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주현 상황 악화되어 청력마저 잃고 결국” 그의 안타까운 소식을 확인해 보세요.

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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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주현은 1943년에 함경남도 해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 출신으로 한의사로 활동하던 천도교도셨습니다. 공산당에게 잡혀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다가 1948년에 가족을 이끌고 월남한 뒤 천도교 교령 주석까지 지낼 정도로 천도교에 심취해서 버는 돈을 모두 종교에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버셨지만, 수입 대부분을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쓰지 않고, 천도교와 관련된 일에 썼기 때문에 삼 형제인 자식들에게는 재산을 거의 물려주지 않았고, 역시 한의사셨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집안 생계를 꾸려 나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내려오신 분이라 밀가루 음식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수제비를 드시다 보니 주현은 어머니가 수제비를 끓이면 뒷간에 가서 울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때 너무 밥을 먹고 싶었고 고등학교 2~3학년까지는 항상 배가 고팠다고 합니다.


그런 주현은 어릴 때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자주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본 영화를 실감 나게 들려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대사를 외워서 학교 장기자랑에도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치가가 꿈이었기 때문에 그저 막연히 연예계를 동경했을 뿐, 배우가 될 생각은 없이 졸업 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게 됩니다. 대학에 다니며 그는 지금의 아내인 김광자 씨를 만나 연애하게 됩니다.

그의 결혼

아내는 학창 시절 메이퀸 출신이었는데 주현은 학교를 오고 가는 도중 그녀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주현은 아내에게 계속된 작업 끝에 그 시대 연인들의 필수코스라고 할 수 있었던 청평의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 뒤, 공공연한 연인 사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연애를 시작한 주현은 이후 군에 갔다가 제대하자마자 이른 나이에 결혼하게 됩니다.

주현은 자신이 첫사랑과 결혼했다고 남들이 부러워도 했지만, 너무 일찍 결혼한 탓에 때때로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내와 결혼한 후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은 주현은 사실 결혼 후 몇 년은 총각 같은 기분으로 살았는데 아이들이 생기니 기분이 달라지더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래도 남자는 철모를 때 결혼해야 별 탈 없이 사는 것 같다”라며 그 이유는 여자를 알고, 사회를 알고 나면 결혼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ROTC 군대 생활

그렇게 되면 여자를 만나도 자꾸 단점만 보이고, ‘더 좋은 여자 없나?’하고 바라게 된다고 말하는 주현은 군에서 제대한 후 원래는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도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더니 민주공화당 공채시험을 봤다가 또 떨어졌고, 중앙정보부 시험도 봤다가 역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장사가 맞는 것 같아서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나 하려고 했으나 그것도 그때는 연줄이 있어야 하고 자본도 필요해서 결국 포기를 하게 됩니다. 그는 군대를 ROTC로 갔으며 당시 선배가 “야! 넌 군체질이니까 장기 복무하는 게 어떻겠냐?”라고 물어봤지만 당시는 박 대통령이 이북출신 군인들을 막 자를 때였고, 또한 자신은 육사 출신도 아니다보니 결국 중위로 전역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주현은 ROTC 5기 출신으로 전방 철책에서 GP장으로 근무했는데 북한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124부대를 침투시켰던 당시의 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무시무시했던 전방 상황을 회상하며 “난 그때 제일 먼저 죽는 줄 알았다. 북한 쪽을 보니까 평소 보이지 않던 직사포가 보이더라. 우리는 벙커도 없이 막사 앞에다 홀을 파놓고 있을 때였는데 직사포 한 방이면 날아가는 거다. 실제 가끔 교전도 벌어졌고, 이쪽으로 침투하는 인민군들을 보면 항복이란 게 없어 꼭 죽기를 작정하고 오는 놈들 같다.

우리 쪽으로 오면서 우리 계급장을 거꾸로 달고 오는 걸 보면 죽겠다고 오는 거 아니겠는가? 마이크로 손 들고나와라고 해도 김일성 창가 부르고 안 나온다. 독한 놈들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다

그러던 주현은 군 제대 후 KBS가 제작하는 베트남 전선 다큐멘터리 8부작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반, 다큐멘터리 반이었던 군사 영화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원래는 장교 출신으로 배우들에게 군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자문 역할로 고용된 스턴트맨이었습니다. 중대장 역을 맡은 배우가 제때 나타나지 않자, 땜질용으로 즉석에서 주연이 기용되게 됩니다.

당시 자문비에서 200달러를 더 준다기에 중대장 역할을 덜컥 맡아버린 그는 연기는 처음이었지만 장교 출신으로 현역 시절의 경험을 살려 중대장 역을 그럴싸하게 해냈습니다. 이후에 무전병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자, 이번에는 무전병 역까지 그는 무난하게 소화해 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주연의 연기를 본 KBS 국장이 그를 젊을 적 신영균 스타일이라고 극찬하면서, 결국 이것이 인연이 되어 주현은 KBS의 특채 탤런트로까지 선발되며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부족한 연기력

하지만 당시에는 텔레비전이 집마다 있지는 않던 시절이어서 TV 연기자는 별로 인기가 있는 직업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현의 아내는 연기자하면 같이 못 산다고 집을 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주현은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데뷔 초반에는 연기력 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주현은 탤런트 특채 이후 처음 몇 달간은 큰 체구 덕분에 엑스트라 장군 등의 단역만 도맡다가 이후 사랑의 훈장이라는 드라마로 첫 주인공 역을 맡게 됩니다. 원래는 주인공으로 신영균이나 최무룡이 거론됐던 작품이었지만 주연을 파격적으로 기용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고은아가 상대역으로 일주일에 한 번 방송된 이 드라마는 크게 히트는 했지만, 주현의 연기력이 문제였습니다.

주현은 “그 전에 군사물 같은 것은 군인 출신이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연기에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멜로에 나가니까 연기가 안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때는 배우가 잘 못 하면 피디들이 어찌나 야단을 치는지 주눅이 들어서 할 수가 없었는데, 여주인공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는 장면에서는 야! 넌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라고 했더니 여자를 잡아먹으려고 그러냐?라고 야단치고 너무 표현이 안 되니까 제작진들끼리 고민하다가 결국 10회 만에 주현이 죽는 걸로 처리가 되었다.”라고 말았습니다. 그때 주현은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차라리 아주 잘 됐다 싶었다고 합니다.

반복되는 하차

그러나 의외로 방송국에는 시청자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상도 텁텁하고 연기도 구수한 그 연기자를 왜 중도 하차시켰냐?라는 항의였습니다.주현 배우가 연기는 못해도 순박한 데는 있었다라며 복귀를 요구한 시청자들 덕분에 주현은 죽은 후에도 상대 역인 고은아의 회상 장면에서 종종 얼굴을 내밀 수 있었습니다.

이듬해 주현은먹구름 흰 구름이라는 드라마에 다시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지만, 그가 맡은 역할은 주인집 딸을 짝사랑하는 벙어리 머슴으로 대사가 없는 역할이었습니다.대사가 없어서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해서 도전했지만, 벙어리역이야말로 대사가 없으니까 연기가 더 필요했고 그렇게 또 주현은 홍수가 나서 온 동네가 쓸려내려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막다가 또 죽는 것으로 도중하차를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연기력 때문에 드라마에서 2번이나 죽은 주현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은 극작가 김동현 씨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김동현 씨는 KBS에서 1972년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실화극장을 집필했는데, 오지명, 최불암, 송재호 등 내로라하는 중견 탤런트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스타가 되었습니다.

김동현 씨는 드라마 야간 비행을 집필하면서 주현에게 잘 해낼 수 있는 역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주현이 유도와 복싱 등을 해서 운동했다고 하니까 운동하는 장면을 멋있게 써주고, 또 다른 뭐를 잘한다고 하면 그런 장면을 써주고 하면서 다행히 드라마는 히트를 하게 됩니다.

인생 대표작 서울뚝배기

주현은 드라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연기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야간 비행을 꼽고 있습니다. 데뷔 초 연기력으로 지적받던 그는 그렇게 차츰 안정을 찾게 되었고 쉼 없이 활동했지만, 체구 때문인지 그에게 맡은 배역은 주로 이순신, 강감찬, 김유신 등 장군 역할에 머물렀고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배우 서승현의 남편이었던 지금은 작고한 KBS 황은 진 PD가 “잘하는 배우를 왜 이렇게 썩히느냐?” 하며 회전목마라는 드라마에서 사기꾼 교장 역할로 주현을 캐스팅하게 됩니다. 사기꾼 역할이 들어와 당황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후 또 황은진 피디에 의해 연기 인생의 가장 대표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아직도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서울 뚝배기의 안동팔 역입니다.

그는 처음 캐스팅되었을 때 “무슨 역할이냐?”라고 물으니 뚝배기 식당에서 어서 옵시오. 3번 손님 받아라. 이런 역할이라 처음엔 자신이 죽으라는 얘기인지, 화가 나서다 뒤집어엎고 집어치울까? 하다가 그래도 황은진 피디가 놀고 있는 자신을 생각해서 써준 것이니 한 번 해보자고 생각하게 됩니다.

서울 뚝배기에서 주현은 “아저씨~ ~~깔랑요”라는 사투리로 큰 유행어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당시 왕십리 쪽에 서울 사투리를 주현이 듣고 연구해서 만든 캐릭터였습니다. 당시 작가가 주현에게 “그 껄랑요가 대체 무슨 뜻입니까?”하고 물으니 주현은 “야! 내가 언제 껄랑요라고 했냐?”라고 했는데 작가가 “자기가 걸랑요? 해놓고 그걸 몰라?” 이러자 주현은 “야 그건 애드립이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거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그 “껄랑요”가 재미있다며 주현에게 “더 자주 하라”고 주문했지만 주현은 “막상 하라고 하니 또 잘 안됐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주현은 이 드라마로 한국방송 대상 우수연기자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건강 악화

주현은 얼마 전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서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10번이나 음주하고 한창때는 하루에 담배를 60개이나 피운 그는 혈압이 무려 172에 고혈압에 당뇨와 고지혈증 그리고 지방간에 신장도 좋지 않고 무릎까지 나빠지며 다리가 아무리 펴도 완전히 휘어버린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청력마저 떨어지며 청신경 손상이 와서 잘 안 들리는 상황인데 보청기를 사용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생각했지만 보청기 견본품을 껴보자, 드디어 크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만족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수준인 그는 해당 방송에서 “자신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죽다 살아났다고….”까지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는 동료들 중 가까운 사이였던 배우 조경환이 별세했을 때, “너무 놀라가지고… 올 봄에도 같이 만나서 네가 술이 세니? 내가 술이 세니? 이러던 친구인데… 이렇게 갑자기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줄 몰랐다.”라고도 말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배가 고팠던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성인이 되어 우연히 연기자가 되었지만, 부족했던 연기 실력의 드라마에서 강제 하차를 연거푸 당하는 수모를 겪더니 갖은 노력 끝에 결국 명배우로 자리 잡아 시청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세월 앞에서 결국 이렇게 차츰 건강을 잃어가고 있는 주현, “연기를 언제까지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다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가 앞으로 더는 건강을 잃지 말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건강하게 활동해 주기를 바라며, 사람 냄새나는 배우 주현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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