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가수 수와진 괴한 습격에 이은 폐종양…”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알아보세요.

수와진으로 활동하는 안상수, 안상진은 똑 닮은 외모로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함께 활동하는 쌍둥이 가수입니다. 두 사람은 80년대 많은 히트곡을 냈으며 바쁜 와중에도 자선 공연 등을 하는 선행의 아이콘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그들에게 끊임없는 시련을 안겼습니다.

성장기 시절, 믿기지 않는 가정사에 동생과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우여곡절 속에 가수가 되어 성공 가도를 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 안상진은 간경변, 폐종양, 한강 둔치에서 괴한에게 습격까지 당해 여러 차례의 수술 그리고 의식까지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의 비보는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수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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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와 안상진의 어린시절

1962년 11월 10일에 함께 태어난 쌍둥이 형제 안상수와 안상진으로 이루어진 듀오 수와진은 80년대 많은 히트곡을 낸 그룹으로도 유명하지만 꾸준한 선행으로 더 이름을 알렸습니다. 사실 수와진이 꾸준한 선행을 펼친 데는 기고한 이유가 있습니다.

안상수, 안상진 형제는 경제적으로 넉넉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가정이 어려움에도 항상 남들에게 베푸는 것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추워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옷까지도 벗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성정 때문에 안상수의 집 안에는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안상수의 막내 여동생이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건입니다. 안상수의 아버지는 네 남매만 키워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더 어려운 이들을 돕고자 14명의 고아를 돕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동생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심장병 진단을 받았어요.

수술이 급했지만, 아버지는 고아 중 한 명의 학비를 냈어요. 설마 바로 숨을 거두겠느냐 하셨지만, 3일 뒤에 막내가 세상을 떠났어요.” 자기 옷가지마저 내어 남을 돕던 아버지는 그날도 여지없이 더 낮은 곳에 있는 이를 위해 손길을 내밀었고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 일로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결국 만 4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와진 데뷔

어머니는 그 후 형제끼리 꼭 붙어 있으라며 신신당부했고 안상수와 안상진은 군대까지 함께 갔습니다. 두 사람은 문선대에서 함께 군 복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복무 시절 무대에 섰는데 가수 전영록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두 형제는 전역 후 전영록 소속사에서 연습생을 거쳐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전영록은 두 사람을 발탁했을 뿐 아니라, 배고픈 시절 격려도 많이 보냈습니다. 수와진이 데뷔 후에는 콘서트 게스트로 초청하고 방송에도 함께 나가는 등 큰 힘이 되어줬습니다. 그런 전영록의 도움 아래, 두 사람은 노래에만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와진은 1987년 방송 60주년 기념 KBS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은상을 받으며 얼굴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새벽 아침이라는 곡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했습니다. 이 곡은 단번에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새벽 아침이라는 곡으로 두 사람은 KBS 가요대상 신인상과 올해의 가수상, MBC의 아름다운 노래의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년 뒤 발표한 2집 타이틀곡 파초는 더 빠르게 바람몰이했습니다. 이 노래는 힘든 삶에 지친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곡으로 뜨겁게 주목받았습니다. 이후 나그네 사랑, 내님, 바람 부는 거리 등의 노래로 두 사람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심장병 모금 운동

한편 두 사람은 히트시킨 노래도 많지만, 선행을 많이 하기로도 유명합니다. 수와진은 연일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심장병 환우를 위한 모금 운동을 했습니다. 여동생이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서 더욱 아이들에게 관심을 뒀던 것입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심장병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완쾌한 아이들이 1,000여 명이 넘습니다.

안산진의 비극

하지만 그렇게 뜻깊은 일을 하면서 가수 생활을 영위하던 이들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하늘은 두 사람에게 큰 시련을 줬습니다. 인기 가도를 달릴 무렵 동생 안상진에게 비극이 닥쳤습니다. 안상진은 1989년 한강 둔치를 산책하다 4~5명의 괴한에게 습격당했습니다.

안상진은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해 “젊은 애들인데 술 먹은 애들인 것 같아요. 쇠파이프, 각목, 돌 등 4~5가지 둔기로 맞았다고 병원에서 하더라고요. 머리만 맞은 게 아니고 관절마다 맞았어요.”라고 전했습니다.

형 안상수는 “처음에는 술을 먹은 줄 알고 머리를 한 대 더 때렸어요. 그런데 촉감이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확인해 보니 혹이 매우 크게 나 있었어요. 사고가 났거나 누군가에게 맞았다 싶어서 깨우니 정신을 못 차리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병원으로 갔어요.”라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안상진의 지갑에 돈이 없어져 당시에는 강도들의 소행으로 추측됐습니다. 하지만 1년 뒤 연예인들이 일하는 야간업소 주변 조직원들이 저지른 것으로 전말이 드러났습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 안상진뿐만 아니라 많은 연예인이 이들로부터 수많은 손찌검과 위협에 시달렸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동생 안상진은 수년 동안 수술과 치료를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무려 세 차례나 뇌 수술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심각했습니다. 노래 가사를 잊을 정도라 더 이상 무대에서 노래할 수 없어 가수 활동을 접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안상진은 밝은 모습까지 잃어버렸는데요.

형 안상수는 당시 동생이 매우 위협적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동생이 절제를 못 하니까 못하게 하면 위협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집에 있는 그릇이란 그릇은 다 깨졌어요.”라고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안상진은 “연예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찾아온 상실감이 컸어요. 그래서 저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걸 보면 이해가 가요.”라고 과거 겪었던 심적 상처를 토로했습니다.

안산수의 솔로 활동

동생의 어쩔 수 없는 휴식기 동안 안상수는 1995년 솔로 앨범을 내고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솔로 활동으로 올해 가수상10대 가수상을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동생 안상진은 형의 가수 활동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질투심과 허망함에 슬픈 감정만 있었습니다. 함께 활동하다가 자신만 도태된 것 같은 느낌에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그래서 그는 요양차 내려간 부산에서 3년간이나 긴 방황을 했습니다.

안상수는 당시 동생의 방황을 보며 속이 터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갈등을 해소한 두 사람은 2008년 수와진 5집 앨범으로 재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불행은 또 찾아왔습니다.

안산진의 다시 찾아온 시련

어느 날 갑자기 안상진은 몸에 이상을 느껴 찾은 병원에서 폐종양이 발견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습니다. “간경변 왔지, 폐 절재술 했지, 그렇게 병이 자주 오니까 이제 또 뭐가 오려나 생각했어요. 차라리 그게 낫잖아요. 상수는 아프지 않고 아픈 걸 제가 다 안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전 아파본 사람이잖아요.” 안상진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형보다는 자신이 아파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통의 시간을 이겨냈습니다.

최근 근황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안상진은 그 후 점점 건강이 회복되어 이제는 두 사람이 자선 공연 무대에서 듀엣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폐를 10%나 절제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상황이 괜찮을 때는 듀엣으로 무대를 꽉 채운다고 합니다.

힘든 상황에서 여전히 도움이 더 필요한 이들을 위해 애쓰는 형제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냈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도 어려운 이들을 위한 선행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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