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애리의 얼굴이 갑자기 확 바뀐 안타까운 이유” 어떤 이유인지 확인해 보세요.

나이가 들어 주름도 생기고 흰머리도 나는 건 자연스러운 섭리겠죠. 웃을 때 만들어지는 눈가의 주름은 오히려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아무래도 대중 앞에 서는 스타들은 조금이라도 젊고 생생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싶은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얼굴에 시술도 하고 주사도 맞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스타들의 시술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뻐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많죠. 특히 연기파 배우 정애리 씨는 최근 적응이 안 될 정도로 바뀐 얼굴로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요.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그 내막을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정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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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데뷔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연기를 펼쳐온 배우 정애리 그녀는 1960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미모가 돋보였던 그녀는 사실 배우가 되겠다는 마음이 없었지만,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78년 막내 오빠가 KBS 신인 탤런트 모집 공고를 보더니 그냥 한 번 지원해보라고 권유하였고 아무 생각 없이 도전했다고 합니다.

그랬는데 결과는 당당히 1등이었고 이를 계기로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연기자가 되었으니 처음엔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후 정애리 씨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고 드라마 전설의 고향 토지 등을 통해 점점 그 연기력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1년에는 MBC로 스카웃이 되었고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르며 각종 광고를 휩쓸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던 중 정애리 씨는 어느 날 운명의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1984년 김수현 작가의 작품 “사랑과 진실”에 캐스팅이 되었는데요. 당시 사랑과 진실이 방영되는 시간엔 거리가 한산하고 수돗물 사용이 줄어들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시청률이 무려 70%가 나왔다고 하니 전 국민이 모두 시청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렇게 정애리 씨는 사랑과 진실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1985년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등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당시 유명했던 연예 잡지 TV 가이드에서 탤런트 순위 1위를 놓치지 않았는데요. 이미숙 원미경과 함께 80년대 여배우 신트로이카로 불리기까지 하며 당시 정애리 씨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결혼과 이혼

그런데 이처럼 인기 절정이던 때 그녀는 갑자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985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정애리 씨는 갑자기 결혼을 발표했고 연기를 중단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부산의 유명한 제과회사 아들인 박정준 씨였는데요. 정애리 씨는 남편이 유학을 떠나게 됐기에 동행을 결심했다면서 남편의 공부를 돕는 일에 매진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예계를 떠난 정애리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별거설 불화설 등에 휩싸였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1988년 그녀는 귀국하여 연기 활동까지 재개했습니다. 사람들은 정애리 결혼 생활이 심상치 않은가 보다 라며 온갖 추측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결혼 7년 만에 임신을 하여 딸을 출산하면서 당시의 별거설 이혼설 등은 전부 사라졌고 그렇게 결혼 생활을 잘 이어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2006년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정애리 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남편과 깊은 갈등을 겪어왔는데요. 당시 그녀의 소속사에선 남편과의 별거가 오래됐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혼에 이르게 된 것 같다 라고 전했습니다. 즉 딸이 생기면서 묻혔던 과거 별거설 이혼설이 전부 다 사실이었던 셈이죠. 이후 정애리 씨는 연기에 매진하며 덤덤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두번째 결혼과 이혼

그런데 2011년 이번엔 그녀가 깜짝 재혼을 발표하여 모두를 또다시 놀라게 했습니다. 그 상대는 문화공간 카페 체인을 운영하던 지승룡 대표였는데요. 각자 한 번씩 아픔을 겪었던 두 사람은 나머지 인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것이죠. 특히 두 사람은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함께 하며 가까워졌고 봉사에 대한 신념이 같았기에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겠다는 소감도 밝혔는데요.

하지만 이 결혼도 결국 단 3년 만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이혼을 둘러싸고 참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당시 지승룡 대표가 운영하던 카페는 몇 년간 임대료 부담을 겪었으며 알고 보니 결혼 생활 동안 정애리 씨는 지승용 대표에게 여러 차례 돈을 건네주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때 정애리 씨의 이혼을 담당했던 변호사에 의하면 사실 결혼 초부터 두 사람은 갈등이 있었고 정애리 씨가 인내하는 마음으로 버텼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결국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결국 정애리 씨가 먼저 이혼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죠. 참 새로운 인연과 함께 힘차게 출발해보려던 정애리 씨는 이 결정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얼굴이 확 변한 최근 모습

그런 상황에서 정애리 씨를 지켜준 건 바로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딸 아이가 항상 잠이 모자란 바쁜 엄마를 위해 쿠션도 챙겨주고 틈나는 대로 문자를 보냅니다.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엄마 같은 존재이고 든든한 버팀목이자 영원한 동반자예요.” 라며 딸에 대한 무한 사랑과 신뢰를 표현했는데요.

그런데 정애리 씨는 최근 또 다른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tv에 등장한 정애리 씨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지난 3월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출연한 정애리 씨의 외모에 대해 많은 네티즌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일었는데요. 올해 63세인데 40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미모가 그대로네요.

피부가 반질반질하고 미소가 아름다워요 등등의 찬사도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는데요. 예전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다 사라졌네요. 손을 너무 많이 댄 것 같은데 턱이 심하게 뾰족해요. 피부가 본인 거가 아닌 것 같고 가면 쓴 것 같아요. 등등의 반응들이 쏟아졌죠.

그러고 보니 정애리 씨는 60대임에도 거의 주름을 찾아볼 수 없는 듯 합니다. 몇 년 전에도 그녀의 연기에 대해 많은 네티즌들이 정애리 씨 표정 연기가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우는 연기를 하는데 근육 움직임이 전혀 없어서 어색해요. 등등의 의견을 내놓았는데요.

이런 부정적인 의견이 등장하는 건 아마도 정애리 씨가 얼굴에 여러 가지 시술을 하여 입 주위도 잘 안 움직이고 표정 연기가 잘 안 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처럼 조금은 과도한 시술을 하게 된 그 배경은 무엇일까요.

최근 얼굴이 확 바뀐 이유

그것은 아마도 정애리 씨가 1년간 난소암 투병을 하며 항암 치료를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녀는 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심하게 빠지고 얼굴에도 노화가 급격하게 찾아왔다고 밝혔는데요. 아무래도 큰 병을 앓고 나면 얼굴에 고생한 흔적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게다가 정애리 씨에게 텔런트 시험을 권유했던 막내 오빠는 4년간 암투병하다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정애리 씨는 얼마나 마음고생을 크게 했을까요. 몸과 마음이 힘들어 얼굴도 많이 상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배우이기에 대중들에게 상한 얼굴을 보여줄 수 없었겠죠. 더불어 작품을 위해서도 극 중에서 본인의 이미지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과도한 시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갑론을박을 떠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애리 씨에게 호감을 보내며 많은 응원을 보내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분이 호감과 응원을 보내는 이유

과거 1989년 정애리 씨는 드라마에서 아기를 찾아다니는 엄마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촬영 때문에 노량진에 있는 한 영아원을 방문했는데요. 그런데 이제 막 말을 배운 아기가 정애리 씨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고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엄마라고 부르니 그녀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급기야 그 아이의 엄마가 아닌 것이 너무 미안하기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녀는 그날 이후 그곳에 있는 70여 명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그녀의 봉사는 어느덧 30년이 넘었는데요.

최근에도 정애리 씨는 작품을 쉴 때면 항상 아프리카에 봉사를 가고 매달 1천만 원씩 기부한 지도 무려 1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녀는 봉사활동을 마치 인생의 동반자처럼 살아왔는데요. 이 때문에 고 이외수 작가는 그녀를 향해 살아있는 천사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봉사를 놓지 않았던 정애리 씨 모습에 청정구역도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연기 활동 펼치길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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