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현식 어쩌다가 이런 일이… 어머니와 아내를 같은 시기에 보내고 본인마저 결국” 안타까운 그의 인생사를 확인해 주세요.

임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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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식의 어린시절

배우 임현식은 해방이 되던 1945년에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6살 되던 해에 6.25를 경험한 임현식은 당시 신문기자였던 아버지가 다른 기자들 7명과 함께 취재차 북한으로 떠났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끝내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추운 겨울날 기차를 타고 광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30세 살의 나이로 실종되면서 임현식의 어머니는 고작 26살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평생 재혼하지 않고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힘겹게 살게 됩니다. 음악 선생님이었던 임현식의 어머니는 비록 홀로 자식들을 키웠지만, 자식들에게만큼은 아낌없이 지원해주면서 그 옛날 어려운 시절 임현식에게 바이올린까지도 배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훗날 임현식은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에서 어린 시절 배웠던 바이올린 실력을 바탕으로 순돌이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주는 멋진 아빠의 모습까지도 연기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던 임현식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음악가를 꿈꾸었던 음대 지망생이었습니다.

연기자로 데뷔

그러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연극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1년 재수 끝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69년 MBC 공채 탤런트로 브라운관에 데뷔하게 됩니다. 당시 공채 탤런트 선발에는 5,000명이 지원하여 여러 차례 관문 끝에 최종 36명이 남게 됩니다. 당시 심사를 본 MBC 사장은 임현식의 얼굴을 보고 “좀 밋밋하지 않냐?”라고 말을 하자, 임현식은 “배우로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치고 싶다.”라며 소신을 강하게 밝혔고 이 말의 의지가 좋게 보여 결국 그는 탤런트로 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탤런트로 뽑힌 후에도 처음 5년 동안은 무명 연기자로 고생하게 됩니다.

임현식은 탤런트 공채에 합격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당시 수양산맥이라는 드라마에서 단역이었던 포졸로 출연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는 포졸 A도, B도, 아닌 포졸F였고 게다가 대사는 단 한 마디 “네!”였다고 합니다. 임현식은 초기에 연기할 때는 있는 그대로 완벽히 하는 것만 생각했지, 애드리브를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나, 당시 모든 연기자가 신성일처럼 멋있는 톤으로만 연기하려고 할 때 그는 자신만의 색깔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맛깔난 조연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판단하여 전북 부안까지 내려가서 춘향전, 별주부전 등의 판소리 가사들을 직접 구해서 2년 정도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결국 본인만의 해학적인 연기 스타일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후 임현식은 김수현 작가의 일일연속극 당신에서 김수미의 상대역으로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없던 새로운 해악스러운 스타일로 연기하니 당시 드라마 연출자가 연기를 너무 오바하고 카메라로 잡을 수도 없다며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MBC 공채로 입사한 후 7년 만에 일일드라마 당신으로 MBC의 방송 연기 대상에서 조연상까지 받게 됩니다.

이후 1981년에 드라마 암행어사에서 암행어사 이정길을 물심양면 수행하는 코믹한 갑봉이 역할로 많은 인기를 끌더니, 결국 1986년의 일요일 아침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에서 순돌이 아빠 역을 맡으며 평범한 서민 가장 이미지로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생전 처음으로 cf까지 찍게 됩니다. 이후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빠질 수 없는 감초 역할의 대명사로 정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아내의 죽음

1999년 사극 허준에게서는 주인공 허준을 조력하는 이호근 역을 맡아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약방 감초 연기에 정점을 찍습니다. 사실 드라마에 캐스팅됐을 때만 해도 임현식의 역할은 미미했고 출연 분량도 고작 10회에 불과했지만, 그의 노력 덕분에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며 임현식은 국민 배우로 거듭날 수 있게 됩니다.

당시 임현식은 이병훈 PD와의 인연으로 다양한 사극에서 감칠맛 나는 조연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이렇게 순조로웠던 그의 인생에서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하던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그의 부인이었던 서동자 씨가 그만 늑막염과 폐암으로 50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임현식과 부인 사이에는 딸만 3명이 있었는데 부인이 투병 중에도 임현식은 자신의 코믹한 배역을 시청자가 볼 때 지장이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부인의 상황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병세가 위중해져서야 기사로 알려졌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임현식은 과거 1974년 촬영을 하던 중 우연히 들른 경기도 송추가 자신의 어릴 적 고향과 무척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 슬레이트 집을 짓고 정착했습니다. 그는 바로 이곳에서 교사였던 부인을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아내와 결혼하여 딸들을 낳고 단란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내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만 아내에게서 결핵이 발견되게 됩니다. 이후 계속된 검사 결과 아내는 끝내 폐암 4기를 선고받게 됩니다. 원래는 아무 증상도 없었던 터라 너무 놀랐던 임현식은 아내가 건강검진 받다가 오히려 죽을 병을 발견했는데 차라리 그때 검진 안 하고 함께 놀았으면 어땠을지, 같이 부부답게 놀지 못한 채 힘든 투병 끝에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며 아내를 잃은 슬픔을 털어놓게 됩니다.

아내를 만났던 송추 임현식의 집은 처음엔 평범한 슬레이트 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99년에 노후를 생각해서 한옥으로 다시 지을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때 임현식의 부인은 “늙어서 쓸 돈도 있어야 하는데 집 짓는 데 다 쏟아부으면 어떡하냐?”며 처음엔 반대했지만, 막상 집을 짓기 시작하자, 부인이 직접 전대를 차고 다니며 인부들과 함께 일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고 지금 봐도 상당히 잘 지어져 보인다고 합니다.

임현식은 이 집에 대해 “그때만 해도 이 집에서 오래오래 같이 살 줄 알았고, 어머니도, 아내도 다 함께였는데 참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사람인 것 같다.”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임현식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부인과 어머니는 지금은 집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근처 양지바른 언덕에 나란히 묻어두었다고 합니다. 무덤가에는 임현식의 한 개씩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커다란 돌탑도 있다고 합니다.

임현식은 “어머니와 아내가 비슷한 시기에 하늘나라로 떠났는데 아내가 갑자기 죽게 되리라 생각조차 못 했고 그 일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재앙이었다.”라며 슬픔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임현식이 훗날에 말하길 “아내가 아파서 암센터에 머리 깎고 누워 있는데도, 매주 드라마 촬영 현장에 나가서 할 건 해야지 그랬더니 다 되더라. 아내는 아픈데 그 와중에 자신은 코믹 연기를 해내고 있으니, 그때는 자신이 정말 무슨 무당인가 싶었다.”라고 밝히며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렇게 임현식은 아내를 떠나보냈지만, 그는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소아암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서 1,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원래도 소아암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었던 그는 이 기부가 처음이 아니라 몇 년 전에도 1,000만 원을 해당 병원에 기부했었다고 합니다.

기부한 이유는 감동적이게도 임현식의 아내가 죽기 전에 소아암 환자들을 보살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도 힘들었을 텐데 아내는 그렇게 남을 위해 살다 갔던 것입니다. 임현식은 그런 아내의 뜻을 기려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또 한 번의 시련

이렇게 홀로의 몸이 된 임현식에게 어느 날 또 한 번의 시련이 다시금 찾아오게 됩니다. 바로 이번엔 임현식 본인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입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배우 생활하며 커피와 담배를 달고 살다가, 어느 날 호흡 곤란이 오게 되었고 응급실에서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 곧바로 수술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그는 스텐트 시술까지 받게 됩니다. 이후 둘째 딸 부부가 임현식을 모시고 함께 살게 되기 시작합니다. 최근에는 건강 문제로 연기자 활동을 쉬고 귀농해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으며, 몸이 좋지 않아 그마저도 힘들어서 사위들을 불러 일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전쟁통의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힘겹게 자라서 피나는 노력 끝에 무명의 설움을 딛고 감초 연기자로 성공하는가 싶더니 아내를 잃으면서 큰 슬픔에 잠겼지만, 그 와중에도 무당처럼 코믹 연기를 해야만 했던 임현식. 그러다 나이가 들어 본인마저도 건강이 악화하여 수술까지 받으면서 이제 팔순을 향해 인생을 마감 짓는 황혼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게 된 임현식. 너무나 힘겨운 인생을 살아온 배우 임현식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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