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62세 바니걸스 고정숙 이혼 후 딸 지키며 생활고 겪다가 결국…”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확인해 보세요.

작년 한 해를 휩쓴 걸그룹이 있습니다. 바로 브레이브 걸스인데요. 브레이브걸스는 2011년 데뷔해 10년을 활동하는 동안 많은 멤버를 교체하고 해체까지 고려했던 비운의 걸그룹이었습니다. 브레이브 걸스는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 전 방송에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아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군 위문 공연을 자주 다니며 군통령이라는 호칭을 얻었는데요.

군인들의 응원에 힘입어 역주행 신화를 이룬 브레이브걸스의 활약에 원조 군통령 바니걸스가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바니걸스는 일란성 쌍둥이 자매 듀오로 70년대를 이끈 원조 군통령이었는데요. 예쁜 외모와 시원한 가창력, 화려한 무대 매너로 데뷔하자마자 큰 사랑을 받은 가수입니다. 16살 때 데뷔해 왕성한 활동을 했던 바니걸스는 결혼과 함께 잠시 은퇴를 하기도 했었는데요.

이혼 후 활동을 재개했으나 전성기 때처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바니걸스의 근황에 대해 잘 모르고 계실 텐데요. 두 자매의 근황을 알아보다가 언니 고정숙이 정신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지독한 생활고를 겪으며 이혼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거기다 2016년에는 위암 진단을 받았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때 화려한 무대를 장식했던 주인공이 쓸쓸하게 떠나버려야만 했던 소식에 참 가슴이 아팠는데요. 오늘은 70년대를 풍미했던 바니걸스 고정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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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니걸스의 탄생과 전성기

2018년 9월 29일 불후의 명곡은 바니걸스 특집으로 꾸며졌습니다. 더불어 바니걸스의 고재숙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였는데요. 고재숙은 바니걸스 활동 당시 비화를 얘기하며 이목을 끌었습니다. 바니걸스는 70년대 큰 사랑을 받은 쌍둥이 여성 듀오로 원조 군통령으로 불렸는데요. MC 신동엽은 “70년대 바니걸스는 군통령 원조 중의 원조다 활동할 때 동료에게 대시를 많이 받았지 않나?” 라는 질문을 했고 고재숙은 그 당시 1000회 이상 공연하러 다녔다고 국방장관이 표창했다고 회상하며 “어머니 때문에 대시를 받지 못했다.

어머니가 워낙 심하게 방해를 해서 남자들과 이야기를 좀 나눠보려고 하면 어머니 발걸음 소리의 남자들이 다 도망갔다.”고 설명했니다. 그 당시 어머니 별명이 독일 병정이었다며 결혼 정년기가 되니 어머니가 뒤늦게 후회하셨다고도 밝혔는데요. 그때 너무 옥죄였기 때문에 막상 연애도 많이 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원조 걸그룹 바니걸스는 71년 록의 전설 신중현이 작사 작곡한 노래 “하필이면 그 사람”으로 데뷔해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목소리와 재주로 넘치는 끼가 있음을 한눈에 알아본 어머니는 딸들이 16세 때인 1970년 락의 대부 신중현을 찾아가 곡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신중현의 곡으로 큰 인기를 끈 바니걸스는 70년대 퍼시스터즈와 더불어 자매 듀엣으로 유명세를 얻었는데요.

누가 언니고 동생인지 구분 못할 정도의 쌍둥이였던 이들은 귀엽고 동그란 눈이 토끼 같다고 해서 바니걸스라는 팀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외모뿐 아니라 목소리도 닮아 있었는데요. “목소리만 들으면 한 사람인데 실제로 보면 돌이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찰떡 호흡을 자랑했습니다.


바니걸스는 예쁘고 귀여운 외모뿐 아니라 뛰어난 가창력과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문 남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요. 핫팬츠, 원색 타이즈, 미니 스커트 등 유행을 선도하며 원조 품절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바니걸스는 70년대 핫팬츠를 무대 의상으로 처음 입은 가수로 유명했는데요.

훗날 고재숙이 밝히기를 파격적인 모든 패션은 동대문 시장에서 원단 구매부터 디자인 가공까지 모두 직접 해 입었다고 하여 놀라움을 얻었습니다. 파격적인 의상과 화려한 무대매너 밝고 경쾌한 이미지와 깜찍한 외모까지 바니걸스는 문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왕성한 활동을 했는데요.

안타까운 이혼 사유와 정신 병원 입원

86년 언니 고정숙의 결혼과 함께 돌연 방송 활동을 접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2004년 고정숙은 반이라는 활동명으로 솔 앨범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요.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고정숙은 허스키한 음성에 매력적인 음색 아름다운 외모까지 그대로 했으나 어딘가 그늘져 보였습니다. 고정숙은 그동안의 공백기 중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밝혔는데요. 고정숙은 “이혼 후 두렵기도 하고 부끄러웠어요.

어린 딸을 어떻게 키우고 혼자 힘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냈어요. 누구에게도 이혼했다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5년 넘게 본의 아니게 숨겨오게 되었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고정숙은 86년 어머니의 중매로 음악 계통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났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지 며칠 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고정숙은 남편을 하늘같이 여기는 순종적인 아내의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70년대를 이끌었던 가수로 살며 화려한 생활에 익숙했던 만큼 고정숙은 결혼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했는데요. 어느 날 큰맘 먹고 사준 딸의 옷값 때문에 남편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으며 간간히 해외동포 위문 공연 등으로 일을 해야 될 때는 늦어진 귀가 시간 때문에 남편과 다퉜다고 합니다. 순종적인 아내로 남편의 반응을 모두 참고 이해하려 했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의 상처가 깊어졌다는데요. 결국 고정숙은 결혼 생활 13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다 참다한 결정이지만 고정숙은 사람들의 색안경 낀 시선들이 참 두려웠다는데요. 지금도 이혼을 하게 되면 이러저러한 말이 많은데 당시 사회 분위기상 이혼은 흔치 않은 것이기 때문에 고정숙은 크게 속앓이 했다고 합니다. 고정숙은 이혼을 하고 3개월 동안 사람들이 두려워 병원에 입원했어요.

정신과 병동에 보내졌는데 진짜 병을 앓는 사람들을 보니까 이러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편하게 좀 더 쉬면서 마음을 정리하자고 생각하고 몸을 추슬러 어쩌라고 당시를 회상했는데요. 고정숙은 정신병동에서 퇴원 후 6개월간 친정에 얹혀 살며 마음을 다독였다고 합니다.

또 한 번 속앓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또 한 번 속앓이를 하게 됐는데요. 바로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방황했던 것이었습니다. 반항스러운 태도에 귀가 시간까지 늦어지는 딸의 모습을 보며 고정숙은 남몰래 눈물을 삼켰다는데요.

담배라도 피우면 그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싶어 담배까지 배웠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면서도 담배를 피는 그녀를 딸이 발견했고 두 모녀는 부둥켜 안고 속마음을 털어놨다는데요. 고정숙은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딸은 방황을 끝내기로 약속하며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그 사건 이후 딸은 방황을 끝내고 마음을 다잡았고 고정숙도 딸의 모습에 힘을 얻어 복귀할 수 있었다는데요. 그 이후로도 두 사람은 애틋한 모녀 사이를 과시해 많은 사람의 응원을 얻었습니다.

위암으로 결국…

고정숙은 여전히 아름다웠기에 주변에서 재혼에 대한 권유도 많이 받았다는데요. 결혼 생활이 참 힘들었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의 재혼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이혼할 때 그녀는 딸의 양육권을 얻으려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데요. 그 때문에 생활고를 겪었다는 사실도 고백해 많은 사람을 눈물 짓게 했습니다 고정숙은 딸의 중학교 졸업과 함께 캐나다로 유학을 보내고 딸의 유학비를 벌기 위해 미사리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하면서 힘들지만 참 보람 있게 살았다는데요.

갑작스러운 별세의 소식으로 많은 사람을 슬픔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고정숙은 1월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같은 해 10월 향년 6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빈소에는 딸과 동생 고재숙 외에는 조문객이 거의 없어 유독 쓸쓸했다는데요.

그녀의 빈소를 방문했던 서수남은 꽃 속에 묻혀 있는 고정숙 씨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나와 버렸습니다. 저를 붙잡고 우는 재숙의 등을 두들겨주며 위로해줬지만 눈물은 그치질 않았습니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재숙은 한 방송에서 “방송을 안 한 지 오래됐다. 특히 언니가 가고 나서는 방송 나오는 게 꺼려지더라.”라며 오랜 공백기에 대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항상 언니와 함께 있어서 방송할 때마다 그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요. 그런 이유에서인지 지금도 별다른 방송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더는 고재숙 고정숙 자매가 한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붉어지는데요. 위암으로 9개월 동안 고통스러워하셨던 만큼 하늘에서는 고통 없이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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