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자 남편 하늘로 보내더니 결국 가슴 아픈 유서가 공개되었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김혜자
👉“딸아이가 암으로 죽기 전 마지막 한마디! 양희경은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사연인지 확인해 보세요.

김혜자의 과거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혜자는 일제강점기 및 6.25 전쟁 당시 가족이 모두 생을 마감할 뻔한 위기에 처했지만, 큰 언니의 기지로 몇 번이나 화를 넘겼고 이후 그녀의 아버지가 미 군정 시절 재무부 장관에 해당되는 일을 하면서 거실만 2백 평쯤 되는 대저택에 살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어린 시절은 매일같이 손님들이 와서 파티를 했고 또한 집이 워낙 넓다 보니 집이 아니라 공원인 줄 알고 놀러 오는 사람들까지 있었으며, 심지어 그녀의 집을 영화 촬영 장소로 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누구보다 풍족했던 환경은 그녀에게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바쁘고 늘 당신의 삶이 가장 중요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옆에서 어머니는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어린 김혜자의 기억 속에 어머니의 얼굴은 그리 활짝 웃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실망스런 연기력

그렇게 바쁜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로부터 받을 수 없었던 애정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넓은 집에 살면서도 마음 한가운데에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래서 그때 그녀는 그토록 절실했던 그 관심을 배우가 되면 한껏 받고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KBS 1기 탤런트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러나 열망이 너무나 강했던 탓인지 그녀는 배우로 데뷔한 후 드라마 딱 한 편만 하고 곧바로 배우를 그만두게 되는데 그 이후로는 당시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만 컸지 준비되지 않은 본인의 연기력에 크게 실망한 후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 그 뒤로는 수치심마저 들어 도망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절된 삶

이처럼 그녀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읽고 싶어서 어찌 보면 결혼마저 그런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고 했으며 이후 아이를 출산하고 4살이 될 때까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조차 없이 오직 아이에게만 열중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안는 것조차 참지 못할 정도로 아이에게 몰입했지만, 어느 날부터 젖도 안 먹더니 친구가 놀자면 미련 없이 나가는 걸 보며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싶어 그때부터 너무 고독해지면서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연기에 대한 열망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작

그런 차에 우연히 당시 아는 선배의 권유로 연극부터 시작하면서 연기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고 이후 연기에 대한 열망이 한 번 되살아나니 너무 강렬한 것이 당시 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쳤다고 했으며 이후 MBC가 개국하면서 MBC 배우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후 1980년부터는 무려 22년간 방영된 전원일기의 출연으로 이때부터 그녀가 한국의 어머니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최초의 여배우가 되었으며 그리고 이때 이해심 많은 그녀의 남편이 배우로서의 생활을 존중하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자 그녀 역시 고마운 마음에 촬영이 끝나거나 없을 땐 한눈팔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고 했습니다.

김혜자의 남편

한편 그녀의 남편은 김혜자보다 11살 연상으로 당시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상당한 애처가로 여자로 치면 대개 청초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암이라는 병이 그렇듯 어느 날 안타깝게도 남편에게는 원인도 모를 췌장암이 발병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녀는 남편이 많이 아픈데 평소 해준 게 없다는 미안함에 병실에서 같이 아파하며 극진히 간호했고 그러나 불편한 잠자리에 잠도 잘 못 자고 얼굴도 새까매지니까 당시 의사가 이러다가 김혜자 씨가 먼저 가겠다며 집으로 가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마감하기 직전 그녀가 의사에게 “이 사람 얼마 못 살죠” 라고 했더니 대답이 없었다고 했으며 그래서 의사에게 그럼 안 아프게 해주라 진통제 자꾸 놔주고 힘들게 하지 말라며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남편이 나보다 먼저 생을 마감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그녀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라며 큰 충격에 휩싸였고 또한 생전 남편이 7시만 땡하면 집으로 와서 밥을 달라고 했을 때 저 사람은 친구도 없나 저녁도 좀 먹고 들어오고 그러지 라고 했던 게 너무 미안해서 그 꼴을 보기 힘들었던 남편이 빨리 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자책까지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남편과 연관된 사람만 만나도 저 사람하고 우리 남편이 아는 사람이지라며 참 이상하게 남편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저 사람이 우리 남편하고 이야기했겠지 그 생각만으로 웃고 있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수돗물같이 줄줄 흘러나왔다고 했습니다.

김혜자의 유서

게다가 이후 아끼던 후배였던 최진실 등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도 떠나보내며 김혜자는 더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이런 김혜자는 자신 역시 유서를 쓰게 되는데요.

자식들이 말 안 들을까 봐 인감 도장도 찍어놓고 사인도 했다는 그 유서의 내용에는 “자신이 아프거나 사고거나 즉사하지 않으면 한 달 동안 병원에 넣어두고 실컷 봐라 그러나 그 이상 인위적인 생명 연장은 하지 말아라 그렇게 안 해주면 너희 정말 불효자다“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신이 예쁘게 나온 사진이 있으면 이걸로 영정사진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까지 하며 그녀는 어느덧 자신의 죽음 역시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는 상황인데요.

어린 시절 17살 터울의 언니 손에서 또래 형제도 없이 외로이 자랐고 커서 탤런트로 뽑혔지만 부족한 연기력에 도망치듯 그만뒀다가 이후 복귀해서 노력 끝에 결국 국민 배우로 우뚝 섰지만 국민 엄마의 호칭을 얻었던 전원일기에서는 시청자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하차까지 원했을 정도로 심적 괴로움을 겪었고 그 와중에 동료 김수미 그리고 전 세계 어려운 사람들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도우며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데 그만 남편이 병을 얻어 먼저 하늘로 떠나가 버리니 이제는 자신의 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까지 느끼고 있는 김혜자… 이렇게 너무나 슬픈 한 평생을 살아온 배우 김혜자에게 시청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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