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59세 이하원 간암 투병 10개월 버티다가 끝내…” 아내 권재희의 가슴 아픈 가정사를 확인해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는 아픔입니다. 특히나 그 이별이 자기 가족이라면 더 견디기 힘든 슬픔입니다. 여기 부모님과 남편을 떠나보낸 한 여인이 있습니다. 바로 배우 권재희입니다. 권재희의 부친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했고 그녀의 남편 이하원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 사별했습니다.

이렇게 두 번이나 사랑했던 가족을 떠나보낸 권재희는 참 많은 아픔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에게는 총명한 아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된 새로운 인연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권재희 가족들의 서글픈 사연에 이어 최근 권재희에게 다가온 한 남자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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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희 그녀는?

권재희는 1962년 출생으로 1981년 KBS 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습니다. 드라마 전원일기, 아들과 딸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혼술남녀, 사생결단 로맨스 등 굵직굵직한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인상 깊은 연기로 부지런히 작품 활동을 해오며 얼굴을 알려왔던 권재희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가족에 관한 아픔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했던 남편 이하원을 떠나보낸 것도 그렇고 또 자기 부친을 일찍 여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남편 개그맨 이하원

그동안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던 권재희의 남편은 개그맨 이하원입니다. 주병진, 이홍렬, 이경규, 서승만 등과 함께 MBC 개그맨으로 활약하면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이하원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개그맨 1세대였습니다. 이하원은 MBC 청춘만만세 등의 인기 프로그램에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1988년 청춘만만세에서 이름을 바꿔 방송된 청춘 행진곡에 출연한 이하원은 자신의 이름에 웃음소리를 넣어 “아하하하하하~~원”, “밥 무쓰요?”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하원은 독특한 목소리와 지적인 역할을 재미있게 잘 표현했으며 그런 이미지 때문인지 주로 아나운서 같은 역할을 많이 맡았습니다.

이하원은 청춘만만세의 프로그램 폐지 이후 사업에 뛰어들며 인력 아웃소싱 업체를 십여 년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도 2011년 교통방송 프로그램 이하원의 길따라 노래따라 진행을 맡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암 그리고 죽음

그렇게 활동을 하던 중 1988년 이하원의 적극적인 구애로 이하원과 권재희는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연예계 잉꼬부부로 소문날 정도로 금실이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하기만 했던 두 사람에게는 어둠의 그림자가 다가오고야 말았습니다.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하던 이하원은 극심한 피로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그곳에서 검사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도 간암 말기 진단받아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하원은 쉬는 게 최선이라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병원 치료를 병행하며 공기 좋은 곳을 오가며 요양했습니다. 그리고 권재희의 간호가 지극정성이었던 덕분인지, 한때 건강을 거의 회복한 상태라며 극복 의지를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하원은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향년 59세의 나이로 투병 10개월 만에 별세했습니다. 이하원은 그동안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힘든 연예계 생활을 버텨내기에는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을 테고, 쉬지 않고 활동을 했기에 몸을 혹사한 것이 원인이 아니었나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에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하며 그를 추모했고 특히나 이하원의 아내 권재희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정도라고 알려졌습니다. 권재희는 “힘겹게 남편의 부고 소식을 전하며 간암 말기 판정받고 투병 중이던 남편이 오늘 아침 작고했습니다.

가족들과도 충분히 많은 대화를 나눴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어요. 간암 후유증에는 평상시 인격과 달라지는 현상이 있는데 마지막까지 본인 모습 잃지 않으며 의연하게 가셨다.”라고 말하며 남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이하원의 특별한 가족 사랑

당시 이하원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며 생전 그가 가족 사랑이 넘치던 가장이었던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개그맨을 하다 인력업체 ceo로 활동하던 이하원은 한 방송에서 사무실을 공개하며 남다른 가족 사랑을 보여줬습니다. 이하원은 직원들에게 늘 가족이 최고라고 이야기하는 CEO이었습니다.

그는 가족사진을 보고 있으면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내와 아들에 대해 사랑이 커진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을 항상 생각했던 이하원이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야 했을 때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이하원은 투병 생활 내내 아내와 아들 단둘이 남게 될 상황을 많이 걱정했다고 합니다.

권재희와 이하원 사이에는 정말 소중히 키운 아들이 한 명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의 아들은 명문고인 민족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에서 공공 정책학을 전공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영재로 알려져 미래를 촉망받는 인재였습니다. 경원대 영재교육원 재학 중에는 교육원 대표로 러시아 국비 연수를 다녀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영특한 아들이 능력을 펼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사형수의 딸입니다.

한편 권재희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것은 남편 이하원뿐만은 아닙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금은 민주열사로 알려졌지만 한때는 역적이라는 오명으로, 1969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당시 권재희는 겨우 7살이었습니다. 권재희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기어 마주 서다에서 방송한 나는 사형수의 딸입니다에 출연하여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검은 구둣발들이 집에 들어와서 아버지를 데려갔던 그날이 기억난다. 나중에 아버지가 간첩사건에 연루됐고 신문에서는 아버지를 역적이라고 보도했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권재희의 부친 권재혁 씨는 미국 유학파 출신의 촉망받는 진보 경제학자였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이른바 남조선해방혁명당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1968년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당했습니다.


이 일로 권재희의 집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부친의 비보의 권재희의 오빠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으며 홀로 남은 모친은 생활고를 이기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권재희도 너무나 어린 나이에 겪은 일이라 정신적인 충격이 상당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남조선해방혁명당 사건은 조작된 사건임이 밝혀졌고 2014년 재심 대법원에서 고인은 무죄 판결받았습니다.

이에 권재희의 아버지는 40년이 넘은 세월 끝에 드디어 억울함을 풀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무덤 안에서도 눈을 감지 못했을 아버지의 한을 풀어줬기에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다행히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그 시간 동안 권재희는 참 많이도 힘들어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새로운 인연

이렇게 아버지의 오해를 푸는 과정에서 권재희는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한홍구 교수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역사학자인 한홍구 교수는 헌재 부친의 억울함과 관련된 용공조작 사건을 언론에 알리는 것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습니다. 한홍구는 한겨레의 기고문 등을 통해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인물이었습니다.

한홍구는 이 사건의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50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권재희는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풀 때, 한홍구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인연이 다 2016년 이하원과 사별하고 난 후 2020년에 한홍구 교수와 재혼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 한기악 선생의 손자로 알려진 한홍구 교수는 2000년부터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두 사람은 재혼인데다가 또 가족사가 비슷한 점이 많았기에 대화가 잘 통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결혼 서약으로 결혼식을 대신했습니다. 힘들기만 했던 권재희 인생에 새로운 길이 열렸기에 많은 이들이 축하해줬습니다. 항상 곁에서 사랑을 주던 가족과 두 번이나 힘겨운 이별을 해야만 했던 권재희는 다시 또 새로운 길을 걸어가 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그 끝내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힘든 병마와 싸우는 남편에게 최선을 다해서 간호해줬던 그녀이기에 이제는 웃으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권재희 그녀의 앞날에 꽃길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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