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이란 근심과 재앙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배우 이미영은 “자신의 인생이 환란의 연속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어머니 산소 앞에서 말하길 “진짜 우리 엄마는 지지리 복도 없는 여자였다. 엄마의 그 박복을 내가 또 이어받은 것 같다. 이게 우리 딸들에게는 가지 말아야 하는데…. 딸들도 걱정스럽다.”라고 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서, 최고의 청춘스타 전영록과 결혼하며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샀던 그녀가 두 번의 이혼 후 왜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까?
라며 화장실에서 샤워기 줄을 목에 감아 나쁜 생각까지 하며 당시에는 귀신까지 보고 빙의가 됐었던 배우 이미영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빙의](https://blessland.co.kr/wp-content/uploads/2022/11/1-48-1024x535.jpg)
전영록과의 결혼
1978년 17살에 미스 해태
대상으로 뽑히며 연예계에 데뷔한 이미영은 각종 광고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한편 그녀의 오빠였던 맹구 이창훈
과 전영록
은 대학교 동기였으며, 1983년 영화 대학 신입생 오달자의 봄
에 함께 출연하게 되면서 전영록과 연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미영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뽑자면, 첫 번째가 미스 해태
선발대에 대상 받았을 때이고, 그다음으로 전영록을 만났을 때였다고 했습니다. 훗날 이미영이 전영록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말하길 “그 당시에는 나에게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고 나의 모든 이야기를 잘 들어줬으며 솔직히 나에게 완벽한 사람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와 떠오르는 하이틴 스타의 결혼은 모두의 부러움을 샀지만, 그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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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이후 무너진 그녀
정확히 12년 후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되었으며 결혼했을 때만큼이나 이혼 소식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을 둘러싼 숱한 루머와 억측이 나돌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훗날 첫 번째 이혼에 대해 이미영이 말하길 “사람들이 흔히 이혼할 때 상대가 도박했다. 바람을 피웠다. 사업이 실패해 돈 문제였다.
뭐 했다. 등등 이혼의 사유를 말하지만, 사랑하면 그 모든 걸 다 포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사랑이 깨졌을 때는 반대로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간에 사랑이 깨진 거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혼하기 전 당시 이미영의 어머니가 함께 거주했었는데 “사위 밥해주고 챙기면서 사위 식성을 다 알 정도였고 아이들에게도 호칭만 할머니였지 엄마와 다름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손녀들을 친딸처럼 키운 할머니가 두 사람이 이혼 후 자식들을 남편에게 주라고 했을 때 정말 가슴이 미어져 너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남편에게 보낸 후 이미영이 고백하길 “아이들을 남편에게 보내고 나는 1년 동안 매일 술만 마시고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당시 나는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TV를 켜고 라디오를 켰다. 왜냐하면 애들을 남편에게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까 집 안에 소리가 울렸다.
사람이 살다가 집 안에서 다 빠지니까 소리가 울렸다. 그 공허함은 말도 못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런 공허함은 처음 느꼈다. 보람아! 우람아!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소리가 울렸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이혼할 무렵 신경을 많이 써서 그녀는 30대 초반부터 우울증과 갱년기가 왔다고 했습니다. “이혼 후 뭐 하나 해보려고 사업을 하면 주위에 모두 사기꾼들만 있었고 그녀가 작은 가게의 대표로 있을 때, 결국 홀라당 돈을 다 날렸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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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보이며 빙의까지….
그 사람들이 싫어져서 은둔하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에는 이상한 일들이 많아서 결국 귀신까지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은 후배가 자기 집에 와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후배 옆에 어떤 남자가 앉아서 울고 있길래 “옆에 이 사람은 누구니?”라고 후배에게 묻자 후배가 “언니 무섭게 왜 그래?”라고 했으며 이미영이 “너 이 남자 안 보여? 이 사람이 안 보여?”라고 했던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당시 “뭐에 씌었는지 빙의까지 되어서 아기 소리를 냈다가, 어느 날은 할아버지 소리를 냈다가, 남자 소리도 내고 별소리를 다 했다.”라고 했습니다. 훗날 그녀가 당신을 고백하길 “당시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를 끄는 것 같아서 환장하겠더라. 왜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까 싶었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빙의 되는 일이 너무 잦자, 그녀는 굿까지 했으며 그래도 절대로 신 내린 만큼은 받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딸들을 위해서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에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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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위기의 연속
하지만 당장 생계가 힘들었는데 배우라는 직업이 일하고 싶다고 해서 일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설상가상 2~3년간 일이 안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생계 수단이 끊겨버렸던 이미영은 일이 안 들어와 당장 먹고살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살던 집을 팔고 전세로 자그마한 10평 정도 집을 얻어서 이사하고 남은 돈은 통장에 넣어놨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돈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라면만 먹어도 배가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평소에 알고 지내던 친한 언니가 “미영아! 이자를 5부로 쳐줄 테니까 석 달만 돈을 빌려 쓰자.”라고 했고 실제 친언니의 친구다 보니 철석같이 믿고 빌려줬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렵던 시절 5천만 원을 결국 빌려주었으나 이자는 딱 두 달만 받고, 원금 갚는 것을 계속 미룬 그 언니는 결국 도망갔고, 당시 이미영은 아파트 잔디밭에 앉아 피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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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째 이혼
심지어 훗날 만난 두 번째 남편과도 행복은 잠시뿐이고, 또다시 이혼하게 되는데 그녀가 말하길 “나는 내가 이혼이라는 주홍글씨를 2개 새길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안 그래도 첫 번째 이혼할 때도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렇지 네가 그러니까 그 남자랑도 헤어졌겠지.
라고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단서를 주는 것밖에 안 되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두 딸이 엄마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인데 떼어놓고 살던 애들이 돌아와서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었던 이미영과 달리 재혼한 남편은 아이들이 오니까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왜 애들을 치마폭에 싸고 사느냐?”라며 이미영을 이상한 사람 취급했고 결국 거기에서부터 문제가 생긴 두 사람은 이미영이 먼저 그 사람의 손을 놓으면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할 수 없다.”라며 아이들을 선택했고 그렇게 또다시 이혼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이혼 후 “왜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까?”라고 생각한 이미영이 결국 해서는 안 될 나쁜 생각을 하게 되는데 화장실에 샤워기 줄을 목에 감았다고 했습니다. 가슴 아프지만, 당시 집에 있던 둘째 딸이 그걸 목격하고 울면서 “엄마! 왜 이러냐! 엄마! 왜 이래!”라며 엄마를 붙잡았고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이후 이미영이 고백하길 “나는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 왜 왔을까? 우리 엄마는 이 세상에 고생만 하라고 하나님이 보냈나? 전생에 무슨 죄가 커서 저렇게 고생할까 싶었다. 나의 어린 기억에는 엄마는 자면서도 인상을 쓰실 정도로 고생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큰오빠가 불에 타 저세상으로 보낸 후 그때 엄마가 심장병에 걸리셨고 거의 반쯤 미친 여자처럼 지내셨다. 근데 내가 그런 엄마의 팔자를 닮아가는 것 같다. 지지리 복도 없는 우리 엄마의 박복을 내가 또 이어받은 것 같다. 우리 딸들을 보면 가엾고 안 됐다. 이게 다 부모를 잘못 만난 거고 부모 잘못인데 우리 두 딸에게 이런 울타리밖에 못 되어주는 내가 너무 미안하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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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록이 말하길…
한편 전영록 역시 한 인터뷰를 통해 이미영과 이혼 후에 고충을 털어놓은 바가 있는데 그가 말하길 “어딜 가면 꼭 아내와 딸을 버렸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당시 나의 전 재산을 다 주고, 딸 둘만 데리고 10평 남짓한 전셋집을 떠돌아다녔으며 심지어 이혼할 때 돈이 필요해서 당시 저작권도 다 팔았다.
저작권 협회에 저작권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냐?
라고 문의하자 안 된다.
라고 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한 외국계 음반 회사가 내 저작권을 사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10년간의 저작권을 팔아서 이혼했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