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병으로 수술 후 방송에서 돌연 자취 감춘 근황” 걱정이 쏟아지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세요.

80대를 넘어선 나이에도 여전히 오빠 소리를 듣는 국민 가수 현철은 40년째 흔들림 없이 국민적 인기를 유지하며 트로트 황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입니다. 보통 대중가수의 인기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 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현철의 경우는 워낙에 히트곡이 많다 보니 초등학생들까지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를 정도입니다.

또한 그의 토종 된장 같은 구수한 목소리와 독특한 꺾기 창법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국민 가수로서 현철은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며 오랫동안 정정하게 활동하고 있는 편이었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2000년대 중반부터 그의 건강에는 조금씩 이상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특히 60대 중반이었던 2007에는 방송에서의 공연 녹화를 앞두고 3미터 높이의 무대에서 추락 사고가 나서 골절된 뼈가 폐를 건드려 사경을 헤매기까지 했고, 최근에는 병명도 밝히지 못한 채 혼자 걷는 것조차 어려워 2018년 ‘가요 무대’를 끝으로 더 이상 볼 수 없는 현철의 가슴 아픈 사연과 최근 근황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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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린 시절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난 현철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씨앗을 파는 종묘 장사를 했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울고 넘는 박달재를 무척 잘 불렀는데 그 소질을 이어받은 현철이 학창 시절 노래대회에도 많이 나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가 독특하니 한 우물을 파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일찌감치 가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시장에서 장사하던 아버지가 그 당시만 하더라도 천시받던 딴따라 가수를 반대하며 아들 현철에게 은행원이 되라고 하였고 노래하는 그를 혼내기가 일쑤였습니다. 결국 현철은 아버지의 고집에 못 이겨 잠시 노래에 꿈을 접고 20살이 되어서는 동아대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끼를 버리지 못했던 현철은 다니던 대학교까지 중퇴하고 1969년 무정한 그대로 가요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쉽지 않은 가수의 길 그리고 결혼

하지만 데뷔는 데뷔일 뿐, 당장 스타가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그가 데뷔할 당시에는 남진과 나훈아가 한창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에, 신인 남자가수가 그 틈에서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현철의 서러운 무명 시절은 자그마치 20년간이나 이어지게 되는데, 이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워낙에 형편이 어려워서 당시 두 사람은 결혼식은커녕 물 한 그릇 떠 놓고 식을 올려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현철의 아내가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 후 신혼 방으로 친구 집에서 셋방살이로 시작해야 했고, 이후 13번이나 이사를 했으며 쌀 한 가마니 살 돈이 없어서 봉지 쌀을 사다 먹었습니다. 또 겨울에는 연탄 낱장으로 사다가 추위를 달래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현철이 가수로서는 수입이 없다 보니 생계를 위해 두 사람 모두 별의별 일을 다 하게 됩니다.

당시 현철은 낮에는 건축 현장에서 벽돌을 짊어지고, 밤에는 야간 업소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그의 아내는 옷과 카세트 장사를 하며 집안의 살림까지 도맡아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사는 게 힘들어서 두 사람은 포기하거나 헤어질 수도 있었지만,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 어렵던 시절 서로가 다투거나 목소리를 높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또한 아내는 그런 고비 때마다 꼭 참고 버텨주었으며 본인 역시 비록 돈을 잘 벌진 못했지만 늘 따뜻한 말로 아내를 토닥여주었다.”라고 했습니다. 무명 생활이 끝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이렇게 버티며 끊임없이 셋방살이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현철은 노래를 놓지는 않았습니다.

고생 끝에 인기가수가 되다

그러다 1974년에는 본명 강상수를 대신해 부르기 쉬운 현철이란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솔로 가수로는 이미 실패해 봤기에 이번에는 일곱 명이 함께 모여 현철과 벌떼들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당시 이들은 외국의 팝송을 주로 카피하며 번안곡들을 묶은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시간이 지나갈수록 멤버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갔습니다.

이후에는 트로트 곡을 전문적으로 작곡하며 명성을 떨친 박성훈현철만 남았지만, 끝에는 박성훈마저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때 현철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가요계를 떠나려고 마음을 먹고 정리하게 되는데 미련이 남았는지 고심 끝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그동안 자신 때문에 고생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그 유명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만들게 됩니다. 마침내 이 노래가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가 방송에는 자주 출연하지 못한 탓에, 당시 노래는 인기가 많았지만 정작 노래를 부른 가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얼굴 없는 가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7년 아프리카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 있는 한국 근로자들을 위해 조용필, 주현미, 김연자 등 당시 내로라하는 최고의 가수들이 공연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파견된 근로자들이 고국의 부인이 보고 싶다며 얼굴은 잘 모르지만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부른 가수를 공연단에 꼭 포함해달라고 사전에 요청하면서 얼떨결에 현철도 합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얼굴이 잘 안 알려진 그를 보고 사람들이 현철을 리비아로 떠난 근로자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근로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고국의 그리움으로 눈물을 적시던 근로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타 대중들에게까지 전해지자, 마침내 20년간의 무명 생활을 정리하고 꿈에 그리던 인기 가수 대열에 안착하게 됩니다.

이후부터 현철은 대한민국 가요사에 한 축을 그어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특히 1988년에 발표한 ‘봉선화 연정’은 당시 김흥국의 ‘호랑나비’와 더불어 가요계의 순위란 순위를 모두 휩쓸면서 마침내 가요 대상에서 최고 가수상인 대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에는 ‘현철과 벌떼들’에서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박성훈이 만든 ‘싫다 싫어’로 또 한 번 대상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이자 국민 가수로 우뚝 서게 됩니다. 이후 그는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게 되면서 침체기로 접어들던 트로트를 다시 활성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말 그대로 탄탄대로 현철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특히 1990년대에는 무려 6년간 연속으로 10대 가수상을 받으며 인기를 독식합니다. 한때 그가 한국 여론 설문조사에서 나훈아, 남진, 조용필을 제치고 가장 인기 있는 가수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독한 가난과 끝없는 무명 시절을 이겨내며 가수로서는 누구보다 크게 성공한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2000년대 중반부터는 아무래도 나이 때문인지 전성기만큼은 노래에 힘을 싣지 못하게 되는데 설상가상 2007년에는 방송에서의 공연 녹화를 앞두고 공연 리허설 중 3m 높이의 무대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나 갈비뼈 3개의 골절상을 입었으며 한때 사경을 헤매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돼서 같은 해 9월, 주치의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복부와 가슴 위까지 붕대를 감고 무대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나이에 비해 정정하게 활동하는 듯하다가 2019년부터는 안타깝게도 좀처럼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됩니다.

특히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2018년 가요 무대에서 봉선화 연정을 불렀었는데, 왠지 모르게 어딘가 많이 힘들어 보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시청자들은 그에 대해 많은 걱정과 우려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요 무대를 관람한 방청객의 목격담에 의하면 “당시 현철이 혼자 걷는 것조차 어려워 PD들에게 부축해서 겨우 걸어갈 수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편지로 전한 그의 근황

얼마 전 KBS 연중 라이브에서 현철의 최근 상황이 알려지며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방송국 제작진이 현철의 아내가 보낸 편지 내용을 공개한 것인데 거기에는 눈물겨운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내의 편지에는 현철이 병으로 큰 수술과 함께 2년간 재활 치료를 이어왔다.라고 하는데 어떤 수술인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심각한 고비를 넘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고 아내는 많은 분이 격려와 위로를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남편은 여러분들과 만나기 위해 꾸준히 재활에 정진하고 있다.라고 했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남편에게 제일 큰 힘은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언급하면서 남편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절대 잊지 않고 조금이라도 보답하며 살겠다.라고 해 현철의 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수많은 트로트 팬들 사이에서는 현철의 건강을 걱정하는 글들이 올라오면서, 국민가수의 추억의 명곡들을 다시 들을 수 있도록 완쾌를 기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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