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현숙에게 20살 아들이 있는 속사정과 결혼 못한 진짜 이유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얼굴만 보고, 이름만 들어도 힘이 나는 가수 현숙의 본명은 정현숙입니다. 본명에서 성만 뺀 것입니다. 이름속 어질 현 賢과 맑을 숙 淑, 한자 의미는 너그럽고 착하다는 뜻으로 그녀는 이름값 그 이상을 해내는 트로트의 효녀입니다.

둥글둥글한 쇼트커트 헤어만큼이나 성격도 둥글둥글한 현숙은 12남매 중 11번째 막내딸로 태어나 어딜 가서도 사람들과 곧잘 어울렸습니다. 늘 언니들 옷을 입을 물려받았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자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현숙이 결혼을 못 한 이유에는 다소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또한 결혼하지 않았음에도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현숙
👉“땡벌의 가수 강진이 지난 2년여 동안 이어진 길고 긴 소송을 벌여야 했던 안타까운 이유”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효녀 가수 현숙

현숙은 가수로 데뷔한 후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병을 앓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당시 현숙이 부모님의 병시중을 드는 모습과 현숙 가족들이 다큐멘터리에 방영되면서 현숙은 효녀 가수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중풍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하고 있던 어머니의 병세가 갑자기 심해진 건, 1996년 치매를 앓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그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입을 다무셨다고 합니다.

말을 못 하는 것은 물론 물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심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11년 동안 호스로 영양액을 공급받아 연명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용변을 가리지 못해 항상 기저귀를 차고 지내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소리 없는 마지막 유언

현숙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 어머니가 평생 모은 돈 3천700만 원에 5천만 원을 보태 한양대병원에 기부했습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수술받지 못하는 소아백혈병 아이들의 수술비를 마련해주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비록 마지막까지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가족의 곁을 떠나셨지만, 그녀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입을 우물우물하시는 걸 봤어요. 올케언니가 아마도 그동안 고생 많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제 생각에도 그랬어요. 나는 이제 편한 곳으로 가니 너희들도 행복하게 잘 살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신기하게도 마지막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눈물까지 흘리셨어요. 저 역시 엄마의 귀에다 대고 끊임없이 사랑해요. 사랑해요.하고 얘기 드렸어요.”

미혼인 현숙의 아들

그런데 현숙은 미혼임에도 아들이 있습니다. 바로 남동생의 아들인 조카를 양자로 들인 것입니다. 현숙은 과거에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는데 열이 39도까지 올라가 혼자 병원에 누워 있으며 옆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현숙의 남동생은 혼자 외로워하는 누나 생각에 막내아들을 누나의 양자로 보내기로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현숙 남동생의 아내는 먼저 아이에게 의견을 물었고 아이도 알겠다고 하니 사실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고모랑 있는 것이니 보내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현숙은 조카를 양자로 받아들였지만, 조카가 아직 어린 나이임을 감안해서 곧바로 같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11살의 조카를 호적에 양자로 입적시켰고, 생일이면 같이 밥을 먹고 아이를 위해 주택 부금도 들고 아이가 모은 돼지저금통을 들고 은행에 같이 가서 적금하는 등 아이와 좋은 추억을 많이 쌓기도 하며 아들에 대한 사랑을 보였습니다.

현숙이 결혼 못한 이유와 이상형

현숙은 현역 최고령 연예인이었던 송해를 수양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실제로 2019년 말에 송해가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직접 수발을 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현숙은 이 때문에 결혼 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결혼 시기는 이미 놓쳤지만, 독신주의자는 아니고 여전히 결혼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는 현숙은 앞으로 순리대로, 다가오는 대로 결혼하고 싶다고 결혼에 대한 뜻을 비쳤습니다.

만약 가야 할 운명이라면 가고, 이대로 살아야 한다면 살면서 일부러 결혼하거나 남편을 만들어내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가정을 이뤄 보통 사람처럼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현숙은 돈은 많이 벌어오지 않더라도 아침마다 출근하는 성실한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연하는 어렵고 특별한 남자를 찾는 게 아니기에 그저 본인을 사랑해주고 어른들이 걱정 안 할 만큼 평범하고 예쁘게 사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부 활동

현숙의 인생에서 양자 이외의 특징은 바로 기부입니다. 2004년부터 매년 한 지역에 시가 4천만 원 상당의 이동 목욕 차량을 기증했고, 디너쇼 수익금 1억 원을 기부하면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합니다.

그 외에도 고향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소아암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수술비, 사랑의 열매 기부 등 다양한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숙의 성격은 굉장히 낙천적이고 밝습니다. 어떤 나쁜 일이 닥치더라도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인물입니다.

효녀 자매

한 번은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효녀 자매로 양지은 집을 방문한 현숙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녀는 양지은과 단란한 시간을 가지던 중 아버지의 신장이식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양지은은 “2010년 8월 자신이 21살 대학생 때 찾아온 소식이라며 당뇨 합병증으로 아버지 몸이 안 좋았다.”라고 했습니다.

양지은은 “아빠가 몸이 정말 안 좋고 앞으로 3개월 남은 시간이라며 가족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군요. 신장이식밖에 방법이 없었는데 이식 대기자는 끝을 알 수 없었어요.”라고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드리면 되는 게 아니냐며 단순하게 생각해 망설임 없이 아버지에게 신장이식을 하게 된 계기를 전했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 생각보다 너무 아프고 어린 나이에 처음 겪었던 고통이라 쇼크로 잠시 정신을 잃어 기절했던 경험을 얘기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양지은은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를 찾았죠. 다행히 성공적으로 아버지가 수술을 마치셔서 너무 기뻤어요.”라며 지난날을 회상했습니다.

또한 “큰일을 겪고 아빠도 살렸는데 이제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었어요.”라며 효녀 가수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숙은 아버지의 상태를 물었고 양지은은 “올해 신장이식 11년째 되는 해인데 다시 검사받으니 새로 들인 신장이 다시 망가지셨어요.”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양지은은 “왜 이렇게 슬픈지 내 몸속 신장은 멀쩡한데 아빠는 망가졌다니 너무 슬픕니다.”라며 죄책감을 느낀 듯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양지은은 “사실 지난주부터 투석을 시작하셨어요. 현숙 선배님 얼굴을 보면 너무 좋아하실 것 같아요.”라고 영상 통화를 제안했습니다. 양지은의 마음을 이해하는 현숙은 흔쾌히 영상 통화에 응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실제로도 현숙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현숙의 신곡 김치볶음밥을 좋아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현숙이 제주도에 기부한 이동식 목욕탕을 실제로 이용하기도 한 인연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에 현숙은 “지은이와 제가 닮았어요. 자매처럼 잘 지내기로 했어요. 아빠를 위해 노래 한 곡 불러드릴게요.”라면 노래를 열창하였습니다.

언제나 화난 얼굴로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현숙이 앞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널리 전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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