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어린 시절과 연기자 데뷔
김해숙은 1955년에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랐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돌 무렵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가 재혼하지 않으셔서 김해숙은 그렇게 형제 없이 홀어머니와 외롭게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이미 예쁜 외모로 많은 남학생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김해숙은 안타깝게 대입에 실패하여 재수하던 도중, 친구들과 바람을 쐬러 덕수궁에 놀러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MBC 근처를 지나다 공채 탤런트 모집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던 걸 보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방송국 안을 한번 구경해보고 싶은 마음의 즉석에서 탤런트 응시 원서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무려 6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덜컥 그녀는 탤런트 시험 1차에 합격하게 됩니다. 친구들 3명은 다 떨어지고 오직 자신만 붙은 김해숙은 처음에는 어머니께 비밀로 했다가, 2차 시험 때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말하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연예인을 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이 싫어하던 시절이었는데, 어머니는 그녀에게 “정말 연예인이 하고 싶냐?”라고 물었고 김해숙이 “정말 하고 싶다.”라고 하자, 어머니는 원피스까지 사주며 결국 72년에 MBC 공채 탤런트로 합격하면서 연기자로 데뷔하게 됩니다.
저도 나이트클럽 가고 싶어요
신인 시절 이런저런 단역으로 활동하던 김해숙은 이제 성인이 되었는데 여전히 어머니가 밤 8시로 통금 시간을 정해서 김해숙을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탤런트 동기들은 다 가본 나이트클럽에 자기도 한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에 하루는 어머니 허락 없이 나이트클럽에 가서 새벽 4시까지 신나게 놀았습니다.
다 놀고 나서야 조용히 집에 들어갔는데 먼저 주무시고 계실 줄 알았던 어머니는 그 시간까지 주무시지 않고 김해숙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란 김해숙은 “이제 저도 성인이 되었으니 나이트클럽을 갈 수 있게 해달라.”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화를 내시기는커녕 우시면서, “지금껏 자신이 홀로 너를 키웠는데 만약 정상적인 집안이었다면 네가 하고 싶다는 대로 다 해줄 텐데…. 더군다나 네가 탤런트가 되었으니 남들 보는 시선이 어떻겠느냐? 너를 제대로 시집보내고 잘 살게 하려고 엄마가 이렇게 했다.”라며 이해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걸 본 김해숙은 어머니의 사랑을 깊이 이해하고 이후로 더 이상 나이트에도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기에 대한 열정
김해숙은 그 정도로 어릴 적부터 어머니로부터 엄하게 교육받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방송국 탤런트 실에서조차도 선배들은 그녀가 후배인지도 잘 몰랐고 별명이 김내숭이었을 정도로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김해숙은 어느 날 제3교실이라는 드라마 주인공의 친구 역으로 캐스팅이 됩니다.
대본을 보는데 자꾸 자신의 역할이 아닌 정신병 있는 강한 성격의 주인공 역할이 자꾸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밤새 고민한 끝에 급기야 피디에게 찾아가 “그 역할을 꼭 하고 싶다”라며 “정말 잘할 수 있으니 시켜달라.”라고 애원하게 됩니다. 당시 피디는 김해숙의 이런 부탁에 깜짝 놀라 말을 못하다가, “이 역할은 이미 다른 배우를 점찍었기 때문에 안 된다.”라고 거절합니다.
하지만 김해숙은 굴하지 않고 다시 한번 “정말 잘 할 수 있다.”라고 강하게 애원을 했고 결국 피디는 김해숙에게 “너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럼 해봐라.”라며 주인공 역할을 시켜주게 됩니다.
반복되는 연기 중단과 복귀
이렇게 연기자로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김해숙이지만, 그녀는 24살 때 연기 활동을 모두 그만두고 결혼하여 주부의 삶을 살게 됩니다. TV를 보니 동기들이 잘 나가는 모습이 보이면서 다시금 연기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딸을 낳은 후 다시 방송국 PD에게 찾아가 다시 연기를 시켜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당시 여배우는 결혼하면 은퇴가 당연했고 결혼한 여자가 다시 나와 주부 탤런트로 활동하는 건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피디로부터 거절 통보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굴하지 않고 매일 방송국에 나가서 자신을 어필한 끝에 결국 배우 이계인이 양녕대군으로 나오던 작품에서 예쁘고 강한 애첩 역할을 연기하게 됩니다.
그때 주목을 많이 받아 화장품 광고, 모델의 달력 화보까지 촬영할 정도로 인기가 상승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톱스타로 치고 올라가려던 시점에서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연기자로서 중요한 시기에 아이를 또 낳게 되면 또 활동을 중단해야 하고, 방송국에서 퇴출당할까 봐 결국 임신한 사실을 숨겼으며 배를 복대로 감고 연기에 임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배는 점점 크게 불러왔고 급기야 나중에는 더 이상 복대로 감당이 되지 않아, 결국 활동을 중단하고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렇게 또 활동을 중단하게 된 김해숙은 출산 후 다시 연기 욕심이 나서 방송국을 찾아갔는데 당시 사랑이 뭐길래로 우리에게 유명한 박철 피디로부터 “대사가 별로 없는 작은 역할인데 해보겠냐?”라는 제안받았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라며 제안에 응하게 됩니다.
그런데 작은 역할인 줄 알고 들어갔던 그 드라마는 알고 보니 유인촌의 상대 여주인공 역할이었습니다. 백년손님이란 제목의 그 드라마는 당시 크게 히트하면서 그녀의 극중 헤어 스타일이 전국 미용실에서 유행할 정도의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배우생활을 중단한 이유
이렇게 결혼하고도 연기자로 승승장구하던 김해숙, 하지만 그녀도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여주인공 역할에서 조연으로 점점 밀려났고 어느덧 이모나 고모 역할을 주로 하게 되다 보니 하기 싫은 역할을 하면서 배우로서 슬럼프가 오고, 배우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불안함도 생기면서 결국 연기가 아닌 뷔페식당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에 식당을 오픈하니 너무 재미있고, 특히 사장님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자신의 신분이 상승한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다가도 돈 계산하는 꿈을 꾸고 엘리베이터를 타도 직업병이 생겨서 누가 타면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실수를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업에 매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장사에 대해 전혀 모르다 보니, 어느덧 사업은 이런저런 구멍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러다 점점 임대료도 밀리면서 빚이 생기게 됩니다.
그때 접었어야 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잘 되겠지라는 생각에 불어난 빚을 해결하기 위해 주변에서 돈을 꾸고, 나중에는 심지어 사채까지 쓰면서 방송을 아예 1년 쉬고 사업에 올인하게 됩니다.
빈털터리 생활
하지만 그렇게 사업에 매달려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고, 빚에 허덕이다가 성격까지 날카로워지면서 나중에는 손님과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 그녀는 자신도 깜짝 놀라, 자기 모습이 이렇게나 변했구나!하는 생각에 이걸 그만두지 않으면 자신까지 잃어버리겠다라고 느끼며 집 2채를 다 날린 채 사업을 접게 됩니다. 그렇게 빈털터리가 된 김해숙은 그때 방송국 1,500원짜리 밥을 돈이 없어서 집에 있던 동전을 모아서 끼니를 해결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남편은 몸이 아파 이미 세상을 떠나서 기댈 곳도 없었는데 빚쟁이들의 독촉 전화에 집에 전화선은 다 뽑았고, 나중에는 급기야 일일 점원과 지방 나이트클럽 행사까지 다니며 지방의 업소 무대에 올라 노래까지 부르게 되었는데, 당시 자신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너무나 비참했던 김해숙은 이동하던 차에서 참 많이도 울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평소 기상과 취침 시에 항상 음악을 틀 정도로 그렇게 음악을 사랑했던 김해숙은 이웃집에 음악 CD를 다 버릴 정도로 노래도 싫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김해숙이 90년대 중반부터 한 10년 정도 너무나 많은 드라마에 좀 심할 정도로 자주 나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40대 때 빚을 갚느라 그래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김해숙은 지금도 인생 가장 아름다워야 할 40대를 회상하면 “일만 하느라 아무 기억이 없다.”라고 합니다. 그렇게 일한 끝에 겨우 빚을 다 갚게 된 김해숙, 하지만 그녀의 슬픔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시련
어느 날 그녀와 평생을 함께 해온 원래는 아주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해지시며 호흡이 곤란해지게 되셨습니다. 그걸 본 김해숙은 너무 놀라 어머니를 때리기까지 하며 “아직 가시면 안 된다! 정신 차리세요!:라고 소리를 쳤는데 어머니는 정말로 순간 믿지 못할 모성애가 발휘되신 건지 정신을 차리셨고, 119를 불러서 병원으로 급히 가게 됩니다.
그렇게 긴급하게 치료받은 어머니는 2분만 늦었어도 안 될 뻔했다는 말까지 듣게 됩니다. 김해숙은 후에 당시를 회고하며 “그때는 정말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만일 그때 어머니가 떠나셨다면 자신은 지금 폐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평생을 함께해 온 어머니가 정신을 안 놓고 자신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신 게 아닌지…. 어머니는 평소에 꽃을 좋아해서 그렇게 자신에게 꽃구경 가자고 했는데 자신은 늘 피곤해 지친 나머지 그걸 못 해 드렸다.”라며 죄송함을 털어놓게 됩니다.
어머니는 그 뒤로 치매가 생겨 나중에는 딸을 못 알아보시다가 1년 후 끝내 94세로 세상을 떠나고 마셨습니다. 이렇게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온 배우 김해숙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