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75세 이창호 아나운서 오랜 지병으로 결국…” 손자 개그맨 이재율 오열한 상황을 확인해 보세요.

국민 MC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을 맡은 유키즈 온 더 블록은 매주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에는 KBS 개그콘서트의 마지막 기수 개그맨 이재율과 전수희가 함께 출연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이재울은 전수희를 “2개월 동안 짝사랑했다.”라고 밝히며 풋풋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한창 전수희를 짝사랑했던 과거 이야기를 하던 이재율은 분위기를 바꾸려 할아버지인 KBS 아나운서 이창호의 얘기를 꺼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주에 내 방송녹화가 잡혀 있었다.”라며 운을 뗀 그는 “작은아버지가 너희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방송을 펑크낸 적이 없다라는 말에 녹화에 참여했지만, 통편집 당했다.”라는 일화를 말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이창호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TV 쇼 진품명품 등을 비롯해 88년 서울올림픽 중계방송 등을 진행하며 큰 사랑을 받았던 아나운서입니다.

그는 손자 이재율이 개그맨으로 데뷔하는 것까지 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창호는 언젠가부터 방송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오랫동안 앓고 있던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많은 이들을 슬프게 했습니다. 오늘은 친근한 이미지로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이창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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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진품명품 진행자

1995년 3월 방송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인기리에 방송하고 있는 KBS TV 쇼 진품명품은 오랜 세월만큼 많은 진행자가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가며 얼굴을 알렸습니다. 진품명품의 1대 MC는 임성훈, 그리고 2대는 왕종근, 3대는 이창호, 4대는 다시 왕종근, 5대는 윤인구, 6대는 김동우, 7대는 이재홍을 거쳐 현재는 8대 강승화 아나운서가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왕종근 아나운서가 두 번째와 네 번째 MC를 맡았기에 그가 가장 오래 활동한 진품명품의 진행자가 아니겠느냐?라고 생각하지만, 단일 진행으로 최장수 기록을 가진 것은 사실 이창호 아나운서입니다. 이창호는 왕종근의 KBS 퇴사 후 그의 자리를 채우면서 진품명품의 진행자가 되었습니다. 진행 중반에 정년을 채우면서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도, 2005년 1월까지 진행을 맡으며 프로그램을 빛냈습니다.

그의 활약

1943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KBS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한 이창호는 KBS 진품명품,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을 진행하며 얼굴을 알렸습니다. 안정된 목소리 톤에 편안한 시선 처리로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구축한 그는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몰입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중계방송에서는 스포츠 캐스터의 모습으로 보내 시청자들에게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의 현장감을 전달해줬습니다. 그는 맹활약을 이뤄내 아나운서실 위원과 실장 방송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행정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지만, 역시 그는 MC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가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창호는 KBS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후 단, 한 계절도 방송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KBS 아나운서 실장으로 역임할 때조차도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스포츠, 연애, 오락, 노인, 주부 대상 프로그램까지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이창호가 평양 방송 마이크만 한 번 잡으면 거의 다 해보는 건데….라며 아쉬워했다는 일화가 전해졌습니다. 특히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이창호는 일요일 아침 직장인과 연예인들이 뒤섞여 놀던 행운의 스튜디오, 가요와 팝을 소개하던 라디오 FM 희망 음악 등을 진행하며 꾸준히 대중에게 닿았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에는 즐거운 인생의 MC를 맡아 프로그램을 5년간이나 이끌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을 계기로 그는 KBS를 대표하는 MC로 완벽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제가 30대 초반이었을 때 장수했던 노인 대상 프로그램이 있었고 저도 MC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MC라고 이름 붙일 진행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MBC의 차인태, TBC의 황인용, 그리고 KBS의 저 정도였습니다.”

요즘 MC에 대한 아쉬움

일찌감치 MC를 겸하며 아나운서실 실장을 지낼 만큼 잔뼈 굵은 아나운서였던 그는 젊은 MC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표준어 거의 안 쓴다고 봐야죠. 방송이 재밌어야 한다라는 건 물론 알지만, 특히 연예 오락 MC들은 너무 분위기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나운서 경력이 필수란 얘기는 물론 아니지만, 말하자면 대가족과 핵가족 환경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란 환경에 따라 말투 하나, 눈동자 움직임 하나가 달라지잖아요.” 재미도 좋지만, 언어 파괴가 심각한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쳤습니다. 후배들의 진행 능력까지 꼬집을 정도로 그는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습니다.

진품명품 일화

그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을 맡았던 진품명품에서 겪은 일화를 하나 소개했습니다. 한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던 도자기를 갖고 와 감정을 받았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거제도에서 한 할머니가 밤새 기차를 타고 도자기를 가져오셨어요. 고려 청자라고 믿고 오셨는데 5,000원 판정받았지요. 얼마나 안타깝던지 밤새 부푼 꿈을 안고 온 할머니는 큰 기대를 하며 감정을 받았지만, 푯값조차 얻지 못했는데요.” 그 사연이 소개되며 이창호뿐 아니라, 많은 시청자도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진품명품 하면 떠오르는 사건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로는 가보로 소중히 간직했던 문서가 사실은 노비 문서였다는 것이 밝혀져 집안 망신으로 이어졌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직도 인터넷에서 널리 회자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인터넷에서 퍼진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노비로 자신을 팔려면 자매 명문을 기록해야 하고, 노비가 거래될 때는 무조건 관에 신고해서 입안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양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관의 소지를 작성해 면천시켜달라고 요청한 후 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자매명문을 현재 가진 사람은 조상 중 한 사람이 수취자이기에 문서를 가진 사람은 노비가 아니게 됩니다. 오히려 명문에 나오는 노비를 산 양반가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터넷에 떠도는 노비 문서에 대한 괴담은 모두 거짓인 겁니다.

오랜 지병으로 결국…

이렇게 많은 일화를 가진 진품명품에서 이창호는 최장기간 동안 MC를 맡으며 진행 능력을 뽐냈습니다. 그는 퇴직 후에도 2005년까지는 TV 쇼 진품명품을 진행했고 2012년까지는 언제나 청춘을 진행하며 오랜 세월 사랑받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청춘 이후로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2018년 10월 24일 세상을 떠났다라는 비보를 들려줬습니다. 그의 친근한 진행을 기억하는 많은 시청자는 슬픔 속에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창호의 사인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오래 앓고 있던 지병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라고 전해집니다. 생전 그는 부모님과 손주들과 함께 총 3대가 1, 2, 3층에 나뉘어 함께 살 정도로 돈독한 가족애를 자랑했습니다. 그랬기에 그의 손주이자, KBS 마지막 공채 개그맨인 이재율은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크게 느꼈다고 합니다.

손자 개그맨 이재율

지난 2020년에는 이재율이 한 방송에 나와 자기 할아버지가 이창호라는 것을 밝히고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재율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주에 내 방송 녹화가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제작진도 양해해 줄 수가 없었다.”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습니다.

이어 그는 “작은아버지가 너희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방송을 펑크낸 적이 없다.라고 말해 녹화에 참여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났는지 그의 분량만 편집되었다는 것을 말해 탄식을 자아냈습니다. 할아버지를 잃고 오랫동안 슬퍼했던 그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온화하고 친근한 인상으로 시청자들에게 오랜 사랑을 받았던 이창호가 지병으로 향년 75세에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습니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진행을 하는 MC로 또 아나운서실 위원과 실장 방송위원으로 크는 KBS의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이창호는 세상을 떠났지만, 많은 후배가 그가 남긴 발자취로 그를 기억하고 뜻을 이어갈 겁니다. 지금 계시는 그곳에서는 아픔 없이 편안하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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