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용임은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 당하고…”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가수 김용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입니다. 가수 주현미, 이선희 씨 등과 같은 해에 데뷔한 김용임 씨는 그동안 화려한 가요계 생활을 해왔을 것 같지만, 사실 아주 긴 무명의 시절을 겪으며 한때는 가수 생활을 포기할 만큼 힘든 시절을 지내왔다고 합니다.

김용임 씨는 한 방송에 나와 그동안 고생했던 말 못한 사연들 그리고 특히 전 남편의 황당한 이혼 사연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김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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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과 가수생활

1965년생으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특히나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노래를 좋아했던 아버지 덕분에 7살 때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극장 쇼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경기 민요와 경서도 민요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또한 무용과 피아노 등의 악기들까지 다루고 경기여고 시절에는 국악, 성악 공부까지 했다고 하니 음악에 관련된 폭넓은 경험으로 그야말로 어릴 때부터 준비된 음악 예술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음악과 함께 한 그녀 고등학교 졸업 후 KBS 신인 가요제에 나가 장려상을 받습니다. 이후 1984년 목련이라는 곡으로 드디어 가요계에 정식 데뷔를 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영재 코스를 밟으면서 폭넓게 음악을 공부하였습니다. 가수로의 생활은 천운이 함께 따라줘야 하는 것인지, 준비된 인재였지만 데뷔 직후 김용임 씨는 가수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후 1991년 ‘빗물은 내마음 알 거야’라는 노래를 발표하며 다시 한번 기회를 노리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절대적인 믿음과 지지 속에서 가수가 되기 위해 수많은 연습과 공부를 하였던 그녀는 막상 연예계에 나오니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고 아버지의 기대에 대해 부응을 하지 못한 채, 무명의 가수로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지게 되고 아버지까지도 건강이 악화하자, 우울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앓았던 그녀는 버티다 버티다 결국 안타깝게 은퇴하게 됩니다.

결혼생활

그렇게 가요계를 떠나게 된 김용임 씨는 이후 결혼하면서 평범한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어렸을 적부터 꿈꾸었던 가수로서 이름을 날리지 못했지만 좋은 짝을 만나서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면 그런 삶도 절대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용임 씨 결혼 후 행복하게 사는가 싶더니만, 어느 날 깜짝 이혼 소식을 알리게 됩니다.

그 이혼의 시발점이 된 계기가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것으로, 사연인즉 어느 날 김용임 씨가 외출 후 들어와서 스타킹 양말을 벗어놓고 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왜 스타킹 양말을 안 빨고 그러고 있냐?”라며 불같이 화를 내며 지적하였다고 합니다. 김용임 씨도 “아니 나갔다 와서 피곤해서 그랬다. 내일 빨 수도 있는 거 아니냐?”라며 대응하였습니다. 그렇게 양말 때문에 시작된 두 부부의 다툼, 별것도 아닌 것으로 “왜 그러냐?”며 옥신각신하다가 김용임 씨가 말하길, “그래 살기 싫으면 이혼해!”라고 홧김에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이혼하자!”라고 바로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부부간의 싸움은 제법 흔한 일입니다. 물론 이혼이라는 말은 쉽사리 꺼내는 건 좋지 않지만, 김용임 씨는 다투는 중에 순간 욱해서 내뱉은 말이었는데 그걸 바로 받아서 “그래 이혼하자!”라며 바로 이혼 소송을 준비하는 남편도 놀랍습니다. 이후 김용임 씨는 이혼은 당연히 진심이 아니었고 또 아이를 생각해서도 가정을 지켜야 했기에 남편에게 “내가 잘못했다. 순간 화가 나서 그런 거지, 정말 이혼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라며 남편에게 매달려 보아도 남편의 태도는 아주 단호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애원하는 김용임 씨를 뿌리치고 번갯불에 콩 볶이듯 이혼하게 된 남편 근데 좀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단순히 양말 때문이 아닌 그동안 쌓여온 성격 차이 때문이라고 해도 왠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속전속결로 이혼을 진행하게 된 이유는 바로 남편에게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김용임 씨 그런 것도 모르고 남편이 원하는 대로 이혼을 해주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별것도 아닌 양말로 시작되어 이혼하지만, 사실은 숨겨진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대박난 가수 활동

그렇게 허무하게 이혼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약해져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김용임 씨는 경제적으로도 아주 어려웠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지금은 가수도 아니고 결혼에도 실패하고 생활도 어렵고 이렇게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녀에게 한 통의 연락이 오게 됩니다. 바로 메들리 테이프를 만들어보자라는 제의가 들어옵니다.

당장 돈이 궁하기도 하고, 모든 걸 잃은 이 시점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그런 제안 김용임 씨는 고민도 없이 바로 승낙하게 됩니다. 불행 끝에 행복이 온다고 했듯, 예전의 김용임 씨와는 달리 이 메들리 앨범은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렇게 고속도로 휴게소를 점령한 메들리 테이프의 성공은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라는 생각하며 이번엔 정식 앨범에 도전하며, 그렇게 발매된 노래가 의사 선생님이라는 노래인데 하필이면 때마침 노래 발표 이후 의학 분업이 시행이 시작되어서 덕분에 나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차츰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알리게 된 김용임 씨는 2003년 사랑의 밧줄을 발표하면서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길고도 긴 무명 생활을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이 사랑의 밧줄은 원래 김용임 씨에게 올 곡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바로 트로트 가수 오은정 씨에게 먼저 주었던 곡인데, 오은정 씨가 “이 노래는 나한테 좀 벅찬 노래 같아. 용임이 네가 한번 잘 맞을 것 같으니까 한번 불러보렴.”이라며 김용임 씨에게 곡을 양보해 주었다고 합니다.

처음 곡을 받은 김용임 씨도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이 노래는 대히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니 사람의 앞날은 정말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후 내 사랑 그대여, 빙빙빙, 부초 같은 인생 등등 연이어 히트곡을 발표하며 정상의 가수로 우뚝 솟아오르게 됩니다.

지금의 남편

또 행복은 넝쿨째 들어온다고 했었나요? 소속사 대표이자 매니저였던 지금의 남편인 시성웅 씨를 만나 재혼하게 됩니다. 별것도 아닌 양말 때문에 이혼 당하기도 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던 김용임 씨이지만 그 후 멋지게 재기에 성공해서 그토록 자신이 좋아했던 노래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며 후배 가수들을 챙겨주기도 하고, 봉사 활동도 열심히 한다고 하니, 게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안정적인 가정까지 꾸렸으니 그놈의 양말 때문에 이혼을 한 게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도 배우는 자세로 끊임없이 노래를 공부한다는 김용임 씨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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