가족들을 위해 돈을 쓰지 않고, 돈만 생겼다 하면 전부 천도교를 위해 쓰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의 아버지가 가족들 생각은 안 하고 하루가 멀다고 종교 활동에만 심취했고 그때부터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홀로 생계를 꾸려야만 했습니다.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아버지가 종교 활동에 빠진 이후로는 밥 먹을 형편이 안 돼, 항상 수제비만 먹어야 했다. 그렇게 어머니가 늘 수제비만 끓이는 거 보고 주현은 뒷간에 가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그러나 그건 슬퍼서가 아니라 밥을 너무 먹고 싶어서였고, 그때 밥을 좀 더 잘 먹었으면 자신의 키가 190cm 됐을 거다.라고 했습니다.

성인이 된 주현, 배우의 길을 걷다.

아무튼 큰 고생 없이 자라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배를 곯아야 했던 그는 어려운 196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뒤 학군사관으로 임관하여 장교로 제대하는 등 당시로서는 상당한 엘리트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제대 후에는 공무원 시험을 두 번이나 치렀지만 모두 떨어졌으며 이후 장사가 맞는 것 같아서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연줄과 자본이 필요해서 결국 장사마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군 제대 후에는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해 걱정이던 그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1969년 KBS가 제작하는 월남 다큐멘터리 드라마 8부작에 그가 갑작스레 출연하게 되면서 그의 배우 인생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당시 장교 출신이었던 그는 배우들에게 시범을 보여주는 군인 자문 역할을 맡았으나, 시범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끼가 보였는지 뜬금없이 연기력을 인정받아 아주 작은 배역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가 맡은 배역은 스턴트맨이었습니다. 또한 기회는 또 한 번 찾아오게 되는데, 당시 드라마에서 중대장 역할을 맡은 배우가 갑자기 촬영장에 제때 나타나지 않았고, 중대장 역할이 필요했던 제작진들은 결국 평생 연기를 해본 적 없는 주현에게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연기가 처음이었지만 장교 출신답게 중대장 역할을 현역 시절의 경험을 살려 훌륭하게 해내게 됩니다. 또 이번에는 무전병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자, 무전병 역할도 무난하게 소화하면서 군대와 관련된 역할을 나름 실감 나게 연기했습니다. 이후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그는 총 쏘고, 뛰는 연기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드라마 시사회장에 온 KBS 국장의 눈에 띄었고, 연수 중이었던 KBS 9기 탤런트들과 함께 특채 탤런트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연기활동

한편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연애를 시작해 군 제대하자마자 결혼하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당시 텔레비전이란 게 집마다 있지도 않던 시절에 갑자기 남편이 소위 말하는 딴따라라고 불리는 방송 일을 한다고 하자, 같이 못 살겠다며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가 우연한 기회로 탤런트 데뷔를 한 후, 단 2개월간 엑스트라 역할을 거쳐 1970년 사랑의 훈장이라는 드라마에서 굉장히 빠르게 드라마 첫 주연을 맡게 되었습니다.

상대 역으로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고은아였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맡았던 군사 역할은 그가 군인 출신이라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었지만, 연기에 관한 기초가 없었던 터라 갑자기 사랑스러운 멜로 역할을 하려니 연기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배우가 잘못하면 PD들이 대단히 야단을 치는데 주현은 연기가 안 되어 더욱 주눅이 들게 되고 완전히 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여주인공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는 장면에서 감독이 그에게 “야! 넌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라고 했더니 잡아먹으려고 그러냐!”며 야단을 쳤고 그가 너무 표현이 안 되니까 제작진들끼리 고민하다가 결국 남자 주인공인 주현을 방송 10회 만에 없애버리고 말았습니다. 한편 멜로 연기가 너무 힘들었던 그는 자신이 10회 만에 해고되자, “오히려 잘 됐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가 드라마에서 없어지자, 인상도 구수한 연기자를 왜 중도 하차시켰냐?는 시청자의 항의가 쇄도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시청자의 항의로 상대 역인 고은아의 회상 장면에서 종종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두 번째 드라마에서도 한혜숙의 상대역으로 다시 한번 주인공을 꿰찼지만, 또 연기를 못해 결국 다시 도중하차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연기력 때문에 드라마에서 두 번이나 사라진 그는 “주인공은 해봤으니 더는 배우에 대한 미련이 없다.”라며 이제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외교관 시험이나 보려는 찰나, 또 한 번 그에게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1972년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실화극장을 집필해 오지명, 최불암, 송재호 등 당시 최고의 스타를 배출한 김동현 작가가 그를 찾았고, 그때 주현에게 “뭘 잘 해낼 수 있냐?”라고 묻자 주현은 유도와 복싱 등 운동을 잘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운동을 했다고 하니까, 김동현 작가는 주현을 위해서 운동하는 장면을 멋있게 써주었고 이후에 “또 다른 뭐를 잘한다.”라고 하면 그런 장면을 써주는 등 그를 밀어주게 되었습니다.

이후 드라마까지 뜨면서 주현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연기력까지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서서히 배우로 단련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0년 드라마 서울 뚝배기에서 안동팔 역으로 유행어까지 만들며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감초 연기의 대가로 불리며 전성기를 맞이하던 80~90년대에는 당시 연예인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출연료를 받게 됩니다.

안타까운 배우의 현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젊은 연기자들 위주의 연기로 모든 것이 맞춰지게 변화하게 됩니다. 주현 세대의 배우들은 설 자리가 대폭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연기 인생 57년 만에 처음으로 작품이 없어 2년간 쉬고 있다.”라고 고백했으며 “언제든 기회만 주어진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실력과 경험을 갖춘 준비된 원로 배우들이 많다.”라고 했습니다.

“단지 세월의 흐름과 나이의 평균 속에 좋은 배우들이 더 이상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고백하길 “지금 방송국의 모든 프로그램이 너나 할 것 없이 젊은 사람들 위주로만 가는 게 문제다. 이건 내가 나이 든 축에 속한다고 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고 사우디에 가서 땀 흘리고, 월남 가고 자식들 키운 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다.

있어 봐야 전국 노래자랑이나 가요무대밖에 없다. 20대와 30대가 상품 구매력이 높다는 이유로 이제 방송의 주인은 그들이 되었으며 결국 방송사는 시청률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인생에 있어서 연애가 전부가 아니듯, 드라마도 이제는 연애만 할 게 아니라, 일상에서 친구의 배신이 얼마나 아픈 거고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등등 진짜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드라마가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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