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연기에 바쳤던 서인석 배우는 촬영 도중 불의의 사고로 결국…”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서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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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석의 과거

서인석은 1949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전쟁을 겪어야 했던 서인석은 이후 부모님이 아들들과 딸 둘을 더 낳으시면서 오남매 중 장남으로 성장기를 보내게 됩니다. 조흥은행 은행원이었던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서인석은 연극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다가 당시 같은 반 옆자리 짝으로 청소년 배우였던 조동희를 만나게 되는데요.

나중에 뽀뽀뽀에서 뽀동이로 출연했던 조동희는 당시 “생일 없는 소년”이라는 영화에 출연해 전쟁을 겪은 부모 잃은 고아 연기를 했는데 어느 날 서인석은 그런 조동희와 함께 버스를 탔다가 조동희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로 버스 안이 난리가 나게 됩니다.

당시 버스 안내양은 조동희의 고아 연기를 보고 자기 동생과 처지가 똑같다며 조동희에게 회수권 50장 뭉치를 거져주기까지 했는데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게 된 서인석은 부러운 마음에 조동희에게 자기도 배우를 하고 싶다며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동희는 서인석을 충무로에 있는 한 배우 학원으로 데려가게 됩니다. 당시 고3 누나벌이였던 윤여정도 다니던 그 학원에서 서인석은 연기의 기초를 배우게 되는데요. 서인석은 이후 공부도 제쳐놓고 하루 종일 이런저런 대사 연습을 하며 미친 듯이 연기에 홀딱 빠지게 됩니다.

배우로 진로 선택

그렇게 고3이 되어 무슨 과로 대학에 갈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 서인석에게 보수적인 은행원 아버지께서는 “넌 장남이니 부모를 도와주려면 상대로 진학해라”라고 말씀하시게 되는데요.

당시는 은행원이 직업으로 최고였기 때문에 배우가 꿈이었던 서인석은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고민 끝에 자신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 내린 서인석은 아버지께는 알리지 않고 어머니께만 조용히 무슨 일 터지면 중간에서 잘 얘기해달라고 말하고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내게 됩니다. 이후 대학에서는 1차 합격 통보가 오게 되었고 아버지는 서인석에게 무슨 과에 넣었냐고 물으시게 되는데요.

당시 서인석은 아버지에게 혼날까 봐 연영과에 붙었는데 영어 연구과의 줄임말이라고 대충 둘러댔고 그 말을 들으신 아버지는 아들이 “이제 영어까지 잘하고 국제적인 사람이 되는 거냐”며 친구에게 자랑까지 하시게 됩니다. 당시 아버지 친구의 딸도 서인석과 동갑으로 역시 중앙대 가정학과에 합격이 되었는데 그렇게 대학을 들어가 1년 동안 잘 다니던 서인석에게 아버지는 어느 날 너 무슨 과 다니는 거냐며 다시 물어보시게 되는데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서인석은 아버지께 쭈뼛쭈뼛하다가 결국 연극영화과라고 사실을 털어놨고 아버지는 그 말을 들으시자마자 밥상을 엎으시며 무슨 딴따라냐며 크게 화를 내셨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 친구의 딸이 서인석이 연극영화과에 다닌다는 걸 자신의 아버지에게 일렀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서인석은 죄인이 되어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와 자취하는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얹혀서 생활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세상 부모 마음은 다 똑같았던 것일까요.

서인석의 전성기

아들이 비록 자신의 뜻은 거역했지만 이후 연극에도 출연하고 방송도 나오니까 아버지는 서인성 모르게 연극표도 사서 보러 가셨고 아들이 하는 일에 격려도 해주시게 되면서 결국 나중에는 아버지와 더 돈독한 사이가 되게 됩니다. 당시 아버지는 서인석에게 직업 정신을 가지고 또한 화려하게 살지 말고 검소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출연료를 한 푼 받으면 반푼은 저축해라라고 일러주신 아버지 덕분에 서인석은 후에 저축의 날에 국민 포장까지 받게 됩니다. 그렇게 연극 배우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활동하던 서인석은 75년 KBS 일일 연속극 산비둘기라는 드라마의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서 이효춘의 상대역으로 탤런트로 데뷔하게 되는데요. 이후 탤런트로 20대 때는 청춘 남녀 역할로 자주 나오다가 30대 시절에는 멜로 연기를 많이 하게 되더니 40대로 넘어가면서 서민의 애환을 그린 홈드라마의 아버지 역할을 자주 맡게 됩니다. 당시 대표작으로는 정대문회와 달빛 가족 등이 있는데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대표 드라마로는 TV 손자병법의 유비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과거만 해도 탤런트는 방송사에서 공채로 뽑았고 1등급부터 18등급까지 연차에 따라 정해진 출연료만 받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배우가 돈을 잘 버는 직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인석은 헝그리 정신으로 후회 없이 배우 생활을 이어가게 되는데요. 특유의 부드러운 이미지로 많은 여심을 홀리며 그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 배우 설문에서 1위로 뽑히기도 하며 톱배우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사극으로 제2의 전성기

하지만 그랬던 서인석도 50대가 되면서 이전에 비해 배우로서 점차 설 자리가 줄어들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그는 사극에 도전하며 이후 사극 전문 배우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사극에서 열연을 펼치게 됩니다. 그는 태조 왕건의 견원 역할을 비롯 주로 왕이나 장군 역할로 최수종과 함께 자주 나오곤 했는데요.

그렇게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게 된 서인석은 어느 날 전쟁 신을 찍던 도중 왕은 일반 병사들과 다르게 백마를 타야 했지만, 촬영 현장의 백마는 한 마리뿐이라 최수종과 돌아가면서 같은 백마를 타고 촬영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백마는 이상하게도 서인석이 타기만 하면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발길질을 하는 등 속을 썩이게 되는데요.

하지만 최수종이 타면 똑같은 말인데도 얌전히 있고 달릴 때도 편안하게 잘 달리자 서인석은 최수종에게 가서 그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게 됩니다. 그런 서인석에게 최수종은 처음에는 장난 삼아 노하우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지만 결국 자신만의 비법을 알려주게 되는데요.

불의의 사고

그렇게 바쁜 일정에 쫓기며 사극 촬영에 임하던 어느 날 서인석은 남한산성에서 새벽 2시에 전쟁 신을 찍게 되는데 장군 역할이였던 자신은 장군의 위용으로 적군 쪽에서 화살이 날아와도 맨 앞에서 피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그만 불똥이 붙은 화살의 목 부분을 맞게 됩니다.

그 화살은 화살촉에 기름을 묻히고 불을 붙여서 쏘는 화살인데 화살에 붙은 불똥이 서인석의 갑옷으로 들어가게 된 것인데요. 나일론 천이 녹으면서 서인석의 가슴살에 달라붙게 되었지만, 장군의 옷은 뒤쪽에서 동여매게 되어 있다 보니 혼자서는 벗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큰 화상을 입고 새벽에 긴급하게 현대 아산병원으로 실려 가게 되었는데요.

새벽이라 의료진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다시 그 장면을 못 찍으면 방송이 펑크 나기 때문에 대충 소독만하고 촬영장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촬영을 다 마치고 낮이 되어서야 다시 병원에 갈 수 있었던 서인석은 지금도 그때의 상처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상을 당했지만 서인석은 그렇게 남은 상처는 자신의 연기에 혼을 불사른 영광의 상처라 생각해서 제작진에게 배상해달라고 요구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불의의 사고를 당했는데도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은 상태에서 촬영 현장에 복귀하며 연기의 평생에 혼을 불살랐던 서인석의 험난했던 인생 어느덧 80의 나이를 향해가며 이제는 후배 양성을 위해 대학 강단에도 선다는 배우 서인석에게 시청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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