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우림 아들 잃은 충격으로 결국…”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확인해 보세요.

배우 서우림은 단아하고 기품 있는 외모로 데뷔 시절부터 남성들의 우상이 되며 사랑받아 왔습니다. 시대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부잣집 사모님부터 대왕 데뷔까지 어디서든 빛나며 TV 속 그녀는 온실 속 화초처럼 곱고 아름다웠지만,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보여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56년 연기 인생 동안 수많은 작품 속에서 수많은 인생을 연기했지만, 그 어떤 대역도 실제 자신의 인생처럼 극적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반대했던 2번의 이혼으로 가정이 무너졌고,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마저 하늘로 먼저 떠나보내며 가슴에 묻어야 했던 배우 서우림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서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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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혼

1961년 동양방송의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서우림은 중앙대학교 무용과 출신으로 당시엔 드물던 대졸 여성 연예인이었습니다. 28살의 서울대학교 출신 남편을 만나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결혼했습니다. 두 아들을 낳으며 행복한 가정을 꿈꿨지만, 남편의 잦은 외도로 10년간 별거 생활을 하다가 이혼이라는 결말로 끝이 납니다.

당시 그녀에게는 이혼이 최선의 선택이라 믿었지만, 훗날 그녀가 첫 번째 이혼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훗날 그녀가 고백하길 “이혼하고 내가 느낀 건데 그때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왜 이혼했나 싶다.

이혼하게 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면서 아이들 앞에 한없이 죄인이 되었다. 자식을 낳지 않았으면 몰라도 자식을 낳았으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식을 위해서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라고 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당시 그녀가 이혼할 무렵, 두 아들은 미국에 유학 중이었는데 이때 IMF가 터지면서 환율은 환율대로 오르고, 수입은 점점 줄어드는 상태에서 힘겹게 유학비를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공부만큼은 반드시 마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버티고 버텼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져 빚만 늘어났습니다.

당신은 너무 힘들어 매일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께 제발 일 좀 많이 하게 도와달라고 빌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유학 뒷바라지 끝에 마침내 두 아들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장시간 아이들의 유학비를 지원했기 때문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빚을 지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두번재 결혼

한편 그녀가 이렇게 경제적으로 힘들 때, 두 번째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미국의 호텔 재벌로 그녀에게 모든 빚을 갚아주고 손에 물 한 방을 묻히지 않고 왕비 대접을 해주겠다.라며 프러포즈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재혼에 생각이 없었던 그녀였지만 늙어서 자식한테 손 벌리면 부담 주느니 빚을 다 갚아준다고 하니 그렇게 나이 60에 재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훗날 이때를 그녀가 고백하길 “사실 나이 60살에 했던 재혼은 유학 빚에 쪼들렸던 탓에 급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늙어서 자식한테 손 벌리면 부담 주느니 빚을 다 갚아준다. 하니까, 그래 가자라며 재혼을 결심하고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미국에서 생활한다는 소식이 방송가에 전해지면서 100만 장자와 결혼했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고 두 번째 결혼 역시 마음과 뜻대로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를 힘들게 만든 건, 한국에 두고 온 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 그녀가 재혼할 무렵 아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제야 한 집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살겠다는 기대를 했었지만, 그녀의 재혼과 동시에 또다시 두 아들과 생이별해야 했습니다. 당신을 떠올리면 그녀가 고백하길 “아이들에게 재혼 소식을 알리자, 두 아이 모두 그동안 자기를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라면서 결혼해서 잘 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사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고생이 많았다.

엄마의 사정이 여의찮다는 걸 알고 자기를 알아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힘들게 공부했다. 그렇게 낯선 땅에서 고생한 아이들이 부모의 보살핌도 없이 10년간 고생하며 돌아와 이제야 함께 시간을 보내는가 했지만, 이렇게 또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라고 했습니다.

비극의 시작

그렇게 서우림이 재혼을 하게 되면서 미국으로 떠나는 순간, 오랜 유학에서 돌아와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자식에게 외로움을 더해주며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두 아들이 미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후 한국으로 돌아와 앞날을 계획했었지만 둘째 아들은 한국 생활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두기 일쑤였고,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반복하다가 심지어 나중에는 퇴사가 잦으니 취업마저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유학 생활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자기 생각과는 달랐던 현실 앞에 둘째 아들은 조금씩 무너져 갔습니다. 그때부터 둘째 아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결국 알코올 중독이 되어 취하기만 하면 가족들에게 막말했습니다. 그런 둘째 아들을 당시 재혼한 남편도, 그의 형마저도, 그를 외면하며 보지 않았습니다. 그녀 역시 아들의 술을 끊게 하려고 “너 술 끊기 전에는 나도 보지 않겠다.”라고 말한 후 15일을 안 봤는데 결국 그게 마지막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둘째 아들 친구로부터 아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라며 그녀에게 연락이 왔고, 열쇠를 가지고 있던 그녀가 같이 가보자해서 집에 들어가니까, 이미 아들은 세상을 떠나서 있었습니다. 심지어 세상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난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아들은 38세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제 와 후회한들 소용없지만 조금만 더 일찍 들여다봤더라면, 그때 한 번만 더 아들의 손을 잡으면, 괜찮다고 말해 주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라는 자책감에 그녀 역시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때를 그녀가 고백하길 “아들의 술을 끊게 하려고 너 술 끊기 전에는 안 본다라고 했던 게 아들에게는 엄마마저 나를 안 보나 해서 술을 더 마셨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싶고, 나라도 토닥토닥해 줄 걸 너무 후회가 든다. 이 세상 반도 살지 못하고 엄마 곁을 떠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나. 나의 잘못으로 너를 보내놓고 엄마 마음이 너무너무 아프다. 힘들 때 곁을 지켜주고 마음을 잡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 한스럽다.

사실 그때는 진짜 나도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이고 뭐고 다 싫었으며 차라리 깊은 산속 절에 가서 살까 싶었다. 그런데 큰아들 생각하면 그 짓은 차마 할 수 없었다. TV를 보다가도 먼 산을 보다가도 너무 아깝게 간 아들이 계속 생각이 나서 결국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선물

한편 아들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 있었는데, 당시 미국에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던 둘째 아들은 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손녀딸의 소식 역시 끊겨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미국에 있는 친언니의 큰아들, 딸에게 “내가 손녀가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이름이 뭐예요? 묻길래 이름을 가르쳐줬고 휴대전화로 검색하더니 손녀 찾았다라며 그렇게 이름 하나로 손녀를 찾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손녀에게 연락했더니 자기도 어릴 적에 봤던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라며 보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6세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만남은 마치 세상을 떠난 아들을 다시 만난 듯한 기쁨이었으며, 손녀딸의 웃음으로 인해 서우림의 마음에도 조금씩 봄이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은인 강부자

그녀의 돌이킬 수 없는 세월에 언뜻언뜻 솟아나는 후회가 밀려올 때마다 마음의 위로와 위안이 되어 주던 사람이 있는데 바로 강부자였습니다. 강부자가 서우림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많은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말하길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남자는 적당히 밖에 나가더라도 그러다가도 아무 일 없이 집에 들어오면 되는 거다. 호적에 내가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우리 아이들도 있는데 나는 하나도 신경 안 쓴다.

사실 우리 남편도 외도가 있었지만 나는 집에서 입도 뻥끗 안 하고 가족이 누구도 알지 못하게 했다. 남편이 그랬을 때 적당히 당기다가 남편이 따라오면 적당히 놓아야 같이 간다. 끝까지 당기면 사이가 끊어지기 마련이다.

남편이 잘못하는 것을 부인이 감싸 안아야 한다. 물론 이혼하는 사람들이 오죽하면 이혼하겠냐마는,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고 잘 참아야 한다. 이 세상에 힘든 거 참아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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