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67세 가수 함중아 간경화, 폐암 투병 끝에 결국…” 마지막 눈물 고백 사연을 확인해 보세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풍문으로 들었소”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삽입되며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듯이 노래 또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사실 원곡이 따로 있는 노래이죠. 1978년 결성된 밴드 함중아와 양키스는 이 곡으로 가요계 전설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비록 처음엔 너무 파격적인 리듬 때문에 당시 이상한 취급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 곡은 리메이크 곡으로 영화와 드라마의 삽입곡으로 꾸준히 재탄생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히트곡을 남긴 밴드인데요. 밴드 함중아와 양키스는 전원이 혼혈아로 구성된 조금은 특별한 그룹이었습니다. 그런데 함중아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많은 이들을 놀래 키는 고백을 하게 되죠. 소주 30병 마시는 애주가에 술 때문에 감옥살이까지 하고 아내를 두고 외도까지 저질렀던 인물이었지만 이후 여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잘 지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간경화로 투병한 사실을 밝히고 1년 가량 후 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일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떠난 함중아를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함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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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중아와 양키스의 탄생

함중아는 경북 포항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어려서 형제가 뿔뿔이 흩어졌고 어린 시절 가진 고생을 하며 항상 배가 고팠던 그는 공부를 시켜준다는 말에 보육원에서 살게 됩니다. 보육원에는 혼혈 2세들이 많았고 미국으로 입양을 갔습니다. 하지만 함중아는 미국이 가기 싫어 혼자서만 입양을 거부했습니다.

부천에 있는 보육원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함중아는 그 곳에서 음악 그룹을 결성했습니다. “뜻이 있는 아이들끼리 그룹을 만들었어요. 혼혈 멤버로 구성된 그룹에서 음악 활동하다 보니 혼혈아로 오해받았어요.” 함중아가 혼혈 출신이라고 오해받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자랐으니 묻혀서 간 거예요. 팀 멤버들도 혼혈아라서 자연스럽게 혼혈 출신으로 살았죠. 그렇게 그는 오랜 시간 자신이 혼혈이 아님을 밝히지 않고 지냈습니다. 사실을 감추고 프랑스 계 아버지를 둔 혼열아 행세를 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러한 그의 행보는 연예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함중아와 윤수일이 등장하면서 국내에는 혼혈 가수들의 왕성한 활동이 이어졌습니다. 희자매의 인순이가 있었고 “오, 진아”의 박일준도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언더 그라운드에서는 혼혈 음악인들이 크게 늘었고 대우와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가 굳이 자신이 혼혈이 아님을 공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으리라고 일각에서는 추측했죠.

이후 친구가 가지고 온 뮤지컬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려고 영화배우 신영균 신성일 등을 찾아갔지만 모두 다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신중현을 만났고 이후 음악을 배우게 됩니다. 몇 년 뒤 그렇게 함중아와 양키스가 탄생합니다.

그의 전성기

사실 함중아는 본래 가수가 아닌 기타리스트 지망생이었습니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긴 했어도 마음은 늘 연주회가 있었죠. 스스로 지은 예명 중아는 세계적은 몰라도 아시아에서만큼은 묵직한 기타리스트가 되어보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함중아는 나이트 클럽 무대에 오르던 시절 조용필과 마주치게 됩니다. 조용필의 노래 실력에 감탄한 그는 하루는 무대 뒤로 조용필을 찾아가 “노래 좀 가르쳐주면 안 돼요.” 라고 했습니다.

조용필이 무대에 올라가 노래할 때 테이블에 앉아 레퍼토리를 베꼈습니다. “처음 쫓겨났던 대구 수성 호텔에 다시 내려갔죠. 그전까지는 신중현 씨 곡을 했는데 이번엔 조용필 씨 흉내를 내본 거예요. 그런데 이게 반응이 확 왔어요. 난리가 아니었죠. 그래서 내가 노래에 빠졌다는 거 아닙니까. 그 이후로는 기타를 등한시했죠.”


함중아는 1971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1977년 함정필 최동권 등과 함께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하고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함중아와 양키스로 데뷔한 그는 “내게도 사랑이”, “풍문으로 들었소”, “그 사나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가수 방미, 인순이, 하춘화, 미희 곡을 쓴 작곡가로도 유명합니다.

불법약 조작 사건

그런가 하면 1998년에 불법약 조작 사건에 휘말릴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회식 자리로 경찰이 찾아왔어요. “소변 검사 후 불법 약 양성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나는 분명히 안 했는데 누가 어떻게 나에게 약을 먹였는지 모르겠어요. 약 꾼이라는 세상에 오해받았죠. 감옥에서 나와서 노이로제 걸려 있는데 경찰이 또 찾아와 불법 약 검사를 하자고 했어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불법약반을 찾아가 검사를 했는데 음성 반응이 나왔어요. 알고 보니 돈을 뜯어내려던 경찰의 계략이었어요. 이후 그 경찰은 옥살이했어요.”

간경화 투병

1985년 전후로 함중아는 부산으로 내려가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때 함중아 부인 손명희를 만나게 되었죠. 두 사람은 가수와 팬으로 처음 만났고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해서 결혼하게 됩니다. 이후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한 함중아에 많은 이들이 반가워했지만, 그의 모습은 많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함중아는 “내가 평소에 술을 많이 먹어서 술병이 나는 바람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라며 간경화 투병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건강이 나쁘다고 느꼈을 때는 자꾸 배에 복수가 차더라고요. 병원에 갔더니 간이 많이 상했대요. 그게 한 후 6년 됐어요.”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투병 사실을 비밀로 감추고 그는 부산 지역에서 가수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무대 활동을 위해 주변에 입단속을 시켰던 것이죠. 그의 간경화는 좋지 않은 음주 습관에서 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주로 야간 업소에서 일하다 보니 일이 끝나고 허전해요. 그래서 매일 술을 마셨어요. 적게 마시는 것도 아니고 폭주하듯이 수십 년을 마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가수 미희와의 스캔들

그는 젊은 시절 만난 여자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과거 미스코리아 출신 가수 미희와의 스캔들을 전했는데요. “기자들이 많이 따라다녔어요. 결국엔 터지더라고요. 요즘은 음악 공부를 컴퓨터로 할 수 있는데 예전에는 작곡가가 직접 안 가르치면 방법이 없었어요. 보통 한 달 정도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같이 앉아서 매일 노래를 하니 정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 미희 씨가 전화번호를 주더라고요. 그래서 만나게 됐어요. 나도 그때 잘 나갈 때였죠.”

이에 아내는 “능력 있고 노래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었어요. 어떤 사람이 안 좋아하겠어요. 나도 좋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아내는 그가 젊은 시절 바람을 많이 피워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함중아는 “바람피운 게 한두 번 있었나? 젊었을 때 철이 없어 상대방 마음은 전혀 몰라주고 그렇게 살아도 죄책감 같은 거 하나도 못 느끼고 그렇게 살게 되더라고요.”라고 회상했습니다. 아내는 이혼하러 법원까지 갔던 일화를 공개하며 “이혼하러 갔더니 달래더라고요. 한 번 더 생각해 보자고 그러고 돌아갔는데 다음에 이혼 안 해주더라고요.”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내는 남편이 바람 필 때가 좋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건강하게 다닐 때가 좋은 것 같아요. 어쨌든 건강하게 살아서 함께 사는 그날까지 같이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결국 폐암과 간경화 끝에

하지만 결국 함중아는 폐암과 간경화로 투병하던 끝에 2019년 11월 1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여보 고마웠어”였습니다. 오래전부터 함중아와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온 개그맨 엄용수는 비보를 전해 듣고서 “함중아 씨는 워낙 술을 좋아하고 즐겨 마신 데다 사기를 당하는 등 개인적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악화했어요.

발병 후에도 노래에 대한 열정 때문에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몸을 혹사한 게 삶을 단축한 이유가 됐어요.”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또한 “풍문으로 들었소”를 리메이크한 가수 장기하는 자신의 SNS를 통해 “함중아 선배님 감사했습니다. 귀한 노래 오랫동안 정성껏 부르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라는 글을 남겨 애도를 표했습니다.

대중들에게 그리고 후배들에게 귀한 노래를 남기고 떠난 고인이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하고 싶은 음악 마음껏 하면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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