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란 거센 비난에 사실상 은퇴? 밝은 모습 뒤에 감춰진…” 그녀의 진짜 인생 이야기를 확인해 보세요.

사람이 주위에 발사하는 기운을 두고 ‘오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밝은 오라를 가진 사람의 곁에 가면, 이런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삶이 조금 더 유쾌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장영란’을 보고 있노라면 앞서 얘기한 밝은 ‘오라’가 느껴지고, 특히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 그녀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따라 올라가게 되는 신비한 마력까지 있는 듯해 보입니다.

그녀는 현재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리고 위로하고 ‘공감 여왕’이라는 말까지 들으며 데뷔 이래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밝은 모습 뒤에 감춰진 진짜 장영란의 인생에는 우리가 알지 못한 깊은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장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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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의 꿈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난 장영란은 학창 시절 친구들과 연극을 하는 게 즐겁고, 故 최진실 씨를 좋아해서 연기자의 꿈을 꾸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탤런트 시험도 봤으나 안타깝게도 서류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꿈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했던 그녀는 대학도 연극영화과를 전공하고 국립극단의 단원으로도 활약하다가, 2001년 한 친구가 케이블 방송 VJ 콘테스트를 보는데 “영란아, 우리 저거 한번 해보자”라고 하자,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연기자를 꿈꾸며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던 그녀가 VJ를 하려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심 끝에 원서를 냈으며 무려 6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마침내 그녀의 방송 인생이 시작되게 됩니다.

푼수 캐릭터로 거센 비난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며 VJ로서의 입지를 다져가던 그녀는 데뷔 2년 만에 지상파 리포터까지 활동합니다. 그러다 2005년 연애편지라는 예능에 출연하면서 전국적으로 장영란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방송에서 그녀가 맡은 캐릭터가 남자 출연자들에게 들이대고 여성 출연자를 질투하는 푼수 캐릭터입니다.

그러다 보니 맡은 역할에 충실했음에도 연예계의 대표적인 비호감으로 꼽혀 사람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자, 당시 그녀는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런 이미지로는 오래 갈 수 없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그녀는 나이 30살 넘어서 정극 연기를 다시 도전하고 뮤지컬의 단역으로 서며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 트로트 가수까지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한때 TV에 나와도 더 보여드릴 게 없다라는 생각에 슬럼프를 극복하고자, 트로트 가수까지 데뷔한 적이 있다. 그런데 트로트를 너무 쉽게 봤다. 한창 장윤정 씨가 인기 있을 때, 부럽기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뭔가 새로운 것도 하고 싶고, 나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도전했지만 잘못 생각했더라. 차원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때 사람들로부터 행사를 띄려고 가수 데뷔한 거 아니냐?는 거센 비난까지 받았었다. 그래서 앞으론 가수 활동은 함부로 안 할 것 같다. 사실상 은퇴다.“라고 했습니다.

결혼 반대로 안면마비

그녀는 한의사인 지금의 남편을 한 예능 방송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슬럼프로 힘들었던 이 시기를 남편의 사랑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장영란이 해산물을 너무 좋아하니 두 사람은 연애할 때 매일 수상시장에 가서 회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남편이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해산물만 먹으면 눈이 빨개지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위해서 매일같이 먹어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레 미래를 함께하기로 약속합니다. 그러나 방송에서 보인 비호감 이미지 때문에 시댁에서는 극심한 결혼 반대하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지금은 시부모님이 장영란을 굉장히 예뻐하지만, 당시 없는 집에서 시어머니가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아들을 한의사로 키웠는데 비호감 이미지인 장영란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니, 당시 어떠한 말씀도 듣지 않고 결혼을 결사반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그녀는 결국 안면마비 증상까지 오면서 헤어질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포기 않고 남편은 최후의 방법으로 시부모의 허락도 없이 언론에 결혼 발표하고 결혼식 날짜까지 잡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식 이후 시부모의 마음을 여셨고 그 이후로는 우리 애기, 우리 애기하시면서 너무 예뻐해 주신다고 합니다.

애지중지한 딸

그녀가 결혼할 때도 사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는데 아빠는 평생을 모은 적금 통장을 내밀며 결혼하는 데 보탬이 되어 주셨고, 결혼식 당일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그녀는 어떻게든 빨리빨리 걷고 싶어서 아버지를 당겼는데, 하지만 이때 아버지가 세상 천천히 느린 행진을 하셨다고 합니다.

첫 아이를 보내고

두 사람은 결국 결혼을 했고 1년 만에 바로 첫아기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7주가 됐을 때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자궁외임신으로 한쪽 나팔관을 드러내야 하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아직 아이도 없는 상태라 그녀는 당연히 수술받기를 거절했고, 수술하지 않으면 산모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계속 종일 울기만 했었습니다. 이처럼 첫 아이를 떠나보내고 입양까지 생각했던 부부에게 어느 날 너무나도 귀한 딸 지우가 찾아오게 됩니다. 당시 두 사람은 아이가 생길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집에 왔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남편에게 산부인과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게 됩니다.

이때를 그녀가 고백하길 “당시 무슨 감각이 있어서 갔는지 모르겠는데 병원을 찾아갔더니 임신했고, 딱 5주라고 하더라. 그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느낌으로 기뻤다. 하지만 벅찬 행복 뒤에 두려움도 컸던 게 사실이다. 이때 임신 소식을 만천하에 얘기하고 싶었지만, 한 번의 아픔이 있다 보니 일단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당시 양가 부모님들께도 말씀을 못 드리고 안정기가 되고 나서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이후 연년생으로 아들 준우까지 낳으며 결혼, 육아, 출산이라는 경험을 녹여내며 비호감에서 가정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의 전환을 완벽하게 성공하게 됩니다.

아빠와의 이별

그러나 완벽했던 그녀의 삶에 시련을 드리우게 됩니다. 그녀의 영원한 슈퍼맨, 든든한 1호 팬 딸바보인 아버지와의 이별이었습니다. 갑자기 췌장암을 판정받고 투병 끝에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녀가 고백하길 “슈퍼맨 같던 우리 아빠가 아프지 않던 사람인데 아파가지고….

그런데 아빠가 투병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힘을 느꼈던 게 남편은 무한대로 다 해줬다. 당시 아빠를 위해서 남편이 끝없이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고 나중에는 자기 병원으로 모셔서 아침, 점심, 저녁을 밥도 안 먹고 오로지 아빠만 지극히 보살피며 간호했다. 그리고 한때 결혼을 결사반대하셨던 시댁도 아버지가 투병 생활을 하실 때 누구보다 사랑으로 이해해 주셨다.

예를 들면 명절날 어머님, 아버님 명절에 내려갈게요라고 하면 너 왜 내려오니? 아빠 옆에 있어. 오지 마. 우리한테 올 시간에 너는 거기서 아빠랑 추억을 더 많이 만들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아빠가 상태가 안 좋다고 하면 그때마다 매번 새벽에 기차 타고 오셨다. 또 한번은 우리 시부모님이 아빠의 손을 꼭 잡고 하셨던 말이 딸 반대했던 거 너무 미안하다. 정말 친딸처럼 생각할 거고, 앞으로 더 잘해주겠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너무 고마웠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녀가 고백하길 “영원한 나의 슈퍼맨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 아빠가 경찰 출신이라서 덩치도 크시고 건강하셨는데, 그런 아빠의 임종을 보고는 나도 언젠가는 그럴 수 있겠구나싶더라. 그래서 하루를 살아도 예쁜 말만 하고, 좋은 얘기만 전달하려고 한다. 내일 하늘로 가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내가 늘 힘이 넘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사랑 덕분이다.

어릴 때는 아빠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면, 커서는 남편의 사랑을 엄청나게 받았다. 사실 우리 남편이 보기에는 되게 여성스러울 수 있는데 실제로 야생마이고 상남자 중의 상남자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가 부잣집에 시집간 줄 아는데 물론 결혼 잘했다고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나도 페이가 되게 낮을 때인데 정말 악착같이 모아서 명품 가방 하나 안 사고 모은 돈으로 결혼했다. 물론 아버지가 어느 정도 도와주셨지만, 우리 부부는 월세로 시작해서 전세, 그러다 집을 사고 전자제품 하나씩 들어놓는 생활로 여기까지 온 거다.

아무튼 내가 40대가 되어 깨달은 것은 거짓은 언제든 탄로 나고 진심은 통하더라. 처음에는 내가 비호감으로 많은 욕을 먹었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니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시고 진심이 통하더라. 그래서 지금의 이미지가 정말 감사하다. 요즘은 옆집 언니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만큼 친근하게 봐주시는 것 같다. 그리고 요즘 살짝 욕심나는 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워너비라는 말을 듣고 싶다. 또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웃을 수 있는 행복 전도사이자 공감 여왕이 되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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