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전 이후 침묵하던 히딩크 감독의 대반전 충격 발언으로 모두가 놀랐습니다.” 어떤 발언인지 확인해 보세요.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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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 대한민국 VS 가나

우리나라가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2차전 무승 징크스를 깨지 못했습니다. 28일 우리 대표팀은 가나와 2대 3으로 졌습니다. 졌지만 선수들은 열심히 싸웠고 응원은 뜨거웠습니다. 비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시민 3천여 명이 모여 우비를 입고 목이 터져라 응원 구호를 외쳤습니다.

전반전 24분과 34분에 잇따라 가나 선수들의 골이 터지자 곳곳에서 아쉬운 탄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금방 “괜찮다. 이길 수 있다.”며 더 목청을 높여 응원했고 후반전에 조규성 선수가 두 골을 몰아치자 시민들은 서로 끌어안고 함성을 지르며 다시 시작을 외치며 구호에 맞춰 열띤 응원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가나에 한 골을 더 허용하고 아쉽게 경기가 끝나자 “시민들은 잘 싸웠다. 3차전은 꼭 이기자”며 서로를 격려했죠.

이번 경기를 지켜본 박지성 선수는 훌륭한 경기를 했음에도 승점을 가져오지 못해 너무 아쉽다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어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골을 넣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번 대회에 많은 이변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심에 아시아가 있다.”라며 “20년 전처럼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한다면 3차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히딩크의 가나전 일침

2002년 월드컵을 빛낸 히딩크 감독도 이번 가나전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벤투 감독을 퇴장시킨 앤서니 테일러 심판에 대해 비판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사실 앤서니 테일러 심판은 경기에 나섰다 하면 많은 문제들을 일으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로 유명합니다.

히딩크 감독은 “이름이 알려져 있는 심판일 경우 문제가 있는 심판일 경우가 많다. 평소 ETLl에서 테일러 심판은 늘 경기보다 자신이 더 주목받는 일에 집중한다며 일관성 없는 판정을 내려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한 “만약 한국이 유럽이나 남미 팀이었다면 저렇게 경기가 종료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노했죠. 또한 영국은 이 사건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히딩크와 유상철

2002 월드컵은 우리나라에 추억 이상의 특별함을 준 월드컵이었습니다. 최근 2002 월드컵이 한국 축구에 가져온 변화와 성장의 기록을 담은 다큐가 방송됐습니다. 이 방송에는 고 유상철 선수의 묘소를 찾는 히딩크 감독의 모습이 담겨 있었죠.

영원히 기억될 2002 월드컵 레전드 유상철 선수는 지난 2021년 6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 향년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묘 앞에서 히딩크 감독은 2001년 6월에 있었던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을 회상했습니다. 당시 유상철 선수는 얼굴에 골절상을 입고도 경기 종료 직전 헤더골을 성공시키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유성철이 코뼈가 주저앉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계속 경기를 뛰고 싶다고 했다. 그런 게 그의 성격이었다.

그는 계속 경기를 뛰면서 팀에 기여하고 싶어 했다. 정말 강한 선수였다. 하지만 훈련할 때는 항상 동료에게 힘을 복돋아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난 모든 한국 선수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는 정말 특별한 친구였다고 말했습니다.

직접 꽃다발을 들고 유상철의 묘소에 찾아간 히딩크 감독은 마치 유상철에게 대화를 걸듯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참 좋은 곳이네. 친구 저 멀리 세상 좀 보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어 그는 유상철의 묘비를 한참 바라보다가 “너와 함께해서 너무 감사했어”라며 “너의 헌신, 용감한 친구, 고마웠어”라고 인사했습니다. 한국인들이 히딩크 감독을 응원했던 것보다 히딩크 감독의 한국 사랑이 더 유난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히딩크의 한국 사랑

특히나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 네덜란드 방송에 출연할 때면 항상 태극기를 들고 나와 자랑을 하며 한국인들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자랑을 한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한국 축구 팬들의 애정과 그리움은 아직까지도 식을 줄 모르고 있을 정도로 그의 한국 내 입지는 그야말로 강력합니다. 심지어 2002 월드컵 이후 한국을 그리워했던 그가 언론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한국을 방문했는데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국 곳곳을 여행했는데 가는 곳마다 반가워하는 한국인들이 인사를 해서 같이 사진을 찍느라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네덜란드 방송에 출연해 2002 월드컵 이후 2년쯤 지나면 내가 잊혀질 거라 생각했지만 한국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많이 다가와 이제는 내가 먼저 인사한다는 말을 할 정도였죠.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평가를 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별명이 5대 0이었을 정도로 “외국인 감독 하나가 굴러 들어와 개최국 망신 다 시키겠다”는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죠.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은 그때 알게 될 것이다라며 준비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어떠한 비판도 수용할 것이라는 무한한 자신감을 표현해 더욱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 시절에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힘든 시절에는 체육 교사와 선수를 겸임했는데 특수학교에서 장애 아들을 지도하면서 얻은 경험이 훗날 감독 생활을 할 때 선수들을 이해하고 거들어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죠. 네덜란드 방송에서 말한 것처럼 히딩크 감독이 한국 선수들을 훈련시키며 가장 놀란 것은 예의범절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예의가 경기에서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고 파악합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서로 반말을 쓰게 해 상하 관계를 상호 소통으로 바꿉니다. 이후 대표팀 내부의 선후배 관계는 사라졌고 경쟁과 협력만이 남게 됩니다.

훈련과 휴식 축구와 생활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상도 이뤄졌습니다 한국이 16강에 오른 바로 다음 날 히딩크 감독은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6강을 뛰어넘어 4강까지 진출하는 기적을 새로 썼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한국 사랑은 월드컵이 끝나고도 계속 이어지는데요.

일본 감독으로 가지 않은 이유 그리고 일본과의 경기

한국의 4강 진출을 배아파하던 일본 축구협회는 히딩크 감독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일본 국가대표를 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잘 알고 있던 히딩크 감독은 한국 감독을 했던 내가 일본 감독을 할 수는 없다며 단칼에 거절하고 호주 대표팀 감독으로 갔죠. 이어서 다음 월드컵인 2006년 히딩크 감독은 호주 대표팀을 맡아 일본과 맞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은 경기 직전 인터뷰에서 “한국을 위해서라도 일본을 이기겠다.“고 말해버렸죠. 일본 언론들은 이 말을 듣고는 이것은 일본에 대한 도발인 동시에 경솔한 발언이라며 히딩크 감독을 매도했고 가만두지 않겠다며 이를 갈았습니다. 그리고 결전의 날 기를 쓰고 달려든 일본 팀은 선제골을 기록하며 1대 0으로 앞서 나갔습니다.

승부가 바뀌지 않은 채 경기 종료 10분 전 히딩크 감독은 공격수 3명 교체라는 초강수를 던졌고 단 8분 만에 마치 영화 같은 3대 1 대역전을 이루어냅니다. 이에 일본 언론은 호주에게 진 것이 아니라 히딩크에게 졌다고 악감정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신경도 쓰지 않은 듯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한국의 명예시민인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해 일본을 더욱 열등감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승패를 떠나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꾸준히 한국을 응원해왔고 올해도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남은 16강의 가능성을 위해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 좋은 결과를 내고 20년 전 히딩크의 마법이 되살아나길 기대하며 오늘 내용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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